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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2 )

한상훈 문학평론가, '복사꽃' 이미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0/03/02 [11:54]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2 )

한상훈 문학평론가, '복사꽃' 이미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0/03/02 [11:54]

                                  문학공간의 ‘복사꽃’ 이미지 산책
                                                                                                         한 상 훈(문학평론가)


  복사꽃은 연분홍빛을 띠어, 보기에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과실 또한 맛이 좋다. 그런 까닭에 젊은 여자들의 예쁜 얼굴이나 육감적인 자태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조선 후기의 문신 백경현은 “장송이 푸른 곁에 도화는 붉어있다/ 도화야 자랑 마라 너는 일시 춘색이라/ 아마도 사절 춘색은 솔뿐인가 하노라.”라는 시조에서, 사계절 항상 푸르른 빛의 소나무와 같은 충신을 칭송하면서, 일시적으로 붉은 빛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도화’를 간신들로 비유하여 부정적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다. 그럼 현대시에선 복사꽃이 주로 어떤 이미지로 등장할까.
  이기철(1943~) 시인은 「복사꽃 피면」에서 “내일이 더 환해지기를 원하거든/ 혹한을 지펴 피어오른 복사나무의 분홍 곁으로 가라/ 복사나무의 오래고 긴 참음 아니면 산과 들 저렇게 물들겠느냐/ 그 아픈 힘 아니면 산이 마을까지 내려와 말 걸겠느냐/ 민들레같이 착하게 사는 사람들의 지붕 위로/ 산수유들이 접어 보낸 노란 안부들/ 개나리가 아니면 들판이 저렇게 즐거워지겠느냐/ 냉이 한 포기 밭둑에 돋을 때/ 흙의 살 찢어지는 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변방에서 힘겹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분홍빛으로 예쁘게 물든 ‘복사나무’를 보라고 말한다. 봄의 아름다움이 그냥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복사나무뿐만 아니라, ‘냉이 한 포기’의 여린 식물들도 “흙의 살 찢어지는” 희생과 고난이 있기에 피어날 수 있다. 시인은 아름다운 풍경의 이면에 담긴 자연의 섭리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우리들에게 따뜻한 어조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오세영(1942~) 시인은 ‘복사꽃’ 소재의 시 「이별의 날에」에서 “이제는 붙들지 않을란다/ 너는 복사꽃처럼 져서/ 저무는 봄 강물 위에 하염없이 날려도 좋다, 아니면/ 어느 이별의 날에/ 네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의 흔적처럼/ 고운 아지랑이 되어 푸른 하늘을 아른 거려도 좋다”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기철의 「복사꽃 피면」이 강인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표현한 것에 비해 오세영의 시는 우리들에게 친숙한 이별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날 버리고 간 여자로 인해 시적 화자는 상처를 받고 서러워한다. 죽도록 보고 싶지만 가버린 그녀는 오지 않는다. 사랑하지만 마음을 정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는 붙들지 않을란다”라는 체념적 말투가 자못 비장하다.
  이와 같은 복사꽃 소재의 시들은 이정하(1962~) 시인의 작품에 이르면 현대적 감각으로, 청춘의 도시적 풍경을 쿨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할 말이 하도 많아 입 다물어 버렸습니다. 눈꽃처럼/ 만발한 복사꽃은 오래 가지 않기에 아름다운 것/ 가세요. 그대. 떨어지는 꽃잎처럼 가볍게. 연습이듯 가세요./ 꽃진 자리 열매가 맺히는 건 당신은 가도 마음은 남아 있다는/우리 사랑의 정표겠지요.”(「복사꽃」) 더 이상 ‘사랑’의 굴레에 매이지 않겠다는 화자의 태도는 신사답고 여유로워 얄밉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프지 않은 ‘이별’이 있겠는가. 바쁜 도시의 일상 속에 젊은 남녀의 사랑을 상큼하게 다루고 있는 시다.
  오세영 시인이나 이정하 시인의 시가 사랑의 상처에서 오는 아픔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에, 슬픔의 정서가 서럽게 관류하고 있다. 복사꽃은 아름답게 피었다가 얼마 못가서 떨어지는 속성이 있기에 이별의 정서를 나타내는 소재로 즐겨 선택되는 사물인 것이다.
  사람들은 풍경을 바라보고 감상하지만 시인들은 풍경을 응시하고 사유한다. 사유의 한 지점에서 끄집어내는 작은 불씨. 그것은 시인들의 내재된 사상이나 체험에 따라 다양하게 발화된다. 복사꽃의 풍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로 시작하는 김선우(1970~) 시인의 시는 참신하면서도 도발적이다.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리”(「도화 아래 잠들다」) 다소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이 시는 ‘복사꽃’이란 말 대신 ‘도화’라는 표현을 써서 그럴까. 가버린 임에 대한 아련한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대한 이미지가 강렬하게 작동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봄날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도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육감적이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신석정(1907~1974) 시인의 시적 관점은 남녀의 사랑이나 이별에서 오는 ‘복사꽃’의 이미지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흰 복사꽃이 진다기로서니/ 빗날같이 뚝뚝 진다기로서니/ 아예 눈물 짓지 마라 눈물 짓지 마라……// 너와 나의 푸른 봄도/ 강물로 강물로 흘렀거니/ 그지없이 강물로 흘러갔거니// 흰 복사꽃이 날린다기로서니/ 낙엽처럼 휘날린다 하기로서니/ 서러울 리 없다 서러울 리 없어……”(「서정가」) ‘복사꽃’을 통해 슬픔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 대상이 오세영이나 이정하처럼 사랑의 파탄에서 오는 이별의 상처가 아니다. 아름다운 청춘이 ‘강물’이라는 세월의 흐름 속에, 어느덧 가버린 서글픔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붉게 피어나는 ‘복사꽃’이 아니라 ‘흰 복사꽃’이 비 내리 듯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 풍경이다. 그렇기에 가버린 시간에 대한 슬픔의 빛깔이 독자들에게 깊게 전달되고 있다.
  ‘소월시 문학상’(2011)을 수상한 배한봉(1962~) 시인의 시는 특별한 구석이 엿보인다. “천년을 걸어가는 꽃잎도 있었다. 나도 가만가만 천년을 걸어가는 사랑이 되고 싶었다. 한 우주가 되고 싶었다.”(「복사꽃 아래 천년」) 화자는 우주와의 교감을 통해 일상의 일탈을 꿈꾼다. 이 시가 지닌 환상적인 분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현실의 장벽을 해체시키는 ‘천년’과 ‘우주’라는 언어일 것이다. 이 시어들이 지닌 시공간의 무한 확장은 시인의 사유의 깊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답답한 현실을 초월하여 낭만적 상상에 홀로 머물고 있는 시인의 모습은 어딘지 불온하고 위험해 보인다. 이 시는 평범한 시어의 자연스런 조합을 통해 독자들을 환상적인 세계관으로 인도하고 있다. 도연명의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떠올릴 수도 있는 작품이다.
  복사꽃 소재의 관련 시를 두어 편 더 감상해 보기로 하자. 박두진(1916~1998) 시인은 「어서 너는 오너라」에서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어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슬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로 노래하고 있는데, 이 시는 일제의 압박을 피해 세계 각지로 흩어졌던 우리 동포들을 향해, 포근한 고향의 정감을 노래하고 있다. 광복 직후에 발표 돤 이 작품은 민족의 화합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호흡할 수 있으며, ‘복사꽃’과 함께 살구꽃, 앵도꽃, 냉이꽃, 종달새, 소쩍새 등 고향 마을의 아름다운 꽃과 새를 통해 향토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감나무나 살구꽃에서 흔히 보이는 토속적 정서가 ‘복사꽃’에서도 그대로 환기되고 있다.
  이처럼 복사꽃이 고향이나 남녀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면 독자의 상상을 초월하는 파격적인 시도 있는데, 유홍준(1962~) 시인의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라는 시가 거기에 해당된다. 이 작품에서 “봄날에 시인들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 무심한 사람들 등짝을 내려쳐도 좋으리// 후두둑,/ 꽃 떨어지면 귀신도 떨어져/ 매 맞는 사람들 기뻐하리”와 같은 표현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끔찍한 표현에 당황하게 되는데, 왜 ‘매 맞는 사람들’이 육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기뻐할까. 복사꽃이 피는 복숭아나무에는 벽사(辟邪)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속설이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시상을 전개한 것이다. 예전부터 복숭아 나뭇가지로 귀신을 쫓거나 굿을 하는 등 주술적인 능력을 지닌 도구로 이용하였는데, 이 시는 이 점에 착안하여 인간의 영혼을 어둡게 물들이는 사악한 존재를 떨쳐버리려는 서민들의 몸부림을 그린 것이다. 병마에 지치고 고달프게 살아온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답게 꽃 피어 있는 나뭇가지로 얻어맞고 있는 역설이 이 시의 묘미다. 살이 터지고, ‘등짝’에 시퍼런 자국이 남는다. 그래도 ‘몸’에 깃든 사악한 기운을 몰아낼 수만 있다면 맞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북천」으로 ‘소월시 문학상’(2013)을 받은 유홍준 시인의 중심 시세계는 ‘죽음’이다. 어린 시절 갑작스런 형의 죽음에서부터 가까운 친지들의 죽음을 수없이 목도하고, 벌목현장과 제지공장의 노동, 정신병원의 보호사, 과일 행상 등을 거쳐 왔던 시인의 거친 삶 속에서, 이 시인의 ‘죽음’에 대한 집중적 탐구는 어쩌면 필연적이다.


  소설에선 ‘복사꽃’이 어떤 이미지로 등장할까. 박범신(1946~)의 장편 『주름』(2006)은 작가 특유의 감각적 문체에 힘입어 서정적이면서도 속도감 있게 그려나가고 있는 작품이다. 주류 제조회사의 자금 담당 이사였던 ‘나’의 아버지는 아무 이유도 없이 어느 날 집을 나가버린다. “아버지가 떠나고 난 세기말의 시간들은 정말 잔인했다. 복학은 했어도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나’는 대학을 때려치우고 아버지 대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밤낮 없이 알바를 하며 돈 버는 일에 매달린다. 아버지가 실종된 후 2년이 지날 무렵, 러시아의 시베리아에 있는 한 사내로부터 연락이 온다. ‘나’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러시아에 간다. 그 사내(한 사장)를 만나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근처의 어떤 마을로 함께 떠난다. 통나무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시인이며 화가인 천예린이 이미 죽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사장에게 듣는다. “특히 중앙아시아 지방의 복사꽃 핀 정경에 대해 말할 땐 매번 김 선생님은 실눈을 뜨곤 했어요. 그리움이 담긴.” 그 말을 듣고 ‘나’는 그곳에서도 복사꽃이 피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오래전에, 아버지의 고향 집에서 딱 한번 복사꽃이 만발한 것을 본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그때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였으며, 아버지는 “보름달 달빛 아래 서서 보면 더 좋다”고 중얼거렸다. 두 캐릭터의 대화와 ‘나’의 기억 속에서 ‘복사꽃’ 이미지는 매우 선명하며, 아버지의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작가 박범신은 꽃 이미지를 통해 거칠어지기 쉬운 서사 전개에 서정적 분위기의 여운을 독자들에게 감성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그것에 있지 않다. 이 소설의 드라마틱한 서사 전개가 거의 끝나는 부분을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복사꽃잎들이 하르르하르르 지고 있었다. 왜 복사꽃과 아버지가 하나로 묶여 떠오르는 것일까.” 아버지가 고향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인 ‘나’가 그곳에 당도해서 만개한 복사꽃을 바라보며 느낀 대목이다. 이러한 표현이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복사꽃’의 이미지가 단순히 고향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부성이나 모성을 포함한 ‘핏줄’의 성격까지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앞의 유홍준 시에서 언급했듯이 복사꽃이나 그 열매인 복숭아가 지닌 제의적 또는 무속적 성격은 우리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중국의 고전 나관중의 『삼국지』(이문열 편역)에서도 관련되는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유비, 관운장, 장비가 큰 꿈을 갖고, 탁현 마을에서 의형제를 맺으면서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다. “마침 내 집 뒤에는 복숭아밭이 있는 작은 동산이 있는데 꽃이 한창 만발하였소. 내일 그 복숭아밭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 세 사람이 사생을 같이할 의를 맺은 뒤 큰일을 시작하는 게 어떻겠소?” 장비의 건의로 세 사람은 뜻을 모으고, 복숭아밭에 모여 검은 소와 흰 말을 제물로 삼아, 동물의 피를 섞어 나누어 마신다. 그 다음에 비록 세 사람이 각각 성이 다르지만, 커다란 의로움과 두터운 정으로 맺어져 형제가 되었으며, 어떠한 일에도 마음을 함께하고 힘을 합치겠다는 맹세의 글을 읽는다. 소위 『삼국지』의 ‘도원결의’(桃園結義)라고 불리는 이 부분, 즉 복숭아밭에서 제사를 지내고 맹세를 하는 세 인물의 이 장면은 바로 복숭아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복숭아밭의 제의적 성격은 중국의 노벨문학수상작가인 모옌 (莫言, 1955~)의 장편 『개구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화자의 고모가 주인공인 이 소설은 작가의 고향인 산둥 성 가오미 현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중국은 1960년대 말 인구 8억이 넘어서자, 당시 권력층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70년대 들어, 공안당국은 산부인과 의사인 고모를 내세워 팽배해진 인구의 억제를 위해, '계획생육'을 강제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그러던 중 ‘나’의 아내인 왕런메이가 아들에 대한 욕심으로 둘째를 비밀리에 임신한 상태에 있다가, ‘나’의 친구인 왕간의 고발로 고모에 의해 임신 중절 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수술 도중에 왕런메이는 죽게 되고, 고모뿐만 아니라 ‘나’ 역시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더구나 ‘나’의 어머니마저 얼마 안되어 돌아가신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고모는 딸처럼 아끼는 자기의 애제자 샤오스쯔와 ‘나’의 결혼 중재에 적극 나서고, ‘나’는 고모의 뜻을 받아들여 재혼을 결심한다. 결혼식을 올리기 하루 전 ‘나’는 어머니와 아내인 왕런메이의 무덤이 있는 복숭아밭으로 간다. “어머니와 왕런메이의 무덤은 저희 집 복숭아밭에 있습니다. 전 발갛게 익은 커다란 복숭아 두 개를 따서 어머니 무덤 앞에 하나를 놓고 다른 하나를 받쳐 들고 복숭아나무 몇 그루를 지나 런메이이 무덤 앞으로 갔습니다.” ‘나’는 샤오스쯔와 재혼을 앞두고, 먼저 가버린 아내의 무덤 앞에 복숭아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낳은 딸 옌옌을 재혼 이후에도 잘 키울 것이고, 만약 샤오스쯔가 못되게 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다. 이와 같이 현대소설에 이르러서도 ‘복숭아밭’은 제의적(祭儀的) 공간으로 그 맥이 이어지고 있으며, 복숭아꽃의 열매나 나무를 신성시하는 옛 풍속과 긴밀한 관계에 놓인다.
  모옌의 장편 『개구리』를 한 마디로 말하면 1970년대에 중국의 폭력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매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산아제한의 강제적 행위의 주체인 고모나 그 대상인 촌부들 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로 보고, 지나간 역사의 상처를 때로는 해학이나 풍자적 웃음 속에 섬뜩하게 드러내고 있다. 모옌은 천부적인 이야기꾼임에 틀림없는 21세기의 대표적 작가로, 작중 인물들의 실감나는 묘사와 짙은 향토적 분위기를 통해, 오늘날 거대해진 중국의 어두운 현실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번엔 『삼국유사』(김원중 번역)에 실려 있는 「도화녀와 비형랑」(桃花女 鼻荊郞)의 설화를 짚어보자. 신라 25대 진지대왕은 도화녀가 얼굴이 곱다고 소문이 나서, 그녀를 불러 관계를 맺으려 하자, 그녀는 남편이 있는데 아무리 천자의 위엄이 있다 해도 안된다고 거절한다. 그러자 왕이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고 묻자 그땐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세월이 흘러, 왕이 폐위된 후에 죽고, 2년 뒤에 남편도 죽는다. 그리고 어느 날, 진지왕이 생시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여인의 방에 와서, 이제 남편이 죽었으니 약속을 지키라고 한다. 여인이 부모에게 여쭈니 임금의 명령을 어찌 피하겠느냐며 딸의 방으로 왕을 들여보낸다. 왕은 일곱 날을 거기서 지내고 종적을 감추었는데, 여인은 임신하여 해산하려하자 천지가 진동하였다. 그런 와중에 사내아이를 낳았으니 그 아이가 ‘비형랑’이다.
  진지대왕의 뒤를 이은 진평대왕은 비형랑이 특이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궁중에서 키우는데, 그 아이가 귀신을 거느리며 노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왕의 명령으로 하룻밤 사이에 귀신을 시켜 큰 다리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여우로 둔갑해 도망가는 귀신을 쫓아가 죽이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성스러운 임금의 넋이 아들을 낳았으니 / 비형랑의 집이 여기로세 / 날뛰는 온갖 귀신들이여 / 이곳에는 함부로 머물지 마라”란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집안에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비형랑’의 노래 가사를 대문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도화녀’와 그 아들인 ‘비형랑’의 이 설화 속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辟邪)의 기능이 잘 드러나고 있으며, ‘도화녀’가 복사꽃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복사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여러 문헌에 나와 있듯이 다른 꽃이 지니지 못한 독특한 성격의 의미를 내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승원(1939~)의 역사소설 『추사』로 들어가 보자. 최근에 역사적 인물에 대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면 독자나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허구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끌어들인 것이 많은데, 이러한 현상은 대중문화적인 관심은 높일 수 있으나 역사에 대한 왜곡을 가져올 수 있어 무척 우려가 된다. 그 점에서 볼 때 한승원의 장편 『추사』는 작가의 실증적이고 치밀한 사전 작업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본받을만하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추사 김정희는 방안에서 처마 끝의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비가 오고 있음을 안다. 정성을 다해 김정희를 모시고 있는 첩 초생은, 앞마당에 만개한 복사꽃을 보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문을 열어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추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초생이 문을 열었다. 안개처럼 보얀 이슬비가 바야흐로 벌어지고 있는 복사꽃송이들을 감싸고 있었다. 복사꽃은 하늘 마음을 지닌 꽃이다. 이승에서 일어나는 행운과 불행을 미리 예시해주는 신통스러운 꽃.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그 하늘 꽃에게 앞날을 묻곤 하신다고 했었다.”
  추사는 가까이 가서 복사꽃을 보고 싶다며, 초생이 씌워준 우장을 머리에 쓰고 마당으로 나가 그 꽃을 자세히 살펴본다. 그는 꽃송이들이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다며, 자신의 앞날을 예감하며 시를 읊는다.
  “마당의 복사꽃이 슬피 운다/ 어째서 가랑비 내리는 때에 우는 것일까/ 주인이 오랜 동안 병들어 있으므로/ 감히 봄바람 앞에서 웃지를 못하는 것이지” 이처럼 작가는 인간이나 인간 세상에 대한 징후를 예측하게 하는 문학적 장치로 ‘복사꽃’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복사꽃하면 도연명(365~427)의 산문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빼놓고 지나갈 수 없다. 이 글은 복사꽃을 신성시하는 동양적 세계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진(晉)나라 때 무릉에 사는 어느 고기잡이 어부가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숲 속의 작은 강물을 따라갔다가 세속과 단절된 마을을 발견하게 된다.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타난 ‘이상향’은 중국의 현대소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1980년대,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꺼페이(格非, 1964~)의 장편 『복사꽃 피는 날들』(원제: 人面桃花, 2004)은 그러한 소설 중의 하나이다. 
  주인공 슈미는 생리가 처음 시작되는 날, 실성한 아버지가 가출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녀는 아버지가 왜 실성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고 어머니에게 묻자 “밥상에 놓인 밥그릇 네 개가 동시에 튀어오를 정도로 세게 젓가락을” 내리치며 분노한다. 관직에서 아버지가 해직당하고 고향인 푸이 마을로 내려왔을 때, 유일하게 함께 내려온 수행원인 빠오쳔에게 아버지가 실성한 원인을 물었더니, 띵슈쪄에게 받은 한유의 그림 ‘도원도’를 보면서 서서히 미쳐갔다고 한다. 어느 날 밤, 아버지는 자기가 갇혀있는 다락방에 불을 지른다. 빠오천은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자기보다 몇 배나 무거운 그를 업고나온다. 그때 아버지의 품에는 책을 한 더미 안고 있었고, 입에는 보배처럼 여기는 ‘도원도’를 물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해 의문투성이인 딸 슈미는, 글방 선생 띵슈쪄에게 아버지가 왜 다락방의 책들을 모두 불에 태우려 했는지 묻는다. 띵 선생은 그 이유는, 네 아버지가 관직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고, 하는 일마다 실패를 했는데, 모두 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을 전체의 책을 모조리 태워버리겠다고 큰소리”쳤다는 이야기를 띵 선생에게 듣는다. 또 어느 날, 아버지는 “긴 손잡이가 달린 둥근 칼”을 가져와 뜰의 나무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말리려고 달려왔을 때엔, 그의 칼날에 의해 초목과 꽃들이 널브러졌고, 자등나무, 석류나무, 측백나무 등도 모두 쓰러져버렸다. 슈미는 이 마을에 있는 나무들을 왜 아버지가 칼로 베었는지 띵 선생에게 묻는다. “그건 그가 정원에 복숭아나무를 심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마을 전체의 가가호호마다 집 앞에 복숭아나무를 심고 싶다고 나에게 상의한 적이 있었지.” 재차 슈미는 왜 아버지가 복숭아나무를 심으려 했는지 묻자, 그는 이 마을이 도연명이 발견한 도화원이고, 마을을 끼고 흐르고 있는 강이 바로 무릉도원에 나오는 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꺼페이(格非)의 이 소설은, 20세기 초 중국의 신해혁명을 전후로 펼쳐진다. 딸 슈미는 광인인 아버지가 지향하는 유토피아적 삶의 흔적을 탐색해 나간다. 그러한 삶의 과정에서, 자신도 무릉도원과 같은 이상향에 동화되고,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구현하고자 한다. 이 글은, 아버지에 이어 딸 슈미가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현대 사회에 건설하려고 하다가, 현실의 혹독한 장벽에 부딪쳐 좌절하게 되는 비극적 결말 구조의 작품이다. 인간의 욕망이 역사와 사회의 관계 속에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어, 만만치 않은 중국 소설의 저력을 느끼게 한다.

 

 

 

  ▲한상훈 문학평론가

 

 [약력]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 출간.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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