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 (14)

나호열 시인, 「목발」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5/27 [21:40]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 (14)

나호열 시인, 「목발」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5/27 [21:40]

 

  © 포스트2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 (14) 나호열 시인

                                                「목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유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속박당한 사람들이 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숱하게 부르짖었고, 쓰러졌고, 목말라했다. 자유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서 의식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에리히 프롬이 말한다. 김수영 시인은 생활인으로서 얽매인 자유와 이런 삶을 반성케 하는 1960년대의 강요가 빈한함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통해 참여시의 한 행로를 만들어나갔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로운 존재로 살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에 변혁을 일으켜 의미 있는 삶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강력한 자본주의 힘에 침윤 당해 현재 우리는 많은 부분 자유가 억제된 채 살고 있다.
 나호열 시인의 『안녕, 베이비 박스』에서 한 주제인 ‘자유’는 ‘고독’과 ‘외로움’의 정서를 낳는 ‘속박된 자유’이다. 그것은 근원적인 모성과의 결연관계(primary ties)가 단절된 채 현실  세계에서 홀로서야 하는데 이유를 두고 있다. (「커피」, 「바람과 놉니다」, 「오월의 편지」, 「꿈길」) 근원적인 세계에서 시인은 유목민의 자유를 만끽했고 단봉낙타처럼 살아왔다. (「너무 많은」, 「몽유」, 「숲으로 가는 길」) 그러나 모성과의 결연관계는 오래 유지될 수 없고 독립된 개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개성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이때 여타 조건이 시인의 개성화 실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현실 세계란 자연적이고, 근원적인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성과의 분리는 안정감과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고 자유를 유지할 수도 없어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  (「몽유」, 「구둔역에서」)
 또 하나의 원인으로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인 특수성에 이유를 두고 있다. (「목발. 1」, 「목발. 10」 , 「숲으로 가는 길」) 시인은 현실 세계에 복종하지 않으면 자유와 개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한 개인에게 있어서 경제적 활동과 물질적 획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 일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살든, 무엇과 연관된 일을 하든, 성공 신화를 쓰든 말든 개인의 몫이고 결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원리가 인간의 개성화를 드러낸다. 따라서 개개인처럼 시인도 물질을 추구하고, 경제적 활동에 의한 재화 창출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시인이 생활인이면서 시를 생산하는 시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한 가정의 부성 적인 존재이고, 창작활동을 하는 시인이다. 두 가지 일을 양립한다는 점에서 갈등의 골이 깊다. 그는 “그저 먹이에 충실한 채/ 내일을 걱정하는” 짐승이어야 하고, “매일이라는 절벽 앞에” 서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숲으로 가는 길」. 「목발. 1」) 일상에 지친 시인은 자신의 개인적 자유를 “메마른 빵과 결탁해버린다.” ‘빵’의 상징은 소극적인 의미에서 가족의 일용할 양식이고, 포괄적인 의미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인 물질에 해당한다. 결국, 시인은 개인적 자유를 물질과 교환함으로써 굶주림을 해결해버린다.

 

          자유는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고 배웠다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갈구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깨우쳤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말없이 행하는 사물들을 업신여기고
          값어치를 치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의 속박과 결탁하면서
          수인에게 던져주는 메마른 빵을 굶주림과 바꿨다

          발목이 부러지고 나서
          내게 온 새로운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어
          그런데 친구야
          네가 나를 의지한다는 것은
          오로지 나에게 너의 온 힘을 전해 준다는 것이지
          언젠가 너에게 버려질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기쁜 날이지
          그날까지 날 믿어야 한다는 것이지
          아 절뚝거리는 속박과 함께
          비틀거리는 목발
                                 -「목발 1」 전문

 

마치 마음의 발목이 부러져 절규하듯 강렬한 이 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속박당한 자유를 삐딱하게 바라보고 그것에 대한 죄업을 치르지 않은 이면을 감추지 않은 채, 잘못과 결탁하고  비틀거림을 내비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며 그저 일상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던 시인의 자유가, 갈구의 세계와 속박에 대한 자신만의 억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양상 이 시는 타자를 향해 무심히 던지는 읊조림 같지만, 시의 이면에는 그러한 자유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시인의 갈등과 싸움이 있다. 즉 시인은 “갈구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고”, “속박된 것에서 벗어나” 나고자 한다. 결국, 자유에 대한 동인은 시인의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곤궁한 현실 세계에 대한 극복이나 치유책을 내놓지 못하고 절망에 이른다. 더욱이 자신을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내던져버린/감자꽃 같다”라고 하고 “거칠고 비탈진 땅”, “바늘로 곧추서야 살 수 있는 사나운 바람의 채찍”에 휘둘린다고 한다. (「감자꽃」, 「긴 편지 2」) 그 점에서 시인은 좌절과 도피 심리를 드러낸다. (「빈집」, 「에필로그」, 「바랍과 놉니다」, 「몽유」, 등)


이러한 도피의 메커니즘은 대상들을 치환 은유와 동일화를 통해 형상화한다. “산수유 한 그루/ 이십리 장터 어머니 기다리는 아이”/ “어깨 위에 붉어진 눈시울 닮은 열매로”(「예뻐서 슬픈」), “너는 나 없이도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목발’”(「목발 1」)등에서, 시인은 ‘산수유 한 그루’를 ‘이 십리 장터 어머니’로, ‘기다리는 아이’를 ‘열매’라는 치환 은유로 비유한다. 또한 목발은 “너 없이 한 걸음도 못 나가고/너에게 나의 온 힘을 전해주는” 관계로 변한다. 서로 ‘버텨주고’, ‘전해주는’ 이런 관계 속에서 시인은 동일화를 통해 “동토의 세월”(「동백 후기」)과 어둡고 속박된 그림자 존재에서 벗어난다. (「긴 편지 2」) 자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늘진 ‘등’에서 나온다. (「등」) 등은 춥고 홀대받은 곳에서 환함과 어둠을 재구성하면서 보여준다. 냉기가 흐르는 방바닥을 온기로, 어두운 공간을 환하게 밝힌다. 따라서 ‘등’은 그리움의 저편에 서서 꺼지지 않고 누군가를 향해 불 밝히고 말을 거는 환한 존재로 축약된다.


나호열 시인의 시에서 속박당한 자유는 어떤 제약을 받고 있었는지, 어떻게 도피의 메커니즘에서 자신을 건져 올릴 수 있었는지는 다시 부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인에게 속박된 자유를 주는 물질과 경제적 활동이 표면적 원인에 해당된다면, 내면적 원인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근원적인 결연관계였던 모성이 해당된다. 모성은 절뚝거리는 속박의 자유와 어둠 저편에서 온기와 말을 건네주고 자유의 길을 열어주는 양면적 존재이다. 나호열 시인에게 근원적 모성은 시적 경험 속에서 서로 단절되고, 상처주고, 매혹당하면서, 동화되는, 그리움, 고통, 온기의 기표이다. 


 [나호열 약력: 시인 ]
□충남 서천출생
□1986년『월간문학』,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 『촉도』 , 『눈물이 시키는 일』 등
□현재 도봉문화원 도봉학연구소장, 한국탁본자료관 관장.

 

 

 

 

    ▲권영옥 문학평론가

 

 [권영옥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 경북 안동 출생,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 시론서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 시집 『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 『모르는 영역』
□ 전) 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현재) 《두레문학》편집인, 문예비평지 『창』편집위원 
□ <두레문학상>수상.

□ 이메일 : dlagkw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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