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나의 뮤즈

『백일의 약속』,유애선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0/12/16 [21:05]

가족은 나의 뮤즈

『백일의 약속』,유애선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0/12/16 [21:05]

 ▲ 유애선 시인.                                                                                             © 포스트24

 

▶유애선 시인을 만나던 날 판교의 산티아고 운중천을 걸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맑은 시냇물을 흘려 보내는, 소녀같은 시인과 들길을 걸으며 시인의 삶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인터뷰를 했다.

 

Q : 시의 뮤즈는 무엇인가요?
A : 아들을 군대 보내고 너무 보고 싶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거예요.  그래서 시를 쓰기 시작했으니 아들과 가족이 나의 뮤즈라고 할까요?

 

Q : 시의 소재는 어디서 가져오며, 시적 고민은 무엇인가요?
A : 시의 소재는 주로 제 삶속에서 가져옵니다. 가족과 이웃들, 사계절 속의 꽃들과 나무들... 평범하지만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것들 속에서 시가 걸어 나와요. 시적 고민은 저는 어렵게는 못 쓰겠어요.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시가 좋아요.

 

Q : 『백일의 약속』 중에서 특별히 애정이 가는 시를 소개 한다면?

A : 「삼용버스」, 「손빨래」, 「마중」을 제가 쓴 시중 더 애정이 가서 소개합니다.

 

                      삼용버스

 

          삼용이는 어렸을 적 우리 마을버스
          비 오는 날 손만 흔들면 문이 활짝 열렸다
          벽오동이파리를 우산처럼 쓴 아이들은
          그만 보면 좋아라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흙물이 튀는 도로에서 책가방을 받아주며
          자꾸만 엉덩방아를 찧던 삼용이
          흙투성이가 된 그는
          엄마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
          우리들은 넘어지지 말라고  
          온몸에 손잡이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그 손잡이만 잡으면 젖지도 않고
          길이 아무리 덜컹거려도
          넘어지지 않았다

 

 

                      손빨래

 

           손목이 찢어진 고무장갑
           아들이 입던 청바지와
           딸의 스커트를 손빨래한다
           이 얼룩 한 점 어디서 묻혀 왔을까
           조심스럽게 비벼도 남아 있는 얼룩
           어쩌면 내게 말하지 못한 눈물 같다
           나는 얼룩을 힘주어 비빈다
           한때는 품에 쏙 들어오던 아이들
           언제 이렇게 자랐나
           이 옷을 빠져나간 다리와
           이 옷을 빠져나간 몸처럼 
           언젠간 내 품을 빠져나갈
           아직은 품 안의 내 아이들
           얼룩진 바지와 스커트에
           햇살을 듬뿍 묻힌다
           바람에도 흔들리지 말라고
           빨래집게 하나 물려준다

 

       

                     마중

 

          저녁마다 물에 젖어오는 내 사랑은
          작고 여린 순 같은 몸으로  
          어떻게 저 넓은 바다를 밤새 헤엄치는 걸까
          성게와 우뭇가사리를 잡기 위해 망사리를 짊어지고 
          그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밤
          창문 밖 살구나무는
          꽃 진 가지에 매달린 살구 한 알을
          처량하게 바라보는데
          내 슬픔은 너무 커서 어떤 말로도 옮길 수가 없고
          내 외로움은 너무 깊어서 
          바닥까지 보여 줄 수가 없다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무 뽑듯이 조용히 몸을 뽑아
          대문 앞에 등대처럼 불 밝혀놓고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몽유병 환자처럼 원고지 위를 돌아다닌다
          돌고래 울음 같은 숨비소리 내며
          무거운 망사리를 끌어 올리는 그는
          살기 위해 밤마다 숨을 참고 있는 걸까
          잘게 토막 난 말투로
          오늘 밤도 손가락이 중얼거린다
          살구꽃으로 찰찰 넘치던 내 사랑
          마당 살구나무도 입술을 깊게 닫고
          생각의 구덩이를 파고 있다

 

  ▲ 유애선 시집.                                           © 포스트24

 

▶『백일의 약속』 에 대해 강영철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는 유애선 시인의 시집 『백일의 약속』은 깊고 단정한 사랑의 시적 형상으로 빛난다.
어린 날들은 물론 성장하여 한 가정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으로 직접 보고 듣고 행한 모든 모습은 물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눈물과 아픔 그리고 시인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지켜내고 다듬어가는 삶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그러면서도 가족은 물론 이웃과 함께 이루고자 했던 소망과 꿈, 특히 식구들과 함께 이룬 작은 행복들이 과장되거나 넘치지 않게 그리고 단정한 언어로 새기고 있다.
현대문명의 속도와 광기에 들떠 중심을 잃어버린 시들이 횡행하는 세상에 유애선 시인의 시는 고향의 흙 속에서 빛나는 사금파리처럼 독자들의 마음에 닿을 것이다. 우리들 어머니처럼!   
                                 - 강형철 (시인 · 문학평론가)

 

 

▶ 유애선 시인의 시는 정겹고 유쾌해서 마음에 잘 담긴다. 노랗게 흔들리던 금계국이 있던 자리에 찬 바람이 둥지를 튼 길을 오래 걸었다. 시인으로 사는 삶보다 한 사람의 엄마로, 아내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좋다는 시인의 맑은 웃음이 한 줌 달맞이꽃 같다.

2019년 10월에 시산맥 감성기획시선에서 출간한  첫시집 “백일의 약속”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촘촘하게 이어주는 따뜻한 언어들이 시의 옷을 입고 환하게 웃으며 독자들을 안아 준다.

특히 유애선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한 마음이 가슴속에 스며든다. 이처럼 독자들에게 오래오래 사랑받는 시인이 되를 바란다.

 

 

  

    ▲ 유애선 시인

 
  [약력]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출생

 □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수석 졸업
 □ 계간 『시에』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 제 20회 21회 아리문화상 수상
 □ 서울 지하철 시 공모 당선
 □ 시집: 『백일의 약속』

 

 

 【편집=이지우 기자 】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