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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을 쓰다

김후곤 소설가의 천자수필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5/20 [22:38]

탈을 쓰다

김후곤 소설가의 천자수필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5/20 [22:38]

                                                탈을 쓰다

 

                                                                                                     김 후 곤 소설가


그 녀석, 천천히 앞으로 나가 몸통을 숙인다. 수건 두 개를 동그랗게 말아 자켓의 등속에 집어넣는다. 더욱 구부정한 모습이 되어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오른쪽 귀 위에서 비스듬히 쓸어내려 왼쪽 턱밑으로 왼손이 빠진다. 동작 하나하나는 품바 춤의 리듬을 탄다. 숙였던 고개를 서서히 들어 우리를 향한다. 눈 주위, 코, 입 모두가 왼쪽으로 기울어 찌그러졌다. 모두는 깜짝 놀란다. 마치 얼굴 위를 커다란 빙하가 왼쪽으로 훑어 내린듯하다. 눈동자, 몸통까지도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기우뚱하다. 그 녀석은 곱추가 되었고 얼굴은 기형으로 변했다. 우리는 크게 놀란다. 누구는 탄성을 지른다. 그 모습으로 곱추춤을 춘다.
그 녀석은 느릿느릿 자신의 등을 보인다. 꼼지락꼼지락 거린다. 갑자기 몸통을 홱 돌려 우리를 향한다. 반으로 꺾이어진 성냥개비가 그의 두 눈을 크게 벌리고 있다. 벌어진 눈, 검은 동자는 보이지 않고 흰자위만 허옇게 무채색이다. 입 가장자리에는 성냥개비 하나씩 끼워져 있어, 입 주위는 일그러지고 무언가를 부르짖고 있다. 도깨비 형상이다. 할로윈 마스크다. 이번에는 품바 리듬을 탄다.

별신굿에서 양반과 선비, 허풍과 여유를 묘하게 뒤섞어 말을 주고받는다.
“나, 사대부 자손인데.”
“뭣이 사대부? 나는 팔대부 집안이여. 거기에다 사서삼경을 다 외우고 있다네.”
“사서삼경이라. 젖 냄새 나는구먼. 나, 사서 육경까지 섭렵한 사람이라구. 허엄!”
“어험. 육경 속에는 봉사 안경, 머슴 새경, 팔만대장경…. 이 정도는 나도 알고 있으렸다.”
“그건 그렇구. 이 소불알은 저 백정 놈이 나에게 팔려구 가지고 온 것이라네.”
“아니지. 이 소불알, 벌써 흥정을 끝냈다는 것을 모르는고?”
“좋네. 그럼 저 과부는 내가 먼저지.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렸다!”
“어허, 그럼 우리는 삼각관계구먼.”
이를 보고 듣던 할미가 혀를 차며 꾸짖는다.
“이런 떨거지들 처음 봤다아~. 썩 꺼지거라~.”
양반과 선비는 자신들의 신분과 학식이 엉터리임을 스스로 말한다. 성에 대한 욕구와 집착을 보여준다.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애환을 표출하는 데 탈이라는 가면을 썼다.
양반탈과 선비탈, 대갓집 사랑에 올라가 주인과 맞담배질한다. 양반들에게 높임말을 쓰지 않으며 막말을 해도 상관없다. 탈을 쓴 이상 그 탈의 신분으로 인정된다.

모임에 나갈 준비를 한다.
칫솔질하고, 치아를 확인한다. 말끔하게 면도하고 꼼꼼하게 얼굴을 씻는다. 방으로 들어와 얼굴을 크리닝한다. 헤어크림으로 손질해 머리는 검게 반짝인다. 하얀 와이셔츠에 환한 넥타이를 찬다. 정장 차림이다. 현관으로 나가 반짝이는 구두를 신는다. 앞에 있는 커다란 거울에 전신을 비춰본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머리를 매만지고 양쪽 눈썹을 살살 도닥거린다. 사진을 찍는다는 듯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돌려본다.
이제 마지막이다.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짓는다. 선비의 웃음이다.

 

 

 

 

   

   ▲김후곤 소설가

 

  [약력]

 □ 현,청하문학중앙회 부회장

 □ 소설가. 수필가

 □ 수필집  『그게 사실은』 , 『숲을 거니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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