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김단혜 수필읽기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4/08 [21:59]

봄밤

김단혜 수필읽기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4/08 [21:59]

 

 사진=김단혜 수필가.                                                                                      © 포스트24

 

                                                         봄밤
                                                            

                                                                                                      김단혜 수필가
 
꽃길을 갑니다. 한 발짝 옮길 때마다 꽃들이 일제히 일어섭니다. 마치 컴퓨터 화면 속에 파노라마 영상처럼 가까이 다가옵니다. 십수 년째 남편과 함께 찾는 곳은 메모리얼파크입니다. 가장 절정일 때는 사월 마지막 주입니다. 벚꽃이 지면 겹벚꽃이 피어나 앞으로 한 달 정도 이곳의 꽃들은 피고 지고를 반복합니다. 삶과 죽음처럼 말입니다. 남편은 시가지가 내다보이는 꼭대기에서부터 절정의 봄을 담기 시작합니다. 늘 그곳에서 같은 구도로 찍다 보면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장면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꽁무니를 보여주지 않는 시간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조금 아래로 내려오면 남편이 좋아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언덕에 서 있는 오래된 나무는 줄기를 땅바닥까지 늘어뜨립니다. 꽃잎 사이로 봄날을 희롱하듯 햇살이 비춥니다. 남편은 빛을 따라 꽃과 밀애를 즐기는 듯 오래도록 렌즈 속 꽃을 들여다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나무는 너럭바위를 품은 벚나무입니다. 오래된 줄기에서 중간에 삐죽이 뚫고 나오는 가지에 매달린 여린 꽃이 왠지 정감이 갑니다. 어린줄기는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돋아난 새치처럼 예쁘게 미운 세월의 흔적 같습니다. 너럭바위에 앉아 남편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바라보다 벚꽃아래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 반 꽃 반인 것이 마치 꽃이불을 덮은 듯합니다. 꽃잎이 하르르 날립니다. 마치 비단가루처럼 가볍게 날리는 꽃비를 눈으로 맞으며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섭니다. 선물처럼 내게로 온 소설을 폅니다. 올봄, 오래도록 봄을 뒤적이게 한 책입니다. 꽃잎처럼 흔들리다 쓸쓸해지기도 하는 중년의 사랑은 무엇일까? 죽음은 또한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남편은 내가 있는 곳으로 부지런히 걸어오고 있습니다. 바로 저 남자 지금껏 봄을 함께 했고 올봄에 깊이 사랑해야 할 또 다른 나의 봄입니다.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소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오래도록 촉촉함의 물기를 갖고 있습니다. 영경과 수환은 쉰다섯 동갑내기입니다. 둘은 마흔셋 봄에 만났습니다. 이혼한 전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이민을 가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합니다. 중학교 국어교사인 영경은 술 때문에 더 이상 학교도 나갈 수 없게 되고 알코올중독이 됩니다. 캔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그곳에 소주를 섞으며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마라.’ 로 시작하는 김수영의 ‘봄밤’을 낭송합니다. 맥주와 소주가 섞인 내음이 나는 여자 영경은 그렇게 조금씩 죽음의 문턱으로 하루하루 다가갑니다. 수환의 중증 류머티즘 상태는 더 심각합니다. 영경이 힘들어 하지 않고 자신을 보내줄 수 있는 날을 바랍니다. 요양원사람들은 알코올중독자와 류머티즘 환자인 이들을 알루커플이라고 부릅니다. 매일 죽음을 배웅하는 두 사람입니다. 영경은 외출을 해서 2박 3일이고 때로 보름씩 술을 먹는 아내를 깊이 이해합니다. 여기서 상대를 내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고 이해하는 여백이 있는 중년의 사랑법이 있습니다. 영경이 술을 마시면 술을 마실 수밖에 없겠지. 술을 마셔서 편해진다면 그래 마셔 그게 너니까 하며 상대를 기다려줄 줄 압니다. 사람의 좋은 점을 분자에 놓고 나쁜 점을 분모에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옵니다.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그 값은 1보다 작아집니다. 어쩌면 부부의 사랑은 끝없이 1을 향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둘의 사랑은 마지막에 절창처럼 명치끝을 건드립니다. 영경이 술을 마시며 정신을 잃어가는 시간, 수환도 숨을 거둡니다. 영경은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도 수환의 존재를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수환의 마지막을 끝까지 견딘 것입니다.
 
꽃놀이를 다녀온 남편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TV는 혼자 떠들어 댑니다. 커튼을 내리고 TV를 끄고 스탠드를 켭니다. 남편이 잠든 침대 밑에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권여선의 <봄밤>을 읽어주고 싶어서입니다. 베개 사이에 책 오른쪽을 끼우고 오른손으로는 책의 왼쪽 페이지를 지그시 누릅니다. 남편은 깊이 잠들어 아마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깨지 않을 것입니다. 태블릿에서 배경음악을 고릅니다. 따라 라라 딴 딴 따따 ~~ 그리고 소리를 줄이고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영경이 요양원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자 외출증을 끊어 밖으로 나가는 날, 수환에게 읽어주던 톨스토이의 <부활>의 한 부분입니다. 영경은 책을 읽다가 수환에게 읽어주고 싶은 문장을 만나면 접어두곤 합니다. 나는 영경이 되기도 하고 때로 수환이 되기도 합니다. 책을 읽다가 왼손으로 잠자는 남편의 손을 잡습니다. 남편의 손은 따스합니다. 영경이 수환의 손을 잡고 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곤히 자는 남편의 숨소리 깊고 평온합니다. 내 행동에 내가 취해서 봄밤이 점점 선명해집니다. 때때로 남편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봅니다. 때로는 문장에 취해 읽어 내려갑니다. 매번 눈물이 흐르던 장면에서 후드득 겹벚꽃잎 같은 눈물이 떨어집니다.
봄, 그리고 밤입니다.

 

 


   

       ▲김단혜 수필가

 

 □ <한국작가> 2010년 수필등단 
 □ 야탑문학회 회장
 □ 성남문학상 수상 (2018년)
 □ 시집<괜찮아요, 당신> 책 리뷰집<들여다본다는 것에 대하여> 
 □ 수필집<빨간 사과를 베끼다> 
     vip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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