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물소리

김단혜 수필 읽기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6/08 [09:38]

계곡 물소리

김단혜 수필 읽기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6/08 [09:38]

                                                 

  © 포스트24

 

                                              계곡 물소리

 

                                                                                                       김단혜 수필가

슬세권, 슬리퍼 끌고 갈 수 있는 곳에 무엇이 있느냐에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나의 슬세권에는 집 앞을 나서면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새소리는 보너스다. 코로나가 시작된 지난여름 이곳 남한산성 아랫마을 사기막골로 이사 왔다. 사기막골은 흙으로 빚은 사기를 굽는 가마가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으로 골 깊은 계곡에 사철 물이 흐르는 곳이다.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처럼 동네를 산책하다 물을 발견했다. 손에 물을 적시고 발을 담그며 자연스럽게 물과 친해지면서 물소리 매력에 빠져들었다. ASMR(자율감각쾌락반응) 중에서 현대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연필 깍는 소리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책장 넘기는 소리, 커피 가는 소리, 바람 소리, 꽃잎 떨어지는 소리, 찻물 끓는 소리, 빗소리, 연속으로 찍는 카메라 셔터소리 ….개인적으로 새소리 물소리에 힐링 되는 1인이다. ​내가 가진 오감 중에 가장 발달한 것은 청각이다. 소리에 예민한 나의 갱년기는 소리로 왔다. 남편이 내는 모든 소리를 못 견뎌 했다. 텔레비전 볼륨, 수저 달그락거리는 소리, 변기 물 내리는 소리, 전화 통화 소리며 트림 소리, 코 고는 소리까지 남편이 내는 소리에 촉각이 곤두서며 날카로워져서 귀만 큰 당나귀 같은 여자가 되었다. 지금도 조금 시끄러운 곳에 가면 오래 있지 못한다. 시내버스를 타도 전화로 소설을 쓰는 사람을 만나면 바로 내린다.


​시인 김수영이 우리나라 최초의 재벌인 백남준의 아버지 백낙승의 한옥에 세 들어 살던 시절 경관이 멋진 전통가옥이 좋았지만, 그 집 정원사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싫어서 그 집에서 이사했다고 한다. 귀가 어두운 별장지기의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 때문에 그곳을 떠났다는 글을 읽고 많은 위로가 되었다. 목소리 큰 사람을 만나고 온 날이면 지갑을 잃어버린 듯 기분이 나쁘고 기를 빼앗겼다. 소리는 소리로 치유해야 하는 것.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힘든 시간을 견딘 내게 준 사기막골, 계곡 물소리다. 새벽이면 책 한 권을 들고 계곡으로 향한다. 바위에 앉아 책을 편다. 바위틈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책장을 넘긴다. 완벽한 하루다.

 


  

    ▲김단혜 수필가

 

 □ <한국작가> 2010년 수필등단 
 □ 야탑문학회 회장
 □ 성남문학상 수상 (2018년)
 □ 시집<괜찮아요, 당신> 책 리뷰집<들여다본다는 것에 대하여> 
 □ 수필집<빨간 사과를 베끼다> 
     vip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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