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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 벙글어지듯이' 강빛나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1/02/05 [00:01]

'뭉게구름 벙글어지듯이' 강빛나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1/02/05 [00:01]

 

  ▲ 시낭송을 하고 있는 강빛나 시인 모습.                                                         © 포스트24

 

Q : 강빛나 시인의 시적 정서는 무엇인가요?

A : 제가 시를 쓰면서 감각하는 시적 정서는 ‘섬’이라는 혼자가 지닌 철저한 고독과 삶에 대한 연민입니다. 어린 시절, 육지와 떨어진 ‘섬’에서 자란 원시적 정서가 내재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늘 이방인처럼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는 생각에 젖어들 때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뭍으로 나온 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러한 이방인의 마음은 저를 관통하는 이미저리입니다.


하루하루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거친 손마디와 부지런함을 자연스럽게 보고 자라서 삶에 대한 열정은 아주 뜨겁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데여도 사랑은 뜨거움이 좋고, 겉치레를 벗어던진 사람들의 낮은 곳에서 흐르는 투박함이 좋습니다.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좋다고 할까요? 화려한 수식이 없어도 바닥 그 자체로 진심이 흘러가는 따뜻한 시선이 저를 채우는 공간입니다. 그 속에 녹아 있는 것이 연민 같은.

 

Q :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나요?

A : 삶 속에 산재한 작고 소외되고 아픈 것을 더 직시하면서, 세월이 가도 진부해지지 않고 신선한 감각을 유지하는 그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저의 시가 시인만의 리그가 되지 않도록 문학성과 대중성을 함께 겸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늘 낯설게 보는 시선 안에서 유지된 역발상이 시의 원동력으로 가지를 뻗어나가길 소망하며 그 어떤 삶 앞에서도 겸허하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 강빛나 시인.                    © 포스트24


▶ '예천내성천문예현상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한 시를 소개합니다.


                    뭉게구름 벙글어지듯이

                                                                            강빛나 시인


여름을 닮아 속심이 든든한 그녀는 물돌이로 커가는 감자꽃을 좋아했다

5월 감자꽃을 생각하면 가난의 성장통이 쉽게 지나가고, 꽃이 피기 전에 유전을 자르면 실한 엉덩이처럼 꽃은 밭고랑을 꽉 채우고도 남았다 
그녀는 꽃을 그대로 두면 웃자라 내성천의 보슬보슬한 감자 맛을 잃기 쉽다고 했지

인간의 생각이란 어쩌면 중심보다 중심을 살짝 비껴가는 부푼 꽃 색이 좋아서,
펼치면 조금 감추고 싶은 이력서처럼 백사장은 감자 꽃잎이어서, 그 속에 노란 들판을 꿈꾸기도 하지

복사열에 꽃잎이 느슨해지면 통나무다리를 세워 공중에 오르고, 고무대야에 앉아 물미끄럼 타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는데, 땅을 밀고 올라오는 바지랑대에 눈길이 닿는 그녀와 나는 닮은 곳이 없지만

자른 감자 꽃대를 몇날며칠 식탁 위에 놓으면 꽃잎은 뭉게구름 벙글어지듯이

땅 한 평 빌려주고 일수 놓는 걸음으로 장마가 오가는 사이, 감자는 그녀를 꼭 닮아 버릴 데 없이 야물었다 잘라야 할 때, 딱 자르면 속 썩을 일이 없는 걸까

항상 오른쪽에 가방을 메고 같은 자세로 살아가는 그녀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틀 시간이 없어 자르는 일도 구름 타듯 하지

그녀가 장터에 감자를 팔고 온 밤은 배추, 열무 모종을 생각하지 서른다섯 시간으로 쪼갠 하루지만 늘어진 여름 물돌이에 발을 담그고, 가끔은 육지 속의 섬을 자처해 보는 것
정수리에서 이마로 향하는 땀방울을 짚어보는 일이지

                                               - 전문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의 시 중 '흰수마자'를 소개합니다.  


                    흰수마자

                                              
          강기슭 왕버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이른 봄부터 댐을 쌓는 공사로 내내 소용돌이가 인다
          물살이 바람의 머리칼을 휘감나 싶더니
          어느 순간 발설하는 자세로 왼쪽 방향을 푼다
          모래톱에 조금씩 거친 소란이 일어도
          온 몸의 고운 빛깔은
          지나온 바닥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내밀한 순간이 있음을 느낀다
          댐 잠수부는 내심 물의 촉수로
          긴장된 감정의 모서리를 굴리며 쉼을 풀었으리,
          언제부터인지 물 속 벽의 실금을 살피는 것도
          발부리를 긁어 나아가는 것도
          앞서 간 어머니의 기우였을까
          예민한 근성은 조용히 한 길을 고집한다
          물살에 휩쓸리는 칼날 시선을 고정시키기 위해
          자그락거리는 자갈의 무게를 가슴으로 누른다
          어머니의 한숨처럼 깊은 물속에
          혼자가 되는 시간이 많다
          봄부터 여름을 잇댄 댐 공사가 더 빨라져
          물 소용돌이를 익숙하게 방어해야 하고
          강 속 어디에 묻힌 줄 모르는 모래의 아픔을
          생각하다가 미끄러지는 찰나,
          내성천 어머니의 물은 긴 기다림처럼
          왕버들 그늘이 수심 한가운데로 와서
          그의 몸을 끌어낸다
          물의 가장자리가 따뜻하다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흰수마자 물고기가 다시 살아 헤엄치듯, 내성천 어머니의 물도 다시 흐르도록 시의 셰계를 확장해 나가는 강빛나 시인은 슬픔을 만들어 내는 힘이 있다.
시인의 시를 품고 어딘가로 가야만 될 것 같은 겨울! 강빛나 시인이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시인이 되길 소망하며 인터뷰에 응해 준 시인에게 감사드린다.

 

 

 

  

   ▲강빛나 시인

 

  【약력】  
 □ 통영 출생
 □ 2017년 <<미네르바>>로 등단
 □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수료
 □ 제2회 예천내성천문예현상공모 대상 수상
 □ 현 계간 <<미네르바>>편집장

 

 【편집=이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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