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뉴런』, 조은설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1/04/01 [08:01]

『거울 뉴런』, 조은설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1/04/01 [08:01]

 ▲ 조은설 시인.                                                                                             © 포스트24


▶물소리로 말간 시를 쓰는 조은설 시인은 언어를 밀어 올리는 힘이 탄탄하다. 자연의 상처와 자신의 상처를 버무려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를 쓰는 시인이다.
『거울 뉴런』 시집이 세상 속에서 치유의 언어가 되기를 소망하며, 인터뷰에 응해 준 조은설 시인에게 감사드린다.

 

Q : 조은설 시인의 시적 뿌리는 무엇인가요?

A : 20대 꽃 피는 시절에 나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그것은 니힐리즘, 즉 허무주의에서 비롯되었는데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끝없는 목마름이었고 나는 그 속에서 메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산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나를 온통 사로잡았지요. 환경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닌데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내 영혼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었습니다.

문을 닫아걸고 죽음을 생각했죠. 죽음은 찬란한 날개를 펄럭이며 어서 오라고 손짓했습니다.
“죽음은 절망이 아니야. 그 너머 파라다이스가 존재한단다.”
내면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대단한 미혹이었습니다.
그 무렵 친구의 손에 끌려 교회에 나가면서 나는 기적처럼 회복되었고, 꿈처럼 시를 만났습니다.
시는 잠자던 나의 예민한 감성을 깨워 한 잎 한 잎 푸르른 잎들을 피워내기 시작했지요. 그토록 무의미하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새로운 질서와 의미를 가지고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풀 한 포기, 나비 한 마리도 가슴 떨리는 경이로움이었어요. 변한 것은 없는데 나는 분명히 변했고, 사월의 나무들이 쉼없이 물을 길어 올리는 것처럼 내 영혼은 어둠 속에서 빛을 길어 올려 새로운 삶의 가치를 구현하고 싶은 소망으로 부풀게 했습니다.
나의 시적 뿌리는 죽음을 이긴 사랑에 그 심지를 담그고 있습니다. 어둠과 고뇌의 시간은 나의 본질을 인식하는 통찰력을 주었고. 주위의 모든 것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넓혀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 앞으로 쓰고 싶은 시 세계는 무엇인가요?

A : 시의 효용은 마음의 치유에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 융은 ‘모든 치유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며 진정한 힐러는 내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시는 사실적 진술이 아니라 상상력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즉, 사실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는 훈련이 필요한데 대상에 대한 긍휼함과 진실이 없다면 공허한 울림이 될 개연성이 많습니다. 삶은 신이 주신 단 한 번의 선물인데 누구든 귀중한 이 삶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연약할지라도 앞으로 제가 쓴 한 줄의 시가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조은설 시인의 시 2편을 소개합니다,


                    물방울
 

 연잎에 물방울 하나 구르고 있다
얼굴 길쭉해지다  허리 잘록해지기도 하면서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청태 낀 기와집 한 채 덩그렇게 머금었다
 대문 앞에 낡은 문패 하나, 조부님 함자 적혀있다 까치발 해도 닿지 않는 웅숭깊은 삶도 가고, 댓돌에 검정고무신 짝들만 흩어져 천자문 달달 외고 있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오랜 빈집의 공허를 왕거미 홀로 물레에 감고 있다
 일곱 살 계집아이 기대앉던 대청마루 대들보에 석양이 피 칠갑을 하는 저녁,
우물 속에서 만삭이 다 된 달이 두레박을 타고 승천하기 시작했다 달은 오늘 밤 또 다른 달을 낳아 지붕 위에 휘영청 걸어둘 것이다

 폴짝, 청개구리 한 마리 튀어 오르는 소리
 폭삭,
그리움 한 채 내려앉았다


  
                    길은 아직 산란 중이다
                                                             
          길은 끝없이 산란을 하고
          또 자란다

          숲을 가로질러 내를 건너고, 섬과 섬 사이 물이랑 건너
          지층 속으로 금을 긋다가
          허공 깊이 덩굴손을 뻗는다

          사방연속 무성하게 자라던 길도
          하룻길 앞에 서면
          가슴 먹먹해 주저앉아 버린다
          길도 가슴을 앓는 것이다

          나는 늘 길 위에 서 있다
          새벽이슬과 저녁노을에 젖기도 하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곤 했다
          소라껍질 속에 넣어둔 발걸음 소리
          귀 기울이면서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쓸쓸한 날은
          한 줄 기도문이
          나를 부축해 걸어가곤 했다

          꽃 한 송이 꺼내고 싶은 
          길은
          아직도 산란 중이다

 

                

  ▲ 조은설 시집.                                                             © 포스트24

 

▷조은설 시인은 감수성이 탁월하다. 뛰어난 감성적 사고를 시의 형태로 구조화하는 능력 또한 남다르다. 그의 생각은 언제나 순수에 머물러 있고 눈은 아름다운 이상의 세계에 가 닿아 있다. 순수와 이상은 그의 시세계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준열한 사고의 과정을 거친 시편들은 삶의 궁극적 문제에 대해서 소홀히 보아 넘기지 않는다. 시안(詩眼)으로 찾아내는 세상의 물상에 대해 그것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관찰과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렇게 얻어낸 사물의 본질은 그의 시 속에서 광채를 발하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즉 삶의 저 깊은 의미가 시라는 틀에 담겨지는 순간이다.
                            - 문효치 시인

 

 

 

 

 

   

    ▲조은설 시인

 


 〔약력〕

 □ 한국 방송통신대학 국문학과 졸업
 □ 한국일보 여성 생활수기 당선
 □ 미네르바 등단
 □ 월간문학상 수상
 □ 아르코 문예기금 수혜
 □ 시집: 거울뉴런 외 3권
 □ 풀꽃문학회 회장

 

 

   【편집=이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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