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12), 박정대 시인
파리 리술리외도서관에 앉아 불란서 고아의 지도를 그리다 보면 밤이 오고 있을 게요.
어둠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저녁이면 나는 그대와 함께 따스한 불빛이 있는 주점으로의 망명을 꿈꾸고 있을 게요
11월의 파리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가끔은 눈발이 날리지만 이곳엔 영혼의 동지들이 있으니 그리 춥지는 않을 게요
지금쯤 카페 로통드에선 모딜리아니가 손가락 구멍이 뚫린 장갑을 끼고 장 콕도의 초상화를 그리고에즈라 파운드는 헤밍웨이를 꾀어내 술을 마시기 위해 클로즈리 데 릴라로 가고 있을 게요
로트렉은 물랭루주로 가기 위해 몽마르트르언덕을 천천히 내려오고 위트릴로는 세탁선과 테르트르광장을 지나 포도밭 쪽에 있는 라팽 아질로 가고 있을 게요
생제르맹데프레성당에 잠든 데카르트가 아직 잠에서 깨기 전
센강의 아침 안개가 아직 한 마리 하얀 새처럼 날아가기 전
이 시에서 시간과 공간의 표시는 고아의식을 말하는 중요한 메타포이다. 왜냐하면 시인의 문체와 어투가 ‘미스터 션샤인’의 햇빛 씨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시」) 햇빛 씨가 활동하던 시기는 대낮과 제국이 우리나라의 반대편에 있던 1907년경이다. 시인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다가 파리에 있는 국립 리술리외도서관을 찾는다. 이런 시인의 내면에는 고향 ‘정선’의 발생 배경이 한몫하고 있다. 그 위에 암울한 한반도의 상황이 착종되어 있다. ‘정선’은 5~6세기 중국 숙신과 읍루에서부터, 벚꽃과 여진족에 이르기까지 바람과 물길을 따라서 온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다. (「정선」) 시인 자신도 이들의 후손이기에 소외되고 고립된 고아다. 더욱이 우리나라 국토가 분단돼 있고, 민중들은 슬프며, 주권은 어둠에 놓여 있어서, 고아의식에 젖은 시인은 “국가 이기주의를 타파”(「태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해야 한다고 외친다. 심리적 균형 회복을 위해 그는 ‘정선’을 대치할 수 있는 리술리외도서관에서 ‘불란서 고아의 지도’를 그리는데 열중하고 있다.
이 불빛과 희망을 찾으러 가는 시에는 몇 겹의 ‘불란서 고아’ 이야기가 들어 있다. 예컨대 ‘나’와 ‘그대’가 주점으로 ‘망명’하기, ‘모딜리아니’의 장 콕도 초상화 그리기, ‘에즈라 파운드’와 ‘헤밍웨이’의 클로즈리 데 릴라 행, ‘로트렉’의 몽마르트르언덕 걷기, ‘위트릴로’의 라팽아질로 가기, ‘레닌’의 카페 르 돔에서의 차 한잔하기 등이 있다. 시인은 불란서로 흘러든 ‘불란서 고아’들의 지도에 대해 진술한다. 시인이 자신을 포함해서 이들의 고아 지도만 그리면 됐지, 왜 또 공통분모를 만들기 위해 함께 공연하고, 식사와 술을 마시자고 제안하는 걸까? 여기에는 이들이 사소한 것들을 행하는 것에 있어 “탐욕적인 현실에 반기”를 들 뿐만 아니라, 타인을 보는 삶에 대한 시각이 독자적이라는 것에서 (「불란서 고아의 음악」) 그 이유를 들 수 있다.
아울러 ‘불란서 고아’들은 사건이나 사물을 보는 “상황과 인식에 대한 작은 관심의 차이”가 타자들과 다르다. 이 모호한 경계들이 시인에게 세계를 유쾌하게 살아가게 하는 자극제가 되고, “세계의 슬픔을 애도”하게 만든다.(「시라노 드 베라주라크」) 결국 시인이 ‘불란서 고아의 지도’를 그린다는 것은 이들을 무한 동경한다는 것이고, 이들로부터 영감 받는 예술혼을 자기식의 아름답고 강력한 시쓰기에 활용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인이 ‘불란서 고아’들의 지도를 그린다고 해서 퓌르스탕베르 광장에 내리던 비와 눈이 안 내린다는 보장이 없고, 그런 연유로 누군가 두고 온 다락방은 또 누군가의 고아의식에 절은 내면을 적시지 않을 리 없다. 아침 햇살이 환하게 비추기 전, 사람들에게서 죽은 이성과 지성이 깨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박정대 시인 약력:
▲권영옥 문학평론가 [권영옥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 이메일 : dlagkw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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