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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산군의 벼락사건이 머리에서 맴돌며 강인하고 굳센 잘산군이야말로 조선의 군주다운 성격의 소유자로 외척 또한 대단했다. 어머니는 계유정난 일등공신 한확의 딸이고 이모가 명나라 선종의 후궁으로 명나라 황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잘산군의 비는 정희대비가 손수 짝지어준 한명회의 딸이었다. 훈구파들은 계유정난 일등공신 외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잘산군을 적극 왕위에 올리려고 하였다. 한명회의 막강한 권세가 두려웠던 정희대비는 앞장서 아들과 손자를 한명회 딸들과 결혼시켜 겹사돈 관계를 맺었고 한명회만큼 왕실의 보호막이 되어줄 신하도 없다고 믿었다. 잘산군이 왕위에 오른다면 한명회는 사위가 연이어 왕이 되고 또다시 왕의 장인이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왕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므로 잘산군을 지지하고 훈구파들도 한명회를 따라 적극 지지했다. 하지만 왕실의 종친들은 월산군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며 지지하였다. 구성군도 월산군 편에 서면서 왕실 종친과 훈구파들이 왕위 계승을 놓고 대립했다. 정희대비의 결정에 따라 월산군과 잘산군 중 왕이 될 자가 결정되었다.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은 나이가 너무 어려 애초에 정희대비의 눈 밖에 있었다. 월산군이 열여덟 살로 이 년 후면 수렴청정에서 벗어나 친정할 수 있는 나이지만 이 년으로 조정의 정치를 터득하기는 짧은 시간이라 늙은 대신들에게 휘돌릴 가능성이 높았다. 잘산군은 열세 살이므로 칠 년간 수렴청정한다면 올바른 정치를 배워 왕권을 강화해 신권을 누르고 이상정치를 실현할 충분한 세월이었다. 정희대비는 예종의 수렴청정하면서 실현하지 못했던 왕권을 강화하고 조선을 나라답게 만드는 이상정치를 스스로 해보고 싶었다. 또한 한명회의 강력한 지원은 그녀가 수렴청정하는 동안 왕실과 잘산군을 지켜줄 든든한 배경이었다. 정희대비는 월산군이 심성이 연약하다는 이유를 들어 왕실 종친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훈구파들이 지지하는 잘산군을 조선의 9대 왕으로 만들었다. 조선 왕의 즉위식은 선왕의 장례기간 동안에 이루어져 화려한 즉위식은 생각할 수 없었다. 성종의 즉위식도 간소하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즉위식이 끝나기 무섭게 신숙주가 장계를 올렸다.
새 왕이 나이가 어려 백성들의 근심 걱정이 매우 큽니다. 신들이 생각건대 왕실의 가장 어른이신 자성왕대비전하께서 슬픔을 정리하시고 종사의 소중함을 헤아려 이 나라의 정사를 대신하시다가 임금이 스스로 나라를 다스릴 스무 살이 되면 정권을 다시 임금에게 돌려주면 될 것입니다.
정희대비는 수렴청정을 허락하고 조선의 최고 권력자 자성왕대비전하가 되었다. 신숙주는 한명회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신숙주의 큰아들이 현명회의 딸과 결혼했으므로 예종과 성종은 신숙주의 아들과 동서지간이었으므로 정희대비의 신임이 두터웠다. 훈구파들은 아홉 명의 명단을 올려 원상제를 실시하도록 하였다. 정희대비의 수렴청정과 아홉 명의 재상들로 구성된 원상제를 동시에 실시해 조정의 중대한 결정은 원상들이 최종결정했다. 정희대비는 원상제가 불만이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계유정난 이후 거듭된 정변으로 공신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신권이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해 있었다. 어린 성종이 즉위하고 왕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성종이 친정하기 전까지는 신권을 무시할 수 없었다. 훈구파들은 다시 본색을 드러내며 왕실의 종친인 구성군이 왕권을 위협한다고 정희대비에게 거듭 고했다. 성종 즉위년에 선비들은 “문무를 겸비한 구성군이 왕이 될 인물이다.”라고 떠들어 소문을 냈다. 종친들은 구성군을 지지하며 훈구파를 견제하고 나섰다.
정희대비가 신숙주에게 물었다. -구성군이 왕실을 위협하는 것이 맞습니까? -대비마마, 임금은 아직 어립니다. 언제든지 기회만 있다면 왕실의 종친들이 왕을 위협할 것입니다. 정희대비가 한명회에게 물었다. -종친들이 구성군을 왕으로 세우려한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대비마마, 종친들은 조정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구성군을 그냥 둔다면 역모는 끝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구성군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한양에서 멀리 귀양 보내 종친들이 더 이상 구성군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미리 방지하여야 합니다.
정희대비는 누구보다 왕을 위협하는 세력에는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성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종친을 배척하라는 훈구파들의 상소는 왕권을 약화하고 신권을 강화하려는 신하들의 속뜻을 알면서도 성종을 보호하기 위해 구성군을 경상도 영덕으로 유배 보냈다. 이번에는 월산군이 마음에 걸렸다. 종친들이 구성군 대신 월산군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억울하게 왕위를 동생에게 빼앗긴 월산군을 움직여 왕을 위협하고 나섰다. 정희대비는 월산군을 월산대군으로 봉하고 좌리공신 이등으로 책봉해 전답과 노비 그리고 관노비를 내려 보필하도록 하였다. 좌리공신은 성종을 잘 보필한 공로로 신숙주와 한명회 등 많은 신하에게 내렸다. 정희대비는 훈구대신들과 농간해 월산대군을 좌리공신에 책봉하고 다시는 왕위 계승을 꿈꾸지 못하게 만들었다. 월산대군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마포 근처에 멀리 바라본다는 뜻으로 망원정이란 정자를 짓고 술을 즐기며 책에 파묻혀 살았다. 월산대군까지 정리해 성종을 위협하는 왕실의 종친은 모두 제거한 셈이었다. 마지막으로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대신을 감찰하고 임금에게 잘못된 것을 고치도록 직언하는 대간을 강화했다. 대신과 대간이 대립하는 가운데 왕권의 강화를 노려 훈구파들의 신권을 약화시켰다.
왕실 종친의 정치참여를 경국대전에 종친사환금지를 규정하여 종친 정치의 종말을 고하고 대간을 강화해 신권을 견제하는 방법으로 성종의 불안한 왕권을 강화하여 정치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노련한 정희대비의 정치는 훈구파들도 날뛰기 못하게 하였다. 마음이 안정되면 정희대비는 단종이 꿈에 나타나 괴로웠다. 죄책감은 사그라들지 않고 가중되어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마음에 걸려 신숙주를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계유정난을 성공하고 논공행상을 하는 잔치에서 신숙주는 세조에게 안평대군 수하의 아내와 딸을 보고 미모에 반하여 자기에게 노비로 달라고 청하였다. 세조는 반대파들을 처단하고 공신들에게 하사품으로 그들의 아내와 딸을 노비로 주었으므로 신숙주의 간청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두 여인은 수치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우물에 투신해 죽었다. 신숙주는 아쉬움을 참지 못하고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었던 여인을 그 자리에서 세조에게 다시 달라고 청하였다. -전하, 어미와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므로 다른 여인을 주십시오. -어떤 여인을 말하는가?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노비로 강등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요? -우리 집으로 정순왕후를 데려가도록 해주십시오. 세조가 자리에서 술상을 박차고 일어나 칼을 뽑아들고 신숙주의 목에 들이대고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며 내려다보았다. 신숙주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아뢰었다 -전하, 황공하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짐과 왕실을 능멸하는가? 개국공신이라도 왕가를 능멸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 세조가 칼을 높이 들고 호령하자 한명회와 권람 등 개국공신들이 모두 달려나가 세조 앞에 엎드리고 권람이 고하였다. -전하, 신숙주 대감이 술에 취하여 한 소리이니 용서하시옵소서.
세조는 공신들의 속죄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신숙주의 계유정난 공을 인정하여 용서하였다. 정희왕후는 그런 신숙주를 보면 항상 단종의 비가 걱정되었다. 조선의 절세가인으로 아름답기로 하면 신하들이 탐할 만한 절색이었다. 후궁들의 숙소 정업원에 거쳐하며 매일 낙산에 올라 동쪽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빈다고 하였다. 정희대비는 정순왕후를 신원하여 장업원에 쌀과 돈을 보내 끼니 걱정하지 않고 살도록 해 죄책감을 덜고자 하였다. 선왕의 왕비이고 상왕의 왕대비 정순왕후를 작은어머니로서 조카며느리의 신변을 보장하고 왕실 가족으로 보살폈다. 정희대비는 왕실의 문제부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성종이 왕이 되자 그의 아버지 의경세자가 왕이 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성종의 정통이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왕실의 종친들이 얼마든지 성종의 적자혈통 문제를 들출 소지가 있었다. 정희대비는 추후라도 성종을 몰아내려는 역모가 일어나지 않도록 의경세자를 왕으로 추존하여 덕종이란 묘호를 내렸다. 맏아들이 단종을 죽인 죗값으로 절명한 것 같아 죄의식을 씻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정희대비가 성종을 데리고 포천 봉선사로 사냥 행차를 나갔다. 매사냥을 즐긴 성종은 왕실 사냥터로 할아버지 세조와 아버지 예종을 따라다니며 사냥을 배웠고 특히 동물을 좋아해 사로잡은 사슴은 궁궐에 가져가 키웠다. 정희대비는 성종에게 성군이 되려면 불심을 키우도록 강조했다.
[송주성 소설가 ] 2014년 금샘문학상 대상 작품활동 시작 2018년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2019년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저서] 2018 장편소설 <직지 대모> 2021 장편소설 <국궁> 2023 장편소설 <후쿠시마 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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