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지 시인의 작은시집,『열일곱 마르코 폴로 양』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3/11 [21:23]

연명지 시인의 작은시집,『열일곱 마르코 폴로 양』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3/11 [21:23]

                             연명지 시인의 작은시집, 『열일곱 마르코 폴로 양』

 

 ▲  연명지 시인의 작은시집 ,『열일곱 마르코 폴로 양』                                          © 포스트24

              

▶디지북스 작은시집 8차 출판 원고 공모에 선정되어 파미르 고원의 '열일곱 마르코 폴로 양'이 세상에 나왔다. 10편의 시와 1개의 산문이 실린 작은 전자시집이다. 마르코 폴로 양이 세상의 구석구석을 밝혀주는 신선한 희망이 되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선정된 시집에 실린 연명지 시인의 시 2편을 소개 합니다.


                    열일곱 마르코폴로 양

                                 
          파미르 고원의 마르코폴로양은
          아몬드꽃을 좋아하고 K-POP을 따라 부르는 
          가수 지망생 이었어요

          지망생,
          아름다운 직업이지요
          바람의 숨결에 리듬을 타며
          초원을 걷는 지망생
          페스튜카풀을 꾹꾹 씹으며 겨울을 견딘
          야생염소를 사랑하지요

 
          겨울의 짐승들은
          겨울지망생이겠죠
          설산의 유령, 눈 표범은 눈 지망생일거고요
          초원에 엎드리면 풀이 흔들리고
          돌의 등을 뒤집으면 물고기가 헤엄치는
          자연의 지망생들,
          배에서 강이 흘러야
          목소리가 트인다는 마르코폴로양
          목덜미를 물려 피가 흘러도
          포기할 수 없는 아이돌 염소의 노래

          눈이 녹으면 표범도 녹을거라는
          가요는 어차피 표절이었어 
          달빛이 어두워지고
          능선을 끌고 가는 긴 꼬리의
          높고 황량한 땅 파미르의 눈 표범,
          고산의 유령.

          열일곱 마르코폴로양이 방심한
          설화의 지망생

 

 

                    콩 까는 여자

                        

          B형 여자를 까면
          먼지위에 싹을 틔운 콩이 튀어나온다.
          콩 구르는 소리마다 구석이 생겼다.
          구석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 보이는 곳
          자칫 찾지 못한,
          갸웃거리는 고개들이 싹을 틔우는 곳,
          그러므로 가만가만 쓰다듬 듯 콩을 까라는
          구석의 조언助言

          흩어진 진심들
          식탁으로 모아지고
          속상하게 속이 빈 콩깍지들에게선
          튀어나간 것들로 움푹했던
          비릿한 후회가 나열되어 있다.

          얕은 잠속에서 멀리 두었던 실수를 반복하다
          아침 햇살에 눈 뜬다.
          한결 가벼워진 여자의 나른한 종아리에서 
          새끼 쥐들이 줄줄이 도망간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 하라는,
          적절한 밤이 콩 꼬투리마다 들어있다.
          태어 난지 얼마 안 된
          콩들도 줄줄이 깎지를 떠나
          친밀하게 보글보글 끓는다.
          콩은 모두 알알의 구석을 키우고 있다.

 

 

  〈조은설 시인의 서평〉

▷ "열일곱 마르코 폴로양", 시집의 제목이 이색적이다. 연명지 시인의 시를 읽으며 나는 이 시인이 독특한 빛깔과 향기를 가진 시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시는 대상을 초월하며 빛나는 상상력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 “내일은 눈물이 녹을 수도 있다”는 구절에서 나는 잠시 먹먹해졌다. 그렇다. 눈물은 이 세상을 가장 정직하고 진실한 표현의 산물이다. 언제쯤이나 맑고 아름다운 눈물의 강에 일엽편주 하나 띄울 수 있을까? 가슴이 따뜻한 연시인의 시편들이 그날을 속히 불러올 것이라는 소망이 생긴다. “콩까는 여자”에서 콩과 구석의 조합이 얼마나 절묘한지! 콩은 구석을 찾아 굴러가는 속성이 있다. 구석은 가장 낮은 곳,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여야 보이는 법이다. 세상의 낮은 곳을 주목하는 시인의 시선이 정겹게 다가온다. 신선하고 발랄한 시어들, 깊이 있는 사념들이 연명지 시인의 앞날을 기대하게 한다. 사과의 표피가 아니라 본질을 꿰뚫어 본 세잔처럼 연시인도 시의 본질인 순기능으로 독자의 영혼을 밝혀 나가기를 바래본다.   

     


  〈독자의 평〉

▷신작 시집을 찾다가 독특한 제목에 눈길이 가서 펼쳐든 시집.
읽어내려가면서 시집 속에 투영되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시인의 관심사가 폭넓어 시인의 시선을 모두 따라가기엔 숨이 차지만, 구체적 표현으로 담아낸 귀절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시인의 마음을 절반쯤은 따라갈 듯합니다.
외진 곳 사회 구성원에 대한 시인의 애정이 묻어나는 종로여관 시를 읽을 때는 어느새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팽목항의 모순을 점잖게 꾸짓는 대목에서는 작은 위로를 얻게 되네요.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아쉬움을 담은 두 시에서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연명지 시인의 소박한 싯귀들로 그간 놓치면 살아온 시간들을 다시 살펴보게 됩니다. 모처럼 일요일 하루를 묵직하게 보낸 듯합니다.

                          -  han***

 

 

 

 

  

     ▲ 연명지 시인

 

 

 【저자소개】

□ 시의 정전기가 많은 괴산에서 태어나 시적인 자작력 안에서 자랐다.
랭보의 시를 좋아하고 세잔의 사과 그림을 좋아한다. 아직 만나지 못한 언어를 찾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중얼거린다. 내가 체험한 단어로만 시를 쓰고 싶어 한다. 2013년 미네르바 시선으로 〈가시비 〉시집을 출간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는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친구다. 나는 아직도 내 서랍속이 궁금하다. 시집으로 〈가시비〉와 〈사과처럼 앉아있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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