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인(人)을 위하여』, 남상광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1/03/04 [21:32]

『빵인(人)을 위하여』, 남상광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1/03/04 [21:32]

                         『빵인(人)을 위하여』, 남상광 시인을 만나다.

 

 ▲ 남상광 시인.                                                                                             © 포스트24

 

▶ 남상광 시인은 언어로 봉사를 하는 따뜻하고 섬세한 시인이다. 그의 삶 자체가 시라는 생각을 하며 시집을 읽었다. 시에 도착한 언어를 잘 발효시켜 설레게 하고. 때로 어떤 시에서는 고압의 전류가 흐르기도 한다. 멋진 비유가 없어도 시 자체로 비유인 ‘빵인을 위하여’가  오래도록 세상을 품기를 바랍니다. 

 

  © 포스트24

 

Q : 남상광 시인의 시적 뿌리는 무엇인가요?

A : ‘지뢰 같은 사랑’과 아직도 알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저에게 있어 사랑은 항상 풀리지 않아 골치 아픈 수학 문제였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답이 나올만한 사랑의 방식 근처에라도 가 본 스승을 찾지도 못했거니와,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변증법적 사랑학자들도 자신들의 결말은 대부분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는 실망을 금치 못하곤 했었지요. 어쩔 수없이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 참가한 지역이 휴전 중인 지뢰밭이었나 봅니다. 장미와 안개로만 싸우는 줄 알았던 전쟁터에는 크레모아, 발목지뢰를 비롯한 많은 종류의 지뢰들도 같이 숨겨져 있었지요. 들판과 산악을 헤매며 여기저기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결국에 밟게 된 지뢰에 어쩔 줄 몰라 발도 떼지 못하고 긴 세월 그냥 서 있습니다. 저는 과연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Q : 두 번째 시집 “빵인(人)을 위하여”가 독자들에게 어떤 문장으로 남겨지길 바라는지요?

A : 존경하는 한 선배께서 이런 축하 문자를 보내주신 적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건드리지 않는 시집은 읽지 않는데 그렇지 않았다. 시집 한 권에서 마음을 건드리는 시가 5편 이상이면 성공한 시집이라 생각하는데 그 이상이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자기만의 색채가 확실한 시를 쓴다면 기꺼이 독자가 되어주리라.” 말씀만으로도 너무 황송한 시간이었습니다. 독자에게 이 세 개의 문장 중 하나만이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시집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남상광 시인의 대표시 2편을 소개 합니다.

 

                    새벽 Ⅲ

 

          밤을 새우던 마지막 가로등마저
          내일이란 명분 아래 잠자리에 들고

          졸음에 지친 별들이 얼마 남지 않은 빛을 쥐어짜려
          두 눈을 부릅뜨는 일촉즉발의 시각

          그
          때,

          깊은 꿈에서 문득 깬 허탈한 때는
          짧았던 첫 키스처럼 못내 아쉬우며

          추억의 되새김질로 잠을 이루지 못해
          한 세월을 서성이는 회상의 그 때는

          인간으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연옥을 헤매는
          죄 많은 영혼처럼 너무나 길다

 


                    목련이 떠난 자리

 

몸을 움츠린 이른 아지랑이 삐죽거리는 어쩌다 탄식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봄날, 급히 허전함을 느낀 늘 보던 창밖으로 매년 하던 대로 새끼 한 번 걸쭉하게 낳으려 겨우내 몽우리 진통을 앓던 그 나무 목련, 서러움에 베어지고 없네

이맘때면 탐스럽게 부푼 살 실하게 오를 자리에 쓸모없이 살찐 황갈색의 고양이 앙칼진 아우라를 뿜으며 뒤돌아보곤 어슬렁어슬렁 시멘트 담을 넘어가는데, 아직 이루지도 못한 평화는 비로소 가고 안데스의 퓨마 서식지만 황량하게 남아

아이들이 버린 과자봉지로 늘 궁시렁궁시렁 영혼까지 말라 보충이 시급하던 목련 주인은 꽃 질 때의 잠깐 어수선함을 참지 못하고 그늘진 두 평 마당 평생 쓸지 않아도 될 꿈에 겨워, 상처 입은 새들이 쉬어가도 좋을 넓은 가슴 바짝 세워줄 한 채 공간과 노래를 품지 못하고 아,

꽃은 이제 한참을 피어나지 않겠지만 숨까지 져버린 것은 아니니, 목련은 떠나고 야속한 가슴만 세월의 멍울로 남을 그 자리 아래

 

    

                        

     

▷남상광 시인은 모든 서투름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그러면서 “사랑 하나 갖고 살아야 사람”이라고 말한다.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시기하지도 않고, 주어진 삶을 사랑하면서 순리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는 삶, 그 아름다운 삶의 시작엔 정신적 실체인 초월적 아니마가 활동한다. 진리란 결코 생의 충민함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리에는 커다란 의미가 담겨 있지 않으며 기의 없는 기표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이 사랑의 대상에게로 귀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조건을 구성한다. 시인은 결여된 자기 내면의 갈등과 대립을 감수하고 회복하면서 비로소 삶의 절대적 진리를 발견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의 슬픔까지도 사랑하며 차원높은 시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남상광 시인의 잉여 향유를 이루고 있는 결실들이 봄날의 벚꽃 세상처럼 화사하다. 

                                   -김기덕 시인-

 

 

 

 

 
  ▲남상광 시인

 

 【약력】
 □ 충남 천안 출생, 충남대학교 졸업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수료
 □ 2012년 앤솔러지 『시인들의 외출』로 작품 활동 시작
 □ 월간 《시문학》 신인작품상(2014), 제17회 푸른시학상(2020) 수상
 □ 《호서문학》 주간, 대전문화재단 창작지원 수혜
 □ 시집 『지뢰 같은 사랑』, 『빵인(人)을 위하여』

 

 

 【편집=이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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