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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포가토 』 김순호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2/06/10 [20:44]

『 아포가토 』 김순호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2/06/10 [20:44]

  ▲김순호시인의 시집.                               © 포스트24

 

▶김순호 시인의 시집을 열면, 먼저 시인의 말에 붙들리게 된다. “ 천개의 당신이 있다. 만개의 당신이 있다. 그 들썩임을 시로 쓴다는 건, 결국 나를 들켜버리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시인의 말을 쓸 날을 기다린다”는 글에 내 마음도 버무려 본다. 겨우내 피고지면서도 다른 꽃들을 부르지 않는 대흥사 동백의 오후가 너무 고요하다. 유월의 비가 파릇파릇 내린다. 독자를 아득하게 할 이 시집에 세상이 감전되기를 바래본다. 

 

Q ; 『 아포가토 』 시집이 담고 있는 정서는 무엇인가요?

A ; 시집 「아포가토」 는 각각의 사슬로 끊어져있는 단독의 외로움들을 응집한 일상의 흔적들입니다.

작가 로맹가리는 《새벽의 약속 》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은 잃어버린 기회들로 점철되어있다" 라고, 난 그 잃어버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흘러가는 결핍과 허무의 순간들을 붙잡아 시로 복원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엔 살아있는 사람의 수만큼 삶, 행복 ,불행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각자 자신의 체험에 따라 아름다움, 슬픔, 고통을 다 다른 강도로 느낄 수밖에 없겠지요.

이제 아포가토에 묶인 시들은 나를 떠났습니다.

혼자 절망에 빠져있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한 문장으로 새겨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김순호 시인의 시 2편을 소개합니다. 

 

     페르소나 

 

나는 

하모니카 구멍 빌딩 속으로 

연기처럼 구겨져 닥치는 대로 들어갔지

 

그곳은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잘 꾸며진 백화점 영화관 서점 식당 카페 등 없는 게 없더군

나는 초미세 현미경을 들이밀어 사람들의 실체를 보고 있었지

모두들 훼손된 영혼을 숨기려는 듯 

화려한 가면을 쓰고 과장되게 웃고 떠들어 대더군

곳 곳 마다 사람들이 털어버린 

외로움의 파편들이 공기 속을 깔깔대며 떠다녔지

한 사람이 몇 개씩의 가면을 바꿔가며 사용하더군

나도 나를 기막히게 변신시켜줄 폼나는 가면을 찾아 기웃거렸지

그러나 내 외로움은 너무 두꺼워 가릴 수가 없다는 걸 알았어

>

집에 돌아와 발가벗은 몸뚱이를 향해 뜨거운 물을 뿌려댔지

나를 이루고 있는 살갗이 비누처럼 녹아내려 해체되길 바라면서

 

     봄밤 

 

어둠을 삼킨 터널 앞

인적 끊긴 24시 김밥 천국에 앉아

미친 듯 손잡이를 흔들고 달려가는

텅 빈 버스를 바라보며

쓰린 위장을 열어

뜨거운 멸치국수를 담는다

 

꽃들이

불티 인양

낱낱의 이파리로 떠돌다

얇은 숨을 내려놓는 봄밤에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의 제목은 대부분 명사형名詞形이다. 김순호 시인은 수많은 사물의 이름을 소환하고 그것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 말하자면, 시인은 은유의 먼 길을 가고 있는 거다. 그녀가 이름을 부여할 때,

사물들은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다른 수많은 실존의 풍경들로 변한다.

햇살과 바람에 따라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잎사귀들처럼, 그녀의 명사들은 이 이름에서 저 이름으로 움직이며 존재의 다양한 얼굴들을 보여준다. 은유 이전의 명사들이 사물의 파사드facade라면 은유 이후의 명사들은 사물의 속살들이다.사물들은 시인의 은유를 통해 접히고 구겨지며 수많은 주름을 갖게 된다. 그 주름들 속에는 고독, 죽음, 위선, 우울, 배반, 사랑, 절망, 분노, 소멸의 기의들이 물방울처럼 고여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름의 표면을 스쳐 날면서 의미화의 씨를 뿌리는 새 같다. 그씨들이 발아될 때, 사물들은 겹겹의 의미로 두터워진다.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

 

 

  ▲김순호 시인.                           © 포스트24




【약력】

□ 서울 출생

□ 2012년 『시문학 』등단 

□ 시집:『보셔요 꽃동산에 봄이왔어요 』

□ 『첨부파일 』 『 아포가토 』

  

 【편집장=이영자(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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