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3)

'벚꽃 이미지',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0/04/02 [21:28]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3)

'벚꽃 이미지',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0/04/02 [21:28]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3)
                                                       -벚꽃
                                                                                                          한 상 훈 문학평론가


현재 우리는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를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일상이 마비되어 있다. 4월, 예전 같으면 나는 섬진강가나 경주 보문단지의 벚꽃들을 구경하고 왔을 텐데, 그런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 앞에서 일상의 소중한 가치를 새삼 느끼고 있다. 그나마 성남시는 탄천의 벚꽃들이 화사하게 우리를 맞이하고 있어 지쳐가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비나 바람이 불면 아름다운 벚꽃들도 순식간에 다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벚꽃의 성격에 착안하여 작가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벚꽃 소재의 글들을 발표해 왔다. 며칠 전 우연히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작가 온다 리쿠(1964~)의 장편 『굽이치는 강가에서』(2006)를 읽었다.


“봄이면 떨어지는 벚꽃잎이 눈보라처럼 뒤덮이는 커다란 벚나무 아래를 걸으면서 나는 세상의 중심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짙은 녹음이 우리 세 사람 위로 그림자를 떨구며 이상한 일체감을 자아내고 있었다.”라는 표현에 잠깐 시선이 머물렀다. 바람이 불 적 마다 눈 내리 듯 일제히 떨어지는 꽃잎들에 대한 묘사. 무척이나 매혹적이지 않은가.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몇 년 전 섬진강가에서 보았던 곱게 피워낸 벚꽃들이 연상되었다. 특히 이 작가의 꽃 이미지를 통한 인물들의 심리가 흥미로웠다. 그 책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문학을 살펴보니 꽃 중에서 유난히 ‘벚꽃’에 대한 글들이 두드러지게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카타야마 쿄이치이의 소설,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 만들어져 관객들의 마음을 울렸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3)의 마지막 부분이 기억난다.
“천천히 병의 뚜껑을 돌렸다. 앞일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병의 입구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팔을 있는 힘껏 뻗어 커다란 곡선을 그렸다. 흰빛의 재가 가는 눈발처럼 노을진 하늘을 떠돌았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벚꽃잎이 흩날리고 그 꽃잎에 섞여 아키의 재는 이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한 주인공이 세월이 흐른 후, 이제는 돌아와 백혈병으로 죽은 유리병 속 아키의 유골을 모교의 교정에서 날리는 대목이다. 만날 수 없는 여인의 유골과 꽃잎이 섞이면서 날아가는 풍경을 처연하게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한 여인에 대한 사랑과 죽음이 벚꽃 이미지와 절묘한 배합을 이루는 그 마지막 장면은 슬픔이 절제되어 있기에 오히려 독자들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박청호의 중편 「벚꽃뜰」(2005)은 일본을 배경으로 일본 사람들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불혹을 앞두고 있는 39살의 나이로, 은행원이다. 어느 날 아내와의 불화로 동경의 은행에 파견근무를 요청한다. 주인공이 출국하기 이전에 아내는 집을 나가버렸다. 이혼만 안했을 뿐 ‘결별’ 그 자체인 것이다. 일본인 동료인 다케시다와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소설은, 처음부터 ‘벚꽃’ 이미지가 깊숙이 작용하고 있음을 그의 말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다케시다는 우리말과 문화에 능숙한 편이고, 프랑스에서 철학을 전공한 은행원이다. 주인공 ‘나’는 눈 속의 ‘벚꽃’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끄집어내자 그는 “벚꽃 중에 유독 분홍빛을 띠는 게 있습니다. 아주 연한 핏빛이죠. 벚꽃 아래엔 죽은 사람들이 한둘쯤은 묻혀 있습니다. 흰 벚꽃이 점점 분홍빛을 띠어갑니다. 눈 속에 떨어진 피 한 방울은 눈에 잘 띌 테니까요.”

 

떨어지는 꽃잎 속에 연상되는 소멸의 이미지가 아니라 꽃잎의 색깔을 통해서 죽음의 이미지를 몽환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다소 환상적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벚꽃의 아름다움을 젊은 여인의 욕망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벚꽃나무는 욕망이 죽음을 깔고 서있는 형상”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나’는 커피숍을 나와 그의 차인 빨간색 페라리 스포츠카를 타고 어디론가 무서운 속력으로 질주하여 간다. ‘속도’는 젊음이고 욕망이며, 또한 이 소설의 주제와 관련되는 ‘순간적 삶의 황홀경’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벚꽃’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꿈꾸는 듯한 황홀경의 공간, 즉 벚꽃이 만개한 ‘벚꽃 뜰’의 공간에서, “벚꽃이 감추고 있는 것이 생에 대한 지독한 허무와 끝 모를 쾌락을 향한 욕정과 죽음에 대한 열망뿐일지라도 꽃 속에 파묻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어 좋았다.” 라는 주인공의 진술을 통해 작가 박청호는 이 소설이 지닌 탐미적 세계관을 유감없이 표출시키고 있다. 


소설뿐만 아니라, 츠지 히토나리와 릴레이 소설로 유명해진 『냉정과 열정사이』(2000)의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는 에세이 『당신의 주말은 몇 개 입니까』(2004)에서 “밤벚꽃을 구경하면서 가로수 길을 걷기 위해, 여름이면 비에 젖은 도쿄타워를 보기 위해 나간다.”고 독자들에게 속삭이듯 고백하고 있다. 벚꽃은 낮보다는 밤에 매력을 더 풍기는 것일까. 비단 일본 작가들뿐 아니다. 우리 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면우 시인의 시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젊은 남녀 나란히 앉은 저 벤치, 밤 벚꽃 떨어진다

떨어지는 일에 취한 듯 닥치는 대로 때리며 떨어진다

가로등 아래 얼굴 희고 입술 붉은 지금

천년을 기다려 오소소 소름 돋는 바로 지금

몸을 때리고 마음을 때려, 문득 진저리치며 어깨를 끌어안도록

천년을 건너온 매질처럼 소리 안 나게 밤 벚꽃 떨어진다.  

       -이면우, 「밤 벚꽃」 전문

 

이 시의 기본적 정황은 간단하다. 호젓한 밤에 젊은 남녀가 앉아 있는 벤치 위로 꽃잎이 마구 떨어지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한 젊은 청춘의 낭만적 모습이 화자의 내밀한 표현에 의해 전혀 다른 색깔의 느낌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일반적인 시의 감상법으로 본다면 이러한 상황은 ‘젊은 남녀’가 중심 소재가 되어 ‘벚꽃’이 아름다운 배경으로 작용할 텐데, 이 시는 정반대의 시각으로 조형화되고 있다. 꽃잎이 떨어지는 광경이 중심 테마로 환기되고, ‘젊은 남녀’는 단지 소도구에 불과하다. 그러한 점이 이 시를 단순히 낭만적 풍경으로 해석할 수 없는 단서가 된다. 그렇다면 한밤중에 ‘벚꽃’이 내리는 광경이 어떻다는 것인가. 
벤치에 앉아있는 젊은 남녀에게 떨어지는 꽃잎은 단순한 즉물적 배경의 풍경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 속에 포착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생명력이고 자연의 질서 속에 움직이는 미세한 운동의 작용이다. 또한 화자의 시선은 대상에 밀착되어 있지 않다.


시인은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진술하고 있다. 그 점은 이 시가 감상적 정서에 빠지지 않는 중요한 덕목이 된다. “천년을 기다려 오소소 소름 돋는 바로 지금”과 같은 과장되고 환상적 표현에 있어서도 일정한 사실성을 획득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이 시는 벤치에 앉아있는 청춘 남녀의 사랑이나 밤 벚꽃의 분위기가 외롭고 차가운 풍경에 머물지 않고 있다. ‘밤벚꽃’이라는 지극히 미미한 자연 현상의 작은 몸짓에 신화적 시간을 부여함으로써 거듭 읽을수록 시인의 상상력이 우주적 질서의 지평에 다가가고 있음을 독자들은 자각하게 된다.


이 시처럼 벚꽃은 밤이요, 진저리치도록 한번에 우수수 떨어지는 것에 작가들은 주목한다. 그것은 ‘벚꽃’이 사람의 마음을 홀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년을 기다려 소름 돋는” 시적 표현에 어울리는 일본소설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전후 일본의 대표적 작가에 속하는 사카구치 안고(1906~1955)의 단편 「벚꽃 만발한 숲 아래」(1947)는 벚꽃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영혼이 빼앗기게 되는 비극적 소설이어서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다분히 설화적이고 엽기적인 요소가 작품의 밑바탕에 관류하고 있는 이 글은, 마치 옛날이야기를 하듯 진행되고 있는 환상적 성격의 소설에 속한다. 


나그네들이 벚나무 숲 아래를 지나야하는 길이 있었다. 그 벚나무 숲은 꽃이 피지 않을 때는 괜찮은데, 벚꽃이 피는 계절만 되면 나그네들은 정신이 이상해지곤 했다. 그곳에 ‘산적’이 살기 시작했는데, 그 역시 벚나무 아래에만 가면 무시무시해져서 정신이 이상해지곤 했다. 그래서 그는 벚꽃이 싫어졌고, 두려운 존재로 인식했다. 벚꽃 아래에는 바람도 불지 않는데 나뭇가지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꽃잎이 살랑살랑 떨어지듯 혼이 빠져 나가” 몸이 쇠약해져 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산적행위를 하던 중에 한 명 뿐인 부인이 일곱 명이 되었는데, 드디어 여덟째 부인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번엔 남편을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여자가 너무 아름다워 무심결에 남편을 베고 말았다. 그녀는 걸을 수가 없으니 업어달라고 했고, 산적은 그녀를 업고 집으로 갔다. 집에는 일곱 명의 아내가 있었지만, 그녀는 그들을 다 죽여버리라고 했고, 산적은 그녀의 말에 꼼짝 못하고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산적은 여자들의 목을 다 베어버렸다. 단 절름발이 여자는 하녀로 쓰겠다고 해서 그녀만 살려 두었다. 산적은 일을 다 끝내고 피 묻은 칼을 던져 버리고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곤 그는 “악몽에서 깨어난 기분이었고, 자기도 모르게 눈이며 혼이 모조리 여자의 아름다움에 빨려 들어간 기분”이었는데, 이러한 감정이 전에도 있었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것은 바로 벚꽃이 만개한 숲 아래였다.


작가 사카구치 안고는 산적의 넋을 빼앗아버리는 그 여자와  만개한 벚꽃과 밀접하게 조응시키면서 서사를 전개한다. 여자는 산적과 같이 살면서 매우 방자했고, 불평이 많았는데, 어느 날 이곳을 벗어나 ‘미야코’(교토)로 가고 싶어 했다. “당신의 힘을 이용해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을 가져다 미야코의 세련됨으로 내 몸을 장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여자는 말한다. 산적은 그녀의 말대로 그곳에 갔다. 그는 미야코에서 그녀가 원하는 옷가지와 보석, 장신구 등을 훔쳐 준다. 하지만 그녀가 진실로 갖고 싶어하는 것은 사람들의 ‘목’이었다. 산적은 할 수 없이 여러 저택에서 베어 온 ‘목’을 방에 진열해 놓았는데, 그녀는 매일 죽은 사람의 머리를 갖고 놀았다.

 

점점 이 소설은 후반에 넘어갈수록 기괴하고 황당한 서사가 극에 이른다. 베어온 목 중에는 공주의 목도 있고, 중의 목도 있었는데, 여자는 그것들을 책상 위에 놓고 술을 따르거나 볼을 비비고 핥기도 하고 간질이면서 놀다가 싫증을 내더니 “더 뚱뚱하고 밉살스럽게 생긴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산적은 많은 사람들의 목을 베어 갖고 와서 그녀를 즐겁게 하려고 애쓰지만, 이제는 이곳에 염증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무를 자르는 것과 같은 사람들의 ‘부드러운 목’을 치는 것, 즉  밤에 사람을 죽이는 일에 싫증이 났고, 여자의 끝없는 욕망도 지겨웠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날 스즈카의 벚꽃 숲이 문득 떠올랐고, 그녀에게 산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의외로 여자는 당신이 아니면 살 수 없다고 하면서 산적을 따라 가겠다고 한다. 산적의 마음은 산으로 돌아갈 생각에 새로운 희망으로 들떴고, 내면적 방황에서 벗어난다. 산으로 가는 중에 그녀는 처음 산적의 집에 올 때처럼 그의 등에 업혀서 가게 된다. 바야흐로 벚꽃 숲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그곳은 꽃잎으로 가득 뒤덮여 있다.


“남자는 만개한 꽃 아래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주위는 고요했고 점점 냉기가 도는 듯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그녀의 손도 함께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갑자기 불안해졌습니다. 순간 그는 깨달았습니다. 여자가 귀신이라는 것을. 돌연 ‘쏴’하는 찬바람이 사방 끝에서 불어왔습니다. 남자의 등에 달라붙어 있는 것은 보랏빛 몸뚱어리에 얼굴이 큼지막한 노파였습니다. 입은 귀까지 찢어져 있고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은 녹색이었습니다” 


산적(남자)은 산으로 여자를 업고 돌아왔으나, 벚꽃이 활짝 핀 숲에서 그녀는 귀신으로 변하고 싸움 끝에 그녀의 목을 졸라 죽이게 된다. “귀신의 목을 조르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여자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 ‘흉악한 귀신’을 죽이고 보니 그녀는 다시 아름다운 여자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결국 광기와 폭력 속에서 산적은 귀신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를 벚나무 숲의 한가운데서 죽이게 되고, 극도의 슬픔 속에 잠긴다.


이 소설은 벚꽃이 사람의 영혼을 빼앗아가는 이야기 속에 변신 모티프가 결합되어, 파국을 향해 나간다. “그녀의 시체 위에는 벌써 몇 개의 꽃잎이 떨어지며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흔들어 보았습니다. 외쳤습니다. 안았습니다. 그러나 헛수고였습니다. 그는 왈칵 울어 버렸습니다.” 이제 그는 벚나무 숲에 대한 공포나 불안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는 돌아갈 곳이 없어지고 벚나무 숲에서 오래도록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여자의 얼굴을 덮고 있는 꽃잎을 치워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손 아래에는 수북이 쌓인 꽃잎만 있을 뿐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즉 여자의 시신이 사라진 것이다. 그 순간 그의 ‘손과 몸’도 소멸된다. 이 장면은 얼핏 만화적 상상력의 황당한 결말로 작품을 단순하게 생각하여 평가절하하기 쉽다. 하지만 서사 전체의 구조적 측면에서 차분하게 들여다본다면, 다분히 환상적이며 비현실적 결말에 이르러,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생의 비극적 한 지점을 상징적으로 느끼게 된다.

 

외로운 인간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환상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 소설은, 아름다움으로 위장된 벚꽃 모티프의 악마적 속성을 섬뜩하게 표출시킨다. 사카구치 안고의 단편 「벚꽃 만발한 숲 아래」, 여자의 아름다움에 취해 영혼을 빼앗긴 사내의 이야기다.

 

 

 

  

   ▲한상훈 평론가

 

 

 [약력]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 출간.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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