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 』, 조재형 시인을 만나다

시골 법무사의 심심한 이야기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1/03/16 [21:00]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 』, 조재형 시인을 만나다

시골 법무사의 심심한 이야기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1/03/16 [21:00]

 

 ▲ 조재형 시인.                                                                                            © 포스트24

 

▶  누군가의 눈물을 읽어내며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찾아 한편의 서사로 기록한, 이 산문집이 세상의 소망이 되기를 바라며 인터뷰에 응해 주신 조재형 시인에게 감사드립니다.


Q :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는 어떤 산문집인가요 ?

A :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는 제가 수사관으로서 16년, 법무사로서 18년째 사건 현장을 누비며 법을 통해 바라보던 시각에 문학적 감성과 사유를 곁들여 풀어낸 사건 중심의 에세이입니다. 글을 이끄는 소재들은 하나같이 제가 직접 부딪치며 몸을 상하여 얻은 것으로, 얼핏 법의 언어는 문학과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현실을 담아내고 진실을 캐내는 점에서 무척 닮았습니다. 산문집 속에 담긴 66편의 이야기는 난생처음 독자들의 심심한 일상에 심심한 감사와 심심한 사랑을 일깨워줄 것입니다.

 

Q : 수사관 출신 시인으로서 산문집을 펴낸 남다른 동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A : 낮에는 법무사로 일하고 밤에는 시와 산문을 쓰는 작가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거창한 지식이나 추상적 진실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수사관과 법무사로 일하는 과정에서 죄의 앙갚음보다는 사건 당사자들과 함께 조율하며 풀어나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실행해왔던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본문 속에 등장하는 의뢰인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장삼이사들입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낯익은 주인공들의 번민에 공감하며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텅 비어 있는 집과 말이 없는 주인을 통해 그리움 한 채를 독자들의 가슴 깊이 옮겨다 주고 싶었습니다. 산문을 엮어놓은 책이지만 시종일관 시적인 메타포와 절제된 문장으로 전개되는 이 책은 첨단 자본주의와의 결별을 암시하듯 느린 속도와 낮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비주류의 삶을 지탱해온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면, 혹은 디지털의 속도로 흘러가는 세상에서 여전히 꿋꿋하게 천천히 걷기를 바란다면 이 책은 독자들에게 바치는 값진 헌사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 조재형 시인의 산문 중 2편을 소개합니다.

 

「자백과 고백 사이」


같은 본당의 신부에게 고백하는 성사는 끔찍했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술 마시고 같이 담배를 피우던 사제에게, 밤중에 저지른 죄를 벌건 대낮에 밝히는 건 스스로에게는 폭력이었다. 나같이 소심한 고백자를 위해 본당에서는 손님 신부를 초대하고는 했다. 그러자 본당 신부에게 고백하는 사람들과 손님 신부에게 고백하는 사람들로 갈렸다. 고백할 것도 많고 고백할 내용이 끔찍한 나는 언제나 손님 신부 쪽에 줄을 섰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보속하고 고백한 그다음 주, 나는 또 같은 죄를 저지르고 미사에 참례하는 상습범이 되었다.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 그것은 수줍은‘부객浮客’이었다.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두 번째 세 번째 그것이 방문했을 때 스스럼없는‘풍객風客’이 되었다. 두 번째 방문을 치른 다음 전과자처럼 대담해졌다. 참회 없이, 성사를 위한 고백을 저질렀다. 고백성사가 그것의 새로운 씨앗이 되었다. 내가 그것을‘식객食客’으로 대하자 서먹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어졌다. 그것은 나를 마음대로 들락거리는‘낭객浪客’이 되었다. 어느 때부터 내 양심의 비밀번호를 알아낸 그것은‘숙객熟客’으로 눌러앉았다. 나를 방문하는 그것을 이냥저냥 내버려 두니 숫제 주인 행세를 했다. 바늘구멍 출구로 다니던 ‘노객老客’은 배 한 척 드나드는 항구로 변했다. 머리카락 한 올 차지하다가 등골째 뽑아가려는‘폐객弊客’이 되었다. 한때 낯설었는데 지금은 낯익은‘자객刺客’이 되었다. 

 

어디까지 죄인지 어디까지 반성인지 경계가 모호해졌다. 고백성사는 대축일의 통과의례가 되어버렸다. 차마 본당에서는 고백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이웃 성당을 전전했다. 몰래 찾아간 성당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성사를 들킨 나는 뜨끔했다. 다른 성당에서 고백성사를 보는 것도 넌더리가 났다. 나는 조금씩 포기를 시도했다. 적당히 반성하고 적당히 고백하고 조금씩 프로가 되어갔다. 적당히는 나의 수단이고 비법이고 고백을 때우는 비밀병기였다.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을 용서하러 왔다는 성자 앞에서 나는 이방인이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오인했다. 아니 내가 그들을 속였다. 그들은 내 표정에서 진심을 찾아냈다고 양심을 운운하고는 했다. 내가 저지른 양심 세탁에 넘어간 것이다. 잠복 중인 내 위선을 그들이 놓친 것이다. 나는 세간의 고평가된 내 불찰을 묵인하고 방조했다.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


늙어가는 집을 시골에서 찾았다. 오래전 타계한 피상속인 명의로 등재된 집은 망자보다 더 늙었다. 워낙에 폐가라서 허물고 다시 짓는 편이 나을 듯싶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집을 나간 뒤 소식이 없다. 저승의 노인이 가옥대장에 둥지를 틀고서 이승의 집을 지키는 중이다. 떠난 주인의 남아 있는 상속인을 찾아냈다. 그 형제들에게 번갈아 연락을 시도했다. 다 쓰러져가는 집이라 시세라는 것이 형성될 리 없다. 집값보다 개보수 비용이 몇 곱절 더 들어가게 생겼다. 그렇다고 거저 넘겨달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당국이 멋대로 매겨놓은 공시가액 값으로 쳐주겠다고 넌지시 제의했다.


그놈의 가격이라는 것이 매수인으로서는 지급하기 아까운 금액이고, 옛 주인으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서운한 금액이렷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유년의 서사가 송두리째 담겨 있는 대하소설 같은 전집인데…. 상속인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집이 털리건 넘어가건 안중에도 없다. 우선은 쳐주는 집값이 뜻밖의 횡재라는 눈치이다. 인수하는 나도 세월의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팔려 가는 유기견처럼 집의 모양새가 애처로운데, 정작 주인집 도령은 서운한 기색을 안 보인다.

 

집은 이제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제 속에 자신을 맡긴 채 추억을 옹호하는 데만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거쳐 간 식구들의 흔적을 그 몸 안에 지니고 있다. 집을 바라보는 이들은 두 부류로 갈라졌다. 하나는, 재산 가치로 보는 사람이다. 귀신이 뛰쳐나오게 생겼다고 손사래를 친다. 내 어머니와 통장님이 그들이다. 또 하나는, 추억의 깊이로 헤아리는 사람이다. 마을 사람 누구라도 만나게 되면 칸칸마다 품고 있을 사연을 캐묻는다.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인이 그들이다. 양쪽 모두 집의 속내와는 무관한 평가이다. 하지만 집은 그 어느 쪽도 포용하리라는 자세이다.


나는 끝도 없이 집을 향해 묻고 또 묻고 싶어진다. 왜 여태껏 쓰러지지 않고 나를 기다려 왔는지. 집이 나를 통해 어떤 꿈을 이루려는지. 월척을 낚아 횡재한 나는 집의 몰골에서 측은지심을 읽는다. 화려한 칼라로 길든 나에게 흑백의 담백한 세계를 제공한다. 어떻게 늙어가야 하고, 어떻게 침묵해야 하며, 어떻게 낮아져야 하는지 집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온갖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짐승처럼 집은 생명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한때 사람을 안고 키웠던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 있다. 문패가 그 흔적을 대변하고 있다. 내부의 모든 장기가 기능을 멈추고 마지막 숨결처럼 바람이 약하게 드나든다. 바람마저 한 점 없다면 집은 사망신고가 내려질 것이다. 근력을 거의 상실한 집에서 턱수염처럼 자란 잡초가 반갑기까지 하다. 스피커를 점검하듯이 대문 안쪽에 대고 말했다.
 -아무도 없어요?
 -저기요. 아무도 없느냐고요!
 아무도 없다는 걸 증명하듯 아무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 조재형 시인

 

 

 [약력 ]

□ 전북 부안 출생. 2011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지문을 수배하다』『누군가 나를 두리번거린다』 산문집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가 있으며 2018년 푸른시학상을 수상. 현재 법무사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다.

 

 

 

 【 편집=이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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