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동백꽃 러브레터

감단혜 수필읽기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3/10 [11:08]

동백꽃 러브레터

감단혜 수필읽기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3/10 [11:08]

                         

  사진 = 김단혜 수필가.                                                                                  © 포스트24


                     

                                           동백꽃 러브레터  

                                                                                                      김단혜 수필가

 


돌 위에 동백 두 송이
남도로 출사를 간 남편이 동백 사진을 보냈다. 동백을 보는 순간 바로 뒤에서 내게 "여보, 사랑해!" 라고 하는 것처럼 들려 뒤돌아본다. 보고 또 봐도 맘에 쏙 드는 사진이다. 꽃에 초점을 맞추고 뒷 배경을 날리고 꽃을 클로즈업한 사진이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남푠은 카메라를 챙겨 전국을 떠돈다. 꽃을 찾아 봄을 따라 풍경을 만나러 간다. 아니 자신을 만나러 떠난다.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남편은 풍경사진 작가다. 남푠이 카메라를 챙기면 어디로 가는지 언제 오는지 묻지 않는다. 대신 가끔 사진으로 안부를 전한다. 사진을 보면 남편의 기분을 알 수 있다.

 

말없이 보내준 동백 두 송이. 한 송이는 약간 앞에 꽃잎을 벌리고 다른 한 송이는 뒤에 다소곳이 놓여 있다. 배경은 돌 위 인 듯 이끼가 있고 주위는 안개 낀 듯 희미하게 날려 버려 알 수 없다. 떨어진 동백 두 송이를 보는 순간 마음이 확 열리면서 무엇인가 울컥 하고 올라오며 어 ~ 하고 혼잣말을 한다. 남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게 언제인지 아득하다. 문득 중년에 듣는 사랑의 고백이라니 얼굴이 붉어지며 가슴이 뛴다. 가까이 있는 듯 남푠의 숨결이 느껴진다. 이건 완전 내거네. 흥분한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선물이야.” 라고 답장을 보낸다. 사진작가와 30년을 살다 보니 사진으로 대화를 한다.

 

수년 전 막 등단을 했을 때다. 남푠이 수년간 연재 중이던 <분당메디컬쳐>라는 잡지에 남편의 사진과 내 글로 포토에세이를 4 년간 연재한 적이 있다. 남푠은 십 수 년 월간 잡지에 4컷 정도 사진을 실어왔다 그중에 한 장 그것도 잡지의 맨 앞장에 내 글을 실었다. 사진과 시,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사진에 글을 싣는 것은 누군가 한 사람은 양보해야 하는 것이다. 사진과 글이 잘 맞을 수도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제나 남푠의 사진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그때 알았다. 서로의 반쪽을 채워 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고수인 남편은 늘 나를 위해 여행지마다 풍경 사진이 아닌 여백이 있는 클로즈업 사진을 찍었다. 사진에 어울리는 글을 쓰라는 나를 위한 작은 배려다. 그렇게 우리는 4년을 함께 작업했다. 

 

다달이 올라오는 사진에 나는 낑낑대며 시를 썼고 보내준 사진에 이거 아니야, 싫어, 다른 거 없어... 마치, 지면이 내 것인 양 거만을 떨었다. 마치 글에 사진이 아니라는 듯 고마운 줄 몰랐다. 사진에 나를 위한 여백은 당연한 줄 그러다 가끔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만나면 글이 써지지 않아 몸을 떨었다 남편이 보내온 사진 한 장을 보며 그때, 철없던 시절이 생각난다. 장소를 옮긴 남푠은 이번에는 동백이 피바다가 된 사진을 보냈다. 바닥엔 흥건히 피바다를 연상시키는 아기 동백이 모가지를 떨군 채 뒹굴고 있다. 동백이 비처럼 내린 소멸하는 봄을 본다. 매달린 동백도 마치 떨어지기 위해 매달린 듯 저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피보다 붉은 동백, 내게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남편이 잠 들면 몰래 빠져나와 자판을 두드리고 책을 읽었다. 봄 동백 바위에 떨어진 두 송이 동백은 각자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서로에게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걸어온 우리 부부 같다. 동백을 보며 부부란, 마지막까지 편이 되어 주는 것이 아닐까. 오랜만에 잠이 오지 않는데도 남편 옆으로 간다.

 

 

 

    ▲ 김단혜 수필가


 □ <한국작가> 2010년 수필등단 
 □ 야탑문학회 회장
 □ 성남문학상 수상 (2018년)
 □ 시집<괜찮아요, 당신> 책 리뷰집<들여다본다는 것에 대하여> 
 □ 수필집<빨간 사과를 베끼다> 
     vipapple@naver.com

 

 

 
 【편집=이영자 기자】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포토
1/13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문학/ 예술/인터뷰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