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14)

동백➂,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3/02 [22:25]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14)

동백➂,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3/02 [22:25]

 

  © 포스트24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14)
                                                              -동백➂


                                                                                                 한 상 훈(문학평론가) 


동백 이미지를 이야기 할 때, ‘동백 아가씨’를 빼놓을 수 없다. 이미자(李美子)의 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의 장편 『춘희』를 언급하고자 함이다.

골동품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젊은 나이에 죽은 어느 여인의 재산이 경매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곧바로 ‘나’는 그녀의 집인 프랑스 파리 ‘안탱 가의 9번지로 간다. 그녀는 “돈 많은 늙은 놈팡이의 첩”인 마르그리트 고티에라는 ’고급 창부‘이다. 여기서, ‘창부’는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대표적 작가인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를 떠올리기 쉬운데, 서울의 청량리역 근처에서, 길 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유혹하며 호객 행위를 했던 ‘창녀’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창부’ 앞에 ‘고급’이란 수식이 붙을 정도로, ”파리 시내에 나설 때에는 자기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며 보석 패물로 온 몸을 칭칭 감고 거리를 활보“ 하며, 오페라나 무도회, 연극을 보러 다니는 호사스러운 여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녀(마르그리트)는 ‘연극’을 “반드시 처음 상연하는 날 관람”하여, ‘나’ 역시 그 시각에 가서,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몰래 보게 된다. 그녀는 극장의 가장 비싼 좌석인 ‘로오쥬’에서 감상을 하는데, 그녀 곁에는 항상 “쌍안경과 눈깔사탕과 동백꽃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동백꽃은 한 달에 25일간은 흰 동백꽃이었고, 나머지 5일 동안은 붉은 꽃”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동백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이다.

 

화자인 ‘나’는 귀부인으로 가득 찬 경매장에서, 그녀가 즐겨 읽었던 『마농 레스코』란 책을 구입한다. 그런데, 어떤 젊은이가 나에게 찾아와, 마르그리트에게서 받은 감동적인 편지를 보여주면서, 그 책을 자신에게 넘겨달라고 부탁한다.

그 젊은이가 바로 ‘아르망’이다. 『춘희』는 늙은 백작이나 공작의 돈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창부 마르그리트와 법률을 공부해 변호사의 자격을 얻은 청년 아르망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인 것이다.

아르망은 지방 명망가 집안 출신으로 파리로 유학 와서 그녀를 만나 반하게 된다. 이처럼 계층을 초월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 드라마처럼 대중적 통속성이 매우 강하다.

 

백작에게 거액의 돈을 받으면서 첩살이를 했던 마르그리트는 점차 자기에 대한 아르망 뒤발의 순수한 사랑을 깨닫고, 그의 소망대로 파리에서의 모든 생활을 접는다. 그리고 시골인 부지발(Bougival)에 내려가, 두 사람만의 뜨거운 사랑을 나누지만, 그들의 사랑은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하게 된다.
창부 마르그리트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르망의 아버지가 아들 아르망에게 가문과 결혼할 누이를 위해 그녀와 헤어지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자, 창부 마르그리트를 만나, 아들과 헤어지기를 요구한다.
“당신은 내 아들놈을 사랑하고 있소. 그런데 그것을 증명해 줄 방법은 딱 한가지뿐이오. 그것은 그 애 장래를 위해서, 아가씨가 그 애와 헤어져 주는 일입니다.”
아버지는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과 아들의 소문 때문에 파혼 위기에 있다고 하면서, 처음에 보였던 위압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그녀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도록 간절히 호소하면서 부탁한다.

 

결국, 그녀는 아르망을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 오히려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그에게 갑자기 이별을 고한다. 그녀의 본심을 모르는 아르망은, 그녀의 일방적인 이별 선언에, 상처를 크게 받고, 배신감에 사로잡힌다, 그리하여 그는 사랑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마르그리트에게 심한 상처와 모욕을 준다.

더구나 그는 마르그리트의 가까운 친구인 창부 올랭프와 의도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어울려 다니면서, 그녀에게 잔인한 복수를 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마르그리트는 그의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에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몹시 괴로워한다. 급기야 그녀는 오래전부터 앓고 있던 폐결핵이 급속도로 악화되기에 이른다. 그런 상태로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 날, 아르망이 외국으로 여행을 하던 중에, 그녀는 그에 대한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비참하게 죽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된 아르망은,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에 묻혀있는 그녀의 묏자리 전체를, 평소에 그녀가 지니고 다녔던 ‘흰 동백꽃’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곳의 정원사는, 묘지에 찾아온 ‘나’에게, “동백꽃이 하나라도 마르거든 갈아 넣으라는 부탁을 받았습죠.”, 라고 말할 정도다.

필자는 이 소설을 읽고나서, ‘동백’은 ‘붉은 꽃’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소설처럼 ‘흰’ 꽃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동백’에 대해 자세히 찾아보니, 흰 동백꽃은 어쩌다 제주에서도 볼 수 있는, 희귀식물에 속한다고 한다. ‘흰 동백꽃’의 이미지는 당연히 ‘붉은 동백’보다, ‘슬픔’의 이미지가 더 강조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비극적 결말과 잘 부합된다.

 

이 소설에서, 그녀는 주로 흰 동백꽃을 가지고 다니지만, 한 달 중 ‘5일’은 붉은 동백꽃임을 밝히고 있다. 근데, 어떨 때 붉은 동백꽃을 갖고 다니는지 특별한 설명이나 암시가 없어, 오히려 필자로선 나름대로 이런저런 자유로운 상상력이 발동되었다.
그녀가 폐결핵을 앓고 있었기에, 늘 몸에 열이 있다는 말이 드문드문 나오는데, 몸의 미열과 붉은 색깔의 상관적 관계, 또는 다소 변덕스러운 그녀의 사랑의 열정을 비유할 수도 있겠지만,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책을 정밀하게 들여다 보면, ‘붉은 동백꽃’과 관련하여, 이 소설에서 딱 한번, 둘 사이에, 사랑이 싹틀 무렵, 사랑의 매개체로 드러나고 있다. 그녀는 “붉은 동백꽃 다발에서 꽃 한 송이를 빼내어 내 단추 구멍에 꽂아 주면서” 사랑의 조건으로 몇 가지를 아르망에게 제시하자, 아르망은 언제쯤 다시 볼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동백꽃 빛깔’이 변할 때 다시 만나자며, “내일 11시에서 밤 12시까지”가 아니겠냐고 말한다.

 

이 대목은 참으로 멋진 장면인데, 창부 마르그리트의 비극적 삶과 사랑이 이 소설에서, ‘흰 동백’의 이미지로 전면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붉은 동백’의 낭만적 이미지가 작은 에피소드 속에 절묘하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동백 이미지 3편에선, 좀 길어지더라도, 일본 소설 한 편을 더 소개하고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언급할 작품은, 인간에 대한 관찰과 심리묘사에 뛰어난 사토미 돈(1888~1983)의 「동백꽃」이다. (참고로, 동일 제목으로 우리에겐 농촌의 빈곤한 현실을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웃음으로 그려온 김유정(1908~1937)의 「동백꽃」이 있는데, 제목만 같을 뿐, 김유정의 소설은 남도의 붉은 동백이 아니라, 강원도의 노오란 ‘생강나무꽃’이다.)

 

사토미 돈의 이 소설은, 인물의 설정이 단순하여, 깊은 밤 같은 방에서 누워있는 두 여자가 중심 캐릭터다. 나이가 위인 고모는 서른이 넘은 독신녀로, 스탠드 아래로 머리를 두고 어떤 잡지를 읽는 중이다. 그 옆에 좀 떨어져서, 스무 살이 된 조카가 마주보며 잠을 자고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추운 날씨에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각이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분위기다. 고모는 잡지 속의 소설을 보는 중인데, 현재 남녀 관계의 절박한 장면을 묘사한 대목까지 읽어 내려가고 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베갯머리에서 ‘톡’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고모는 얼굴을 들고 그곳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겁이 덜컥 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살며시 잠이 든 조카가 있는 쪽을 본다. 그 순간, 조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모를 본다.
“왜 그래, 세쓰야.”
“조카는 이불을 걸친 채로 달려들어 내 무릎에 엎드렸다.”
한밤중의 작은 소리에, 서로 순간적으로 ‘공포감’을 느낀 것이다. 고모는 조카인 세쓰야가 이불을 감싸고 자기에게 접근하자, 짐짓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왜 그러냐고 묻는다.

잠시 후, 고모는 작은 인기척 소리가 난 베갯머리 쪽으로, 머리를 돌려본다. 돗자리 위에 무언가 떨어져 있었다.
“새빨갛고 커다란 동백 한 송이가 주홍빛 밥뚜껑을 엎어 놓은 것처럼 툭 떨어져 있었다. 전에 살던 집 뜰에 활짝 피어 있는 동백을 그냥 보고만 오기가 아까워서 관리인에게 부탁해 한 아름 안고 와 청자 화병에 꽂아 장식해 두었었다. 그것이 벌써 4, 5일 전 일이다.”
고모와 조카인 두 여자가 순간적으로 느낀 공포감의 이유는, 화병에 꽂아 놓은 ‘붉은 동백’ 한 송이가 바닥에 ‘톡’하고 떨어지는 소리 때문이었다. 동백꽃이 다른 꽃과 달리 꽃송이째 떨어지기에, 제법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한밤중 깊은 시각이었으니, 미세한 소리의 울림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미소를 짓게 되는데, 두 캐릭터가 서로 간에 슬며시 쳐다보면서, 갑작스런 ‘소리’에 겁났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아닌 듯, 대범한 표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고모는 뭐 그렇게 무서워하느냐고 조카에게 핀잔을 준다. 조카는 오히려 고모가 먼저 ‘악’소리를 내지 않았냐고 반문하니까, 고모는 네가 가늘게 눈을 뜨고 나를 봐서 그랬다고 말한다.
“어머, 그보다 먼저 고모가 두려운 얼굴을 하더니 책 읽는 것도 그만두고 이불 속으로 손을 집어넣지 않았어?”
“어쩜, 보고 있었구나.”
조카는 고모에게 지지 않고 대든다. 조카는 고모의 어깨 너머로 동백꽃잎이 떨어진 쪽을 바라보더니 ‘새빨간 꽃잎’이 왠지 기분 나쁘다고 말한다. 고모는 떨어진 꽃잎을 버리고 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쩐지 피가 흐르는 것 같아서......”

 

작가 사토미 돈은 ‘붉은 동백꽃’을 심미적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늘진 어둠이 전등갓의 붉은빛을 받아 등꽃처럼 보랏빛으로 변했고”처럼 ‘붉은 동백꽃’의 색채의 변화 때문에, 두 여자는 점차 알 수 없는 전율감에 점차 빠지게 된다.
특히 20살 아가씨인 세쓰야는 “눈에 익은 기요가타의 화폭 속 겐로쿠 시대의 미인도가 병풍 속에서 죽은 상으로” 나타난다며, 질겁하곤 뒤돌아 눕는다. 그 모습에 고모는, 이불을 코 위까지 급히 끌어 올리고 커다랗게 웃는다. 결국 조카도 같이 웃으면서, 이 소설은 마무리 된다.

이와 같은 캐릭터들의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마도, 작가는 공포와 웃음의 인간의 대립적인 감정을, 동시에 발원시켜,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쉽게 놀라는 현대인들의 나약하고 소심한 정서를, 풍자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닐까.

 

 

 

      

       ▲한상훈 평론가

 

  [약력]
 □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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