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19)

제비꽃 이미지, 한 상 훈(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8/02 [09:45]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19)

제비꽃 이미지, 한 상 훈(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8/02 [09:45]

  © 포스트24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19)                                                                                                        -제비꽃 

 

                                                                                                한 상 훈(문학평론가)

 

따뜻해지는 봄날이면 여기저기 산과 들에 피어나는 ‘제비꽃’은 생긴 모습이 하늘을 나는 제비와 같다하여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 이 꽃은 예전에 여학생들이 특히 좋아했으며, 그 꽃으로 반지나 목걸이를 만들기도 했다. 

오래전에, 이 꽃이 필 무렵 오랑캐들이 쳐들어와서 먹을 것을 약탈해가곤 해서 ‘오랑캐꽃’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야기와 관련해서, "너는 오랑캐의 피 한방울도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이용악, 「오랑캐꽃」)이라는 시도 있지만, 대부분 ‘제비꽃’ 소재의 시들은 “그대 떠난 자리에/ 나 혼자 남아/ 쓸쓸한 날/ 제비꽃이 피었습니다/ 다른 날보다 더 예쁘게/ 피었습니다”(나태주, 「제비꽃」)나 “담담한 세월을 뜨겁게 안고 사는 나는/ 가장 작은 꽃이지만/ 가장 큰 기쁨을 키워드리는/ 사랑 꽃이 되겠습니다”(이해인, 「제비꽃 연가」)처럼 애틋한 사랑을 형상화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이 제비꽃을 바이올렛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서로 다른 꽃인데, 그냥 혼용해서 쓰는 경향이 있다. 신경숙(1963~)의 장편소설 『바이올렛』(2001)에서도 작가는 바이올렛과 제비꽃을 동일한 꽃으로 보고, 서사를 전개시키고 있다. 신경숙은 1980년대 중반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우화」가 당선되면서 작가생활을 시작했으나, 본격적으로 독자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계기가 된 소설은 『풍금이 있던 자리』(1993)란 장편이다. 

90년대는 80년대 주류를 이루었던 거대 담론의 사회성 짙은 소설이 퇴조를 보일 무렵으로,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내밀한 삶을 다룬 여류 작가들의 소설들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시기이다. 신경숙은 바로 이 시기에 공지영, 은희경, 전경린 등과 함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럼 신경숙의 네 번 째 장편소설인 『바이올렛』으로 들어가 보자. 이 소설에선 제비꽃이 어떤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바이올렛의 보랏빛은 붉은 피가 말라붙어 바랜 색깔이야.” 소설 중간쯤 꽃박사란 캐릭터가 말하는 이 대사는 주인공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오산이는 “축복받지 못한 여자애”다. 그녀는 미나리 군락지인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오산이가 갓 태어났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딸인 줄 알고 보려고 하지도 않고, ‘눈을 질끈’ 감아버릴 정도로 실망한다. 아버지 역시 잠깐 얼굴을 들여다보곤 그 마을을 떠난다. 

그 후 그 집엔 어머니와 시어머니인 할머니의 싸움이 심해진다. 오산이는 그러한 가정 속에서 제비꽃처럼 외롭고 고독하게 자란다. 더구나 이 마을은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그들이 “농지나 임야의 소유주”들이다. 성이 다른 집안사람들은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권세에 눌려, 변방에서 겨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 대표적 집안이 오산이네다. 오산이는 딸을 원하지 않는 집과 이씨 성의 마을에서만 소외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마음을 열어 주었던, 등에 푸른 반점이 있는 친구 남애에게서도 상처 받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물론 그러한 그녀의 외로움의 근원은 집이라는 주거 공간에서 시작한다. “시어머니 이마에 가위를 던진 패륜”을 저지른 대가로 오산이 어머니는 마을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아무 소리 못하고 힘없이 이혼을 당한다. 이미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그 사이에 낳은 아들 둘을 데리고 왔었다. 그 후 모녀는 거주할 집마저 잃게 되고, 더욱 생활의 곤궁함을 겪는다.

 “가끔 그녀 어머니는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어린 그녀는 그 마을을 떠나게 될 때까지 거의 움직임이 없다.” 어머니 역시 어린 오산이에게 별다른 애정 없이, 다른 남자들을 찾아다니며 오산이 곁을 몇 번이나 떠난다. 작가는 상처 받은 한 여성 캐릭터의 삶의 단면을 가깝게 때로는 멀리서 부조시키고 있다.

홀로 서울로 올라온 이십대 초반의 오산이는 ‘작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출판사에 오퍼레이터로 취직하기 위해서 면접을 봤지만 안타깝게도 떨어진다. 그러고 나서 우연히 세종문화 회관 뒤쪽에 있는 화원 유리문에 붙어있는 “꽃을 돌볼 여종업원 구함”이란 글을 보게 되는데, 거기서 벙어리 주인 남자와의 면접을 하곤, 그곳에 다행스럽게 취직을 한다. 그리고 오산이는 화원에서 일하는 동갑내기 수애와 ‘길다란 방’에서 같이 동거하는 행운을 얻는다. 

 

신경숙이 만들어낸 어린 시절의 오산이는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에게까지 따돌림을 받는 비극적 존재이다. 그러한 그녀가 미나리군락지인 시골마을과 대립각을 이루는 공간인 서울이란 대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광화문에서 화원의 벙어리 주인이나 수애와 같은 긍정적 인물을 만나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아이러니이다. 특히 수애는 주인남자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종업원으로, 꽃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숙련공이나 다름없는 인물로 오산이와 매우 가깝게 지낸다. 

  

어느 날 수애가 생화들을 구하러 도매시장에 나간 직후 구파발에 있는 농원청년에게서 전화가 온다. 오산이에게 화원에 바이올렛이 많이 있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곧 사진기자 한 사람이 바이올렛을 찍으러 화원에 올 것이니 도와주라고 한다. 소나기가 지나간 직후 잡지사 기자인 사진 기자가 들어온다. 

 

“그 남자가 들어서자마자 적적했던 화원 안은 비 냄새와 꽃 냄새가 뒤섞인다.” 오산이는 타월을 건네준다. 그는 미안해하며 “타월로 머리에 묻은 빗방울을 닦아낸 후”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고 만지작거린다. 이 남자와의 이러한 첫 만남은 운명적 사건의 계기가 된다. 

여기서 ‘비’와 ‘꽃’의 후각적 이미지는 신경숙 작가의 심미적 문체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거의 식물적 삶을 살아온 오산이의 마음에 욕망의 불씨를 드러내는 문학적 장치로 보인다. ‘소나기’ ‘비’ ‘빗방울’은 생명 또는 재생의 물의 이미지이다. 그것은 수동적이고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오산이의 마음이 점차 변해가는 것을 암시한다.

그 남자는 화원을 둘러보고 바이올렛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 오산이가 보라색 꽃이 핀 서너 개의 화분을 구석에서 가져온 것을 보고, 그 남자는 처음에 꽃을 잘못 가져온 것이 아니냐는 듯 목소리를 높인다. 

 

“진열대 위의 바이올렛을 향해 계속 셔터를 눌러대는 그 남자. 어디에나 피어 있어 어찌 보면 꽃이 아니라 풀같이 여겨지는 바이올렛, 그녀는 지금 새삼스럽게 보랏빛 바이올렛을 보고 있다. 푸른 잎도 작고 보랏빛도 작다. 이 화원에 오기 전에 그녀가 알고 있던 이 바이올렛의 이름은 제비꽃이었다.”

 

그녀는 바이올렛을 바라보며 제비꽃으로 이름을 알고 있던 시절, 꽃의 두 줄기로 서로 잡아당기며 놀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제비꽃 두 줄기를 서로 얽어 잡아당기며 놀았던 기억. 한쪽은 끊어지게 마련이었다.” 약한 꽃의 꽃자루가 끊어지면서 그 꽃송이는 땅에 떨어진다. 이 놀이를 ‘제비꽃 싸움’이라 했다. 그래서 제비꽃을 씨름꽃 또는 장수꽃이라고도 한다. 남자는 사진을 찍고나서 아무래도 이 꽃은 예쁘지 않다고 실망한다. 

월간 원예지 ‘꽃세상’의 잡지사 기자인 그 남자는 바이올렛을 찍는데, 그 꽃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초등학교 여선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 해서 잡지의 표지로 넣을 건데 다들 꽃이름만 듣고 그런 것은 아닌지, 잡지의 표지로 쓰기 어렵다는 듯 투덜거린다.

바이올렛을 이리저리 놓고 찍어대는 그 남자의 표정은 불만스럽다. 화원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보잘 것 없는 꽃을 뭣하러 저렇게 정성스럽게 찍을까하는 표정으로 구경을 한다. 어느 사이에 그 남자가 사진을 찍는 주요 대상이 그녀가 되어 버렸다. “노랑 보라 옅은 분홍 바이올렛 틈 속에서 얼결에 그녀는 그 남자의 렌즈 속에 들어가 있다.” 그 남자는 필름을 세 통이나 쓰고 나서, 오산이에게 명함과 잡지 하나를 주곤 가버린다. 

  

화원의 그녀와 잡지사 사진기자와의 자못 퉁명스런 첫 만남을 작가는 ‘바이올렛’을 매개로 하여 매우 서정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개되고 있는 부분으로, 두 사람의 심리가 섬세하게 펼쳐지고 있다. 남녀의 첫 만남에서 대부분 소설의 캐릭터들이 어떤 애틋한 감정이 싹트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소설에선 그냥 무미건조하게 넘어간다. 이 점이 이 소설의 묘미이다. 우연히 카페에서 두 번 째 만나게 되는데, 이때 오산이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놓게 되는 것이다.

 “그놈의 바이올렛 때문에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알아? 당신 내 카메라 바라보느라 눈 내리깔고 있을 때, 이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눈썹도 있구나.” 

이러한 그의 가벼운 칭찬에 오산이는 그날 이후 하염없이 그 남자를 욕망하고 그리워하게 된다. 사진 기자의 친구 말대로 그는 그냥 무심하게 한 말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외로움 속에 상처 받고 자라온 그녀에겐, 마음속에 그의 존재가 무서울 정도로 깊숙이 파고든 것이다. 

 

 “그녀는 물뿌리개 속에서 흰빛과 보라가 섞인 바이올렛 화분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다른 바이올렛 사이의 흙을 파고 심는다.” 정성과 간절한 마음으로 심은 그 바이올렛의 장소는 바로 “그 남자가 일하는 맞은편 빌딩”이고 바로 내가 심은 바이올렛의 빈터를 그 남자가 바라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남자가 근무하는 빌딩이 바라다 보이는 빈터를 일구고 그녀가 심어놓은 바이올렛.” 어린 시절부터 상처투성이인 그녀에게 작고 볼품없는 바이올렛은 바로 그녀 자신의 이미지이다. 

 

 “그 남자는 그녀의 환영 속에서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그녀가 차를 마시면 함께 차를 마시고 밥을 먹으면 함께 밥을 먹곤 했다. 어떤 순간에도 그녀는 그 남자로부터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그 남자에 대한 욕망의 불꽃은 결국 파국에 이른다. 수줍어하는 바이올렛처럼 마음속으로만 가져본 그녀의 욕망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그가 근무하는 월간 ‘꽃세상’의 사무실이 있는 빌딩 맞은편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전화를 하는 용기를 낸다. 하지만 그는 오산이가 누구인지 잘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무심하다. “그 남자가 자신을 못 알아보고 있다는 걸 알자 그녀의 눈이 참담함에 휘둥그래진다.” 그녀는 상실감에 어쩔 줄 모른다. 스스로 만든 욕망이 일시에 허물어지자 그 상처는 깊고 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가 직접 오산이에게 어떤 고통을 준 것은 없다. 단지 오산이의 그 남자에 대한 환상 때문에 빚어졌기에 어떠한 희망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그 절망감에서 도피하기 위해, 화원단골인 최씨에게 별다른 마음 없이 또 전화를 한다. 단지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에서 누구에게라도 위로를 받고 싶은 생각에서다. 이것이 또 하나의 화근이 된 것이다. 평소에 오산이에게 성적 욕망을 품었던 최씨의 음험한 야욕 앞에서 그녀는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사진작가에겐 자기의 욕망 때문에 돌이킬 수 없었던 상처를 겪은 그녀는 이번엔 욕망에 어두운 최씨의 폭력 앞에서 참혹하게 삶이 찢겨나간다. 

그녀는 무작정 거리로 뛰쳐나간다. 거기서 그녀는 또 다른 충격적 사건을 접한다. 사진작가를 그리워하며 하나씩 하나씩 심어서 둥근 원을 만들어 놓았던 빈터의 바이올렛이 포크레인에 뒤집혀 어딘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포크레인은 바이올렛뿐만 아니라 그녀의 삶 자체를 뿌리 뽑아 버린 것이다. 미나리 군락지의 풍경이 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딛고, 서울의 광화문을 거점으로 살아보려는 그녀의 삶을 가파른 벼랑으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신경숙 작가의 노련한 서사적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작가 신경숙은 이 소설에서 우리 현대사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는 한 여자의 삶의 초상을 리얼하게 그려나간다. 바이올렛이라는 꽃의 이미지를 통해 매우 치밀하고 슬프게 그려나갔기에 읽고난 후, 오랫동안 독자의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한상훈 평론가

 

  [약력]
 □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 경기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역임.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포토
1/13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문학/ 예술/인터뷰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