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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불꽃』, 최진자 시인을 만나다.

감동 주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행복한 삶..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1/05/14 [08:25]

『하얀 불꽃』, 최진자 시인을 만나다.

감동 주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행복한 삶..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1/05/14 [08:25]

 

  ▲ 최진자 시인의 모습.                                                                                   © 포스트24

 

▶최진자 시인은 세상을 울리는 기억의 언어를 『하얀 불꽃』 시집에 부려놓았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꽃잎을 틔우는 봄빛으로 만든 봄 그늘이 서럽다. 마지막 월세를 놓고 세상의 문을 닫아버린 세 모녀를 위한 추모시는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시인의 따뜻한 시심이다.  최진자 시인의 시를 읽는 사람들의 어깨가 반듯하게 펴지기를 기대하며, 아픈 사람들의 눈물 앞에 손수건을 건네는 『하얀 불꽃』 시집이 오래도록 사랑받기를 바란다.


Q : 『하얀 불꽃』 시집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세요      

A : 삶에 있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무엇일까. 사람처럼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감동을 줄줄 아는 사람을 제일 좋아한다. 반면 일생에 한번이라도 남에게 감동을 주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남을 위해 선한 일을 하는 것을 볼 때 인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뭉클하고 눈물까지 흘린다. 감동을 주는 사람이 내 주변에 몇이나 있을까. 느끼지 않고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짐을 갖는다. 이 시집 속에는 그러한 평생 간직하고픈 감동을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보호해주지 못해 가엾은 사람들이 있고 우리를 위해 희생을 한, 그리고 그리움을 남겨준 것들에 대한 시이다.

 

Q : 신포동의 숨결은 어떤 이미지 인가요?

A : 신포동은 쇄국정책에 닫혀 있던 우리나라가 외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항구가 열린 지역이다. 130여년 전 개항이 되며 외국의 문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생전 접해보지 못했던 것들로 노동의 대가가 있다는 것을 비롯해 공연, 오락시설, 복지제도, 교육시설, 산업화 등 근대화가 시작된 곳이 신포동이다. 우리는 역사를 느끼지 않고 감정 없이 읽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배를 곯아보지도 않았으며 힘들다고 한다.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한 번 되새겨 보자는 의미에서 이 시집을 꾸며 봤다. 역사의 땀방울이라는 단어에 힘주고 싶다. 인천에서 미두공장이 60여 곳이 있었는데 돈벌이가 없던 시절 맨 몸으로 질통을 메는 것부터이다. 신포동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에 알리고 싶어서였다. 인천에서 최초로 시작된 것들이 100가지가 넘는다는 사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발전시켰다. 고통의 시간을 꿋꿋이 견디어낸 어른들께 고마운 마음이다.

 

  ▲ 최진자 시인의 시집 『하얀 불꽃』.                                                               © 포스트24



▶최진자 시인의 대표시 2편을 소개합니다

 

                    파도


          해변을 때리는
          귀에 익은 소리
          푸르럭 턱 푸르럭 턱
          홑청 펼치는 소리
          해무 낀 수평선에
          어머니의 실루엣

          파도가 홑청처럼 밀려와
          거북 무늬 구김살 펴면
          맞받아 늘어진 물결에
          출렁하고 힘을 쏟는다
          파도는 되돌아가
          따스한 가슴에 가 닿고

          잔디밭 위에 하얀 포말이
          이슬 먹어 숨자는 천이 되살아나
          건너편에서 손목에 힘을 넣으면
          피칭이 띠가 되어 내게로 온다
          잠투정하는 파도를 잠재우려 주름을 펴듯 
          어머니와 나는 바다의 귀를 잡아당긴다

 

 

 

                    신포동에 가면

 

          연인이 생기거든 신포동에 와 보세요.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맞은편 언덕을 올라
          맥아더가 고향을 보고 있는 자유공원에서 태평양이 보일 거예요.

          동창을 만나거든
          키네마 담벼락으로 들리던 벤허의 전차 경주와
          동방에서 울리던 대전차군단의 군화 소리를 찾아보세요.

          바다와 하늘의 문이 있고, 레일이 눈부신 곳
          파도 소리 들으려 조곤조곤 얘기하는 곳이고요
          옛 그림자 상처 날까 뒷굽 들고 걷는 데입니다.

          풍경이 오십 년 전인 것은
          부두 노동자들의 힘겨웠던 삶을 간직하고 싶어서입니다
          뱃고동 소리 듣거든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주세요.

          이곳은 최초 개항지로 근대유물이 바지락처럼 널려 있는 곳
          근대식 공원과 박물관, 기상대, 실내 공연장, 등대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백 정도며 현대로 접어드는 길목이었다는 걸 아시나요

          어머니 혈관 같은 골목을 돌아 나와
          카페에서 커피 향과 물결 소리가 깔린 음악을 들으면
          숨결이라도 남기고 싶을 겁니다

 

 
▷시집은 전체 4부로 구성되었는데 인물, 사물, 현실 및 역사, 가족 등의 소재 및 주제 등이 각각의 장에 집중적으로 묶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관된 시의 주제의식과 방향을 만들고자 했던 시인의 노력을 읽을 수 있다. 특히 마지막 4부에 실린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의 시편들은 어머니와 딸의 추억이 애틋하고 아름답게 재현되고 있는 작품군들과 함께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의 죽음과 이에 따른 의식(儀式), 그리고 부재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산 자’들의 몫이 애잔하고도 곡진하게 그려지고 있다.


「파도」에서는 모성과 자연이 만나는 자연 공간으로 ‘바다’를 설정하고 있는데, 일렁이는 바다의 수면이, 이불 홑청의 주름에 비유되는 한편, 파도를 잠재우는 일과 이불 홑청의 주름을 펴는 일, 그리고 잠투정하는 아이를 재우는 과정이 동일한 시적 문맥에서 읽힌다. 어머니의 일상적 노동 공간이자 딸과 함께 마주한 생활의 공간이 자연-바다로 변주된, 아름답고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또한 시인이 사회적 약자들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라는 윤리적 인식에서 비롯된다(「그의 죽음이 나의 죽음일 때 누군가가」). 즉 우리의 삶은 세상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나의 삶도 그 누군가의 삶과 함께 있다. 나는 그들과 함께 ‘가슴 조이고, 눈물 흘리고, 평생 서럽고, 기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 이는 ‘우리’ 하나하나가 이 사회를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 희망이며 미래이기 때문이다.
                           - 김진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교수)

 

 

 

 

 

  

     ▲ 최진자 시인 


 [약력]

 □ 김포 출생
 □ 『미네르바』 신인상으로 등단
 □ 시집 『하얀불꽃』, 『신포동에 가면』
 □ 서상만 시인 시비 씀
 □ 현재 경기신문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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