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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어도 흔들리지 마』 남홍숙 수필가를 만나다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2/05/11 [16:57]

『흔들어도 흔들리지 마』 남홍숙 수필가를 만나다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2/05/11 [16:57]

 ▲남홍숙 작가의 에세이.                                © 포스트24

 

▶몇 년전 인사동에서 남홍숙 작가를 만났다. 그때 나는 아픔 속에 들어가 있는 작가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슬픔의 언저리를 지긋이 누르며 커피를 마시고, 발없는 천사가 아들을 메고 가버린 밤에 대하여 누군가 함께 들여다 보기를 바라며 오래 앉아있었다. 납작하게 구겨져 버린 사랑을 찾아 흔들리며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비틀거렸다. 남홍숙 작가는 봄볕처럼 따스한 사람이다. 『흔들어도 흔들리지 마』 이 수필집을 독자들이 긴팔로 오랫동안 안아주기를 바래본다. 

 

Q : 『흔들어도 흔들리지 마』 수필집을 끌고 가는 흔들리지 않는 정서가 궁금합니다.      

A : 이 책의 Chapter 2에는 밤사이에 세상을 하직한 내 아들을 못 잊어 울부짖던 엄마로서의 대책 없던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마음의 갈피를 잡기 위하여 몸부림 친 엄마로서의 흔적이 있습니다. 어떤 거친 바람이 나를 흔들어도, 흔들리면 안 되었던 절체절명의 절박함이 이어지던 순간순간이었습니다. 2015년에 출간 된 책을 지금 다시 보니 무엇보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만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하여 무너지지 않으려고 언약이라도 하듯이 글을 썼던 모질기만 하던 그날들이, 이 엄마를 일으켜 세웠고 두 딸들과 함빡 웃기도 하는 요즘의 나를 발견합니다. 그러고보니 글을 쓸 수 있던 것만으로도 고마운 시간이었네요. 

 

Chapter 1은 브리즈번에서 중, 고, 대학생이던 세 아이들이 공부하던 시간에 엄마는 옆에서 그저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가장으로서 세 아이를 유학시키는 일은 심적으로 꽤나 부담이 되던 시간이었습니다. 엄마가 흔들리면 가정이 와해될 수도 시간 속에서 글을 쓰지 않았다면, 하루하루 살아가던 나의 세상이 더 두려워서 떨기만 했을 겁니다. 그러고보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고맙기 그지없었네요.

 

Chapter 3은 남편이 세상을 하직 한 지 강산이 거의 세 번이 바뀐 시간동안에 그를 추억하면서 쓴 글이 담겨있습니다. 제 삶이 통째로 흔들려서 뿌리가 뽑히지 않고 그때마다 새살을 돋아나게 한 원동력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글을 썼기 때문이네요. 제게 글 쓰는 시간이 없었다면, 이정표도 없는 길에서 더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성인이 된 두 딸들에게 아주 가끔 말하곤 합니다. ‘고난 중에 그래도 너희들 엄마가 글을 써왔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행여 생뚱맞은 다른 샛길로 샜으면 어쩔 뻔 했을꼬. 안 그래? 하하.’

 

 

▶가장 애정이 가는 수필  1편을 소개해 주세요

 

                                         바닥의 시간

                                                                                               남홍숙   hsn613@hanmail.net

 

  Jtbc의 <사랑하는 은동아>는 가슴 아프면서 따스한 휴먼 드라마입니다. 젊은 남자가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고 손에 신경이 굳어서 재활치료를 받는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의자에 앉아 뒤꿈치를 땅에서 떼지 못하도록 고정해 둔 채 기계를 작동하여 굽고 굳은 다리가 들어 올려지며 펴는데, 뼈가 부스러질 듯 아픈가 봅니다. 아, 악, 하며 비명을 지르면서도 재활의지를 굽히지 않던 모습에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육신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고통 중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파산, 이혼, 가족과의 이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실을 겪습니다. 충격으로 다친 정신을 사고로 다친 육신처럼, 펼 것은 펴고 붙일 것은 붙여 넣는 재활을 감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학 중에 대학 3학년이던 우리 민구가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잠결에 더 고요한 영원의 품으로  떠난 후, 이 어미의 가슴도 마비되고 굳고 뚫리고 부러진 뼈마디처럼 어그러진 것 같았습니다. 

  그 젊은이가 하던 것처럼 재활치료를 해야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젊은 그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위해서 이를 꽉 물고 치료를 받았듯이, 어미를 지켜보고 있을 우리 민구와 걱정하는 딸들…을 위해서라도 마음의 뼈마디를 맞추고 굳어버린 ‘심줄心線’을 최대한 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 같은 현실일지라도 산 사람은 살아내야 합니다. 씨알이 심어지면 어둠을 뚫고 싹이 되고 나무가 되어 꽃 피우고 열매 맺어, 깊은 숲이 되는 건 삶과 죽음 사이에 낀 모든 생명체의 숙명입니다. 어쩌면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의 터는 더 넓습니다. <지선아 사랑해> <닉브이치치>의 일어섬이 절망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희망을 얹어 준 건 사실이거든요.

  생명을 부지하기도 힘든 절망에서는 인간의 힘뿐 아니라 초월적인 외부의 위력이 동시에 작용합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바닥의 시간일지라도, 희망만 버리지 않으면 빛이 도와줍니다. 바닥을 치는 치명적인 절대비참함의 옷을 확 벗어 버릴 수 있는 연습을, 재활의지로써 하루에도 수백 번 연습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서게 됩니다. 가장 깜깜한 밤을 지나야 새벽이 오듯이, 명치끝이 뻐근한 아픈 시간 속을 헤매는 고통의 절정을 지나다보면 어느 순간 빛이 나옵니다.

  고통의 시간을 “하루하루” 견디십시오. 일주일, 한 달, 일 년이라는, 너무 오래된 미래는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바닷물이 “물 한 방울”로 시작된 것처럼 한 순간 한 순간을 버티다보면 시간이 갑니다. 바닥의 시간이 가슴의 눈물같이 흐르다가 결국은 마른 눈물이 됩니다. 

  밤새도록 잠이 안 올 때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쯤은 수면제 반 알을 먹고, 가슴이 뻐근하여 빠개질 것 같을 때는 청심환 반 알을 드세요. 나는 8개월을 그러고 나니 이제 약이 필요 없는 시간에 왔습니다. 수면제나 청심환을 먹는다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약은 아플 때 치료제로 복용하라고 제조된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자주 먹지는 마십시오.

  아무리 바닥의 시간에 있더라도 절대 절망하여 섣불리 주저앉지 마십시오. 나무의 몸통이 비에 젖고 차디찬 강풍에 흔들리긴 하지만, 뿌리를 깊이 박고 있다 보면 햇살과 산들바람이 어루만져 줍니다.

  우리 민구가 떠난 자리에 나는 성경의 욥을 초대했습니다. “욥기”를 읽다가 지치면 유튜브에 들어가 욥기서 강해를 들었습니다. 상실에 관한 서적을 찾아 읽기도 했습니다.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 제럴드 싯처의 『하나님 앞에서 울다』, 채정우의 『이별한다는 것에 대하여』를 읽고 고난극복에 관한 목사님의 설교를 귀에 꽂고 다녔습니다. 그래도 슬픔의 잔이 차고 넘칠 때는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습니다. 사람을 믿고 사람에게 의지하는 편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었습니다.

  낮에는 청소부가 되어서 청소를 했는데 어언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이곳 시드니의 백인이 살아가는 면모와 낯선 풍경을 보는 색다른 체험도 되었지요. 몸을 쓰는 노동은 잠을 잘 자게 하였고 시름을 잊게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슬픈 바닥의 시간이 엄습할 때는 무릎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아직은 가슴 한 쪽에 통증이 남아있지만 신의 어루만짐이 통합적인 평안과 사랑으로 채워줍니다. 우리 민구가 간 곳은 빛 가운데라고, 그곳은 아픔도 힘듦도 없는 곳이라고, 미국보다 더 높은 천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위로해주고 눈물 닦아줍니다.

  요즘에는 그저 육신의 어미로서, 우리 민구에게 못다 해준 사랑을 세상에다 풀어놓을 궁리를 해봅니다. 또한 <사랑하는 은동아>의 그 젊은 남자가 일어서기 위하여 이를 꽉 물고 성공했듯이, 이 어미도 부서지고 구멍 뚫린 정신적 심줄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먼 인생길에서 누구나 바닥의 시간을 겪는데, 재활의지가 있으면 분연히 일어설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바닥은 아침마다 내 발바닥에 대고 이렇게 외칩니다.

  “힘내라! 나는 영원히 바닥이지만 그것을 낙으로 살아. 나, 바닥의 시간을 굳세게 딛고 담담하고 당당하고 단단하게 일어나 독수리 날개를 쳐 봐!”         

 

 

 

 

 

 

 

 

 

 

 

 

 

 

▲남홍숙 수필가

 

 【약력】

□경북 예천 출생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1년 여름 현대수필 수필 등단

□2007년 12월 수필시대 평론등단

□수필집 : 『그대의 혼으로 과일이 익었습니다』(2002년), 『물빛』(2006년), 『잎이 꽃을 낳다』 (2014), 『흔들어도 흔들리지 마』 (2015) * 평론집 : 『봉인된 시간을 깨다』 (2014년) 

□제 2회 에세이포레 문학상(2015년 4.) 

□제11회 구름카페문학상(2015. 12)  

 

 【편집=이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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