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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의 여인, 송주성 소설 연재 송주성 역사 중편 소설_ 연재3
-대감, 이 나라의 운명을 아이에게 맡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단종은 나의 핏줄이고 조선의 왕입니다. -어진 성인의 성품을 갖추지 못한 왕은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대감, 요즘 김종서 대감이 어린 왕을 등에 업고 조정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습니다. 재상들은 인사권을 쥐고 아들과 사위에게 벼슬을 주기 위해 합격자 수를 늘리고, 황인보는 아들을 일 년에 다섯 단계나 승진시켰으며, 김종서 대감은 자격미달의 아들을 천거하는 등 파렴치한 짓을 일삼아 나라가 매우 어지러운 상황입니다. -부인, 나도 귀가 있소. 김종서와 황인보 등 대신들이 문종 형님의 유언을 받든다는 명목으로 이조의 인사권을 침범해 의정부에서 자기들이 낙점한 인사에게 황색종이를 붙여 올리면 어린 단종이 붓으로 점을 찍어 임명하는 황표정사를 내가 모를 리가 있겠소. -대감, 그냥 두면 조선은 망하고 말 것입니다. 군주는 손으로 붓을 들지도 못하고 대신들이 어명을 받기도 전에 삼정승이 턱으로 가리키고 눈치로 시켜도 감히 누가 무어라 못해 조정은 있어도 군주는 있는 줄 모른다고 젊은 대신들이 한탄하고 있습니다. -부인, 안평대군도 세를 불리고 여섯째 금성대군까지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걱정입니다. -대감, 태종대왕도 왕자의 난으로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대감이 나서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 잡고 왕위에 오르셔야 합니다. 포천 백운산에서 우리 앞에 나타난 백호 다섯 마리는 미래에 나타날 왕 미륵이라 하였습니다. 대감이 왕위에 오를 것입니다. 수양대군은 은밀히 정난을 준비해 나갔다. 어느 날 집현전에서 제사 절차를 책으로 묶은 ‘진설’을 함께 편찬했던 권람이 한명회를 데려와 정난에 함께할 것을 간청하였다.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믿지 못하였으나 권람이 관포지교의 교우로 말에 “책 상자를 싣고 명승지를 다니며 대장부로 무공을 세우지 못하면 만 권의 책을 읽어 이름을 남기겠다.” 약속한 친구라고 소개해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받아들이고 때를 기다렸다. 어린 조카가 왕위에 오른 다음 해 시월의 단풍에 서리가 핏빛으로 내린 날 사가에 모인 무사들 앞에서 나라를 어지럽히는 문무대신을 제거하고 나라를 평화롭게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죽음으로 충성을 맹세했던 무사들이 정난을 일으켜 김종서를 제거하겠다는 말에 그를 두려워하며 수양대군의 편에서 무더기로 이탈했다. 믿었던 자신의 무사들에게 크게 실망한 수양대군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대장부로 태어나 나라를 올바로 세우는 일에 목숨을 거는 일은 정당하거늘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목을 베겠다. 협박에도 무사들이 좀처럼 나서려고 하지 않아 수양대군이 갑옷을 벗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낙랑대부인이 급히 안방으로 따라 들어가 포천 왕실 사냥터에서 잡은 표범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수양대군에게 입혀주며 말했다. -대감, 여기서 포기하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곧 김종서에게 대감의 거사가 들통 날 것이고 그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군사를 모아 올 것입니다. -서둘러 정난을 일으켜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 잡아주세요. 대감, 나라를 바로 세우고 왕실을 보호하는 정난이므로 두려워하여서는 안 됩니다. 수양대군이 다시 마당으로 나서며 무사들에게 칼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우리는 이번 거사를 성공하지 못하면 삼족을 멸하는 화를 당할 것이다. 반드시 정난을 성공해야만 살아남을 것이다. 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우리의 정적들을 제거하고 그들의 땅과 집, 종 그리고 그들의 부인과 딸들도 노비로 삼도록 나눠주고 모두에게 벼슬을 내릴 것이다. 표범 갑옷으로 갈아입은 수양대군의 당당한 모습과 자신 있는 외침에 무사들이 호응하며 사기를 되찾았다. 수양대군이 그날 밤 한무리의 사병들을 이끌고 김종서 집으로 찾아가 왕실 문제를 운운하며 서찰을 내밀자 김종서가 등불 아래서 서찰을 펼치고 읽어 내려갔다. 수양대군이 신호하자 무사 임어을운이 철퇴로 김종서의 머리를 가격하고 저항하는 아들 둘을 살해했다. 김종서는 겨우 목숨을 구해 피신하였으나 수양대군의 무사들에게 발각돼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수양대군은 영의정 황보인을 죽이고 삼정승을 장악해 영의정에 오르는 계유정난을 성공했다. 낙랑대부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수양대군에게 따지듯 물었다. -안평대군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안평은 나의 친동생입니다. -대감, 혈육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계유정난으로 대감에게는 수많은 정적이 생겼습니다.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은 모두 제거하여야 합니다. -친동생을 죽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대감의 뜻이 정 그렇다면 유배를 보내십시오. 수양대군은 동생 안평대군을 강화로 귀양 보내고 정인지를 좌의정에 한확을 우의정으로 삼아 조정과 군권을 장악했다. 부인은 안평대군을 강화도에 두면 후한이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한명회와 공신들을 움직여 강화도로 귀양 가 있는 안평대군에게 사약을 내리도록 하였다. 정난공신들이 권력을 잡자 수양대군은 단종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권력의 중심에서 조정의 대신을 모두 측근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함길도에서 김종서와 가까운 사이였던 도절제사 이징옥이 수양대군 일파가 자기를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민 사실을 알고 함길도의 병사와 여진족에게 군사를 요청해 수양대군을 토벌할 군사작전을 세웠으나 한양으로 출발하기 전에 부하 장수들에게 암살되었다. 수양대군은 크게 노하여 역모의 주동자를 엄벌하고 왕자 중 유일하게 수양대군과 대립하던 금성대군을 경상도로 유배 보내 궁궐에서 위협적인 존재는 모두 제거했다. 한명회, 권람, 신숙주, 정인지 등 계유정난 공신들은 단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외가마저 권력에서 멀리 있어 조정에는 단종을 보위할 대신들이 없었다. 한창 혈기 왕성한 수양대군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작은아버지였다. 단종은 수양대군과 마주하면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모든 일은 수양대군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였다. 낙랑대부인은 계유정난에 성공하고도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는 수양대군이 답답하였다. 그 당시 살해했으면 깨끗할 일을 단종을 살려둔 것이 불만이었다. 부인이 수양대군에게 마음먹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대감, 언제까지 기다릴 것입니까? 어지러운 나라를 평정한 지 일 년이 넘었습니다. -부인, 단종은 형님의 아들이고 내 친조카입니다. 조카마저 죽이면 백성의 원망이 높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권력은 나에게 있지 않습니까? -대감, 단종이 왕으로 앉아있는 한 이징옥의 역모나 금성대군처럼 왕자들의 위협은 계속될 것입니다. 한명회와 공신들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공신들에게 모두 벼슬을 내려 보상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그들이 대감에게 충성할 차례입니다. -공신들이 완전히 조정을 장악하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 나에게 반기를 들겠습니까? -대감, 장담할 일이 아닙니다. 조정에는 아직 세종과 문종의 은혜를 입은 대신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루속히 왕위를 빼앗아야 합니다. 수양대군은 은밀히 한명회와 공신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연회를 베풀고 뜻을 내보였다. 부인도 한명회에게 적극적으로 혼사를 의논하며 사돈 관계 맺길 원했다. 권력을 잡은 한명회는 왕실의 혼사 이야기에 발 벗고 나섰다. 한명회를 중심으로 공신들이 날마다 단종을 위협하며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양위할 것을 고하였다. 열두 살 단종은 할아버지 같은 늙은 대신들의 말이 간청이 아니라 협박과 같아 견디기 무서운 일이었다. 단종은 아버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지 삼 년여 만에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에게 아이가 칼을 빼앗기듯 왕위를 양위했다. 경복궁에서 단종이 선포하였다. -짐은 나이가 어려 나라 안팎의 중대사와 조정과 백성의 일을 잘 알지 못하므로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하겠노라. 대신들이 어명을 거두어줄 것을 간청하는 가운데 수양대군은 단종 앞에 엎드려 눈물 흘리며 사양했다. 단종이 대보를 들여오라 명하자 동부승지 성상문이 대보를 가져와 어물쩡대자 수양대군이 성상문을 험하게 노려보고 공신들이 어서 대보를 건네라고 소리치며 질타하였다. 단종이 대보를 수양대군에게 넘겨 더는 사양하지 않고 두 손으로 대보를 받들고 근정전에서 면복을 갖추어 입고 즉위했다. 단종은 스물네 살이나 많은 작은아버지의 상왕이 되어 수강궁으로 옮겨갔다. 그날 낙랑대부인은 경복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안채 마루에 포천 백운계곡에서 잡은 백호의 가죽을 깔아놓고 왕이 된 수양대군을 맞이했다. 공신들과 조정의 대신들이 모두 찾아와 새로운 왕 세조를 알현하며 진귀한 선물을 바쳤다. 중전이 된 부인은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세조에게 속마음을 말했다. -전하, 운악사의 주지 스님 예언이 맞았지 않습니까? -부인, 다섯 왕이 나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하가 첫 번째 왕이 되신 거고 우리의 자식들이 왕이 될 것입니다. 서른 중반의 세조와 중전은 인생의 황금기에 왕과 왕비가 되어 당당하게 대신과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경복궁으로 입궐했다. 그러나 조카의 왕위를 빼앗았다는 소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해 문종의 고신대신으로 단종의 보필을 유언으로 받은 여섯 대신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역적으로 처형되는 사육신사건으로 궁궐은 피바람이 멈추지 않았다.
[송주성 소설가 ] 2014년 금샘문학상 대상 작품활동 시작 2018년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2019년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저서] 2018 장편소설 <직지 대모> 2021 장편소설 <국궁> 2023 장편소설 <후쿠시마 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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