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13)

- 동백 ⓶,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2/01 [21:29]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13)

- 동백 ⓶,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2/01 [21:29]

                              

  © 포스트24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13)
                                                              -동백⓶


                                                                                                   한 상 훈(문학평론가)

 

동백 2편에선, 여로형 소설을 즐겨 쓰는 조용호의 단편 「그 동백에 울다」를 감상해 보자. 이 소설은 여행 모티프 속에 동백 이미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서천 마량 포구의 동백숲과 인도의 타지마할이 나란히 병치되어 있어, 두 공간의 장면이 교차 되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인도의 타지마할을 여행하면서, ‘동백꽃’만을 그리는 여류 화가인 그녀에 대한 여러 가지 상념에 빠져든다. ‘타지마할’에 오게 된 이유는, 갑자기 사라진 그녀를 혹시라도 여기서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것도 아니고, 더구나 여행 중에 극적 만남도 없다. 간결하게 말한다면, 과거의 사랑의 상처 때문에, 현재의 사랑에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여자의 슬픈 이야기다.

주인공인 그는 문화종합지를 만드는데 종사하고 있는 인물로, 미술 관련 리뷰를 자주 쓰곤 한다. “강렬한 색감의 동백꽃들로 가득 채워진 그녀의 도록을 발견”한 이후로,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녀의 작품을 비평하면서, 그녀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조금씩 그녀와 가까워진다. 서천의 마량리 동백나무숲은 “동백 시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북방 한계선”이며, 바로 그곳에 그녀의 화실이 있었다.

 

“진홍색 꽃잎들 사이에 수줍은 노랑으로 올올이 서 있는 수술들, 광택이 나는 담녹색 이파리들이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습, 어떤 그림은 도발적인 색감으로 묘사된 동백꽃이 화폭에 무수히 떨어져 있는가 하면, 꽃잎과 수술을 모두 뜯어서 짓이긴 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물감을 두텁게 바른 추상화”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녀는 붉은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슬픔이나 고뇌의 그림자를 느끼게 하는 꽃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대부분 예술가의 작품 세계는 자라온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듯이, 그녀도 예외가 아니다.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을 했으며, 어머니는 다른 남자를 만나 이민을 갔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그 후, 그녀는 큰아버지 집에서 얹혀살면서 공부를 해왔다. 어렵사리 미대에 들어가선, 자취생활에 알바를 하면서, 힘들고 쓸쓸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가 불우하게 자라온 환경보다도, 그녀의 ‘동백꽃’ 그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사랑했던 남자의 ‘자살’이다.

 

화자인 그가 ‘동백꽃’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그녀에게 물어본다. “붉은 송이째로 떨어져서 육탈된 시체처럼 검은 갈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프더군요.” “이승에서 사랑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채 바보처럼 저 홀로 뚝뚝 떨어져 버리는 것들의 비정”에 대한 서러움을 이야기 하며, 그녀는 내면 깊숙이 간직한 아픈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한다.

“꽃이 된 사람이 있었어요. 찰나에 피었다가 순식간에 떨어져 버리는 그런 꽃 말예요.”
그녀는 그에게 ‘동백나무 전설’을 아느냐고 묻는다. “하나같이 억울하게 죽은 슬픈 넋”이라는 것. 이 말은, 그녀의 애인이 ‘동백나무 전설’처럼 억울하게 죽었음을 암시한다.

 

동백꽃이 아름다움의 절정에 있을 때 꽃송이 째 떨어져 버리듯이, 독자들은 그녀의 애인이 젊은 시절에 가버렸음을 막연하게나마 예감하게 된다. 더구나 그녀가 동백나무 숲을 거닐 때, 유난히 “목이 부러진 동백꽃”을 잎사귀 위에 올려놓고 유심히 보는 장면에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그러한 점을 확신하게 된다.

그녀는 ‘그 사람’을 대학에서 처음 만났고, 학생 운동으로 그가 수배 중일 때, 그녀의 자취방에 그가 숨어 있으면서, 서로 가까워진 것이다. 그는 “위장 취업을 했던 학출 노동자”로 회사로 들어간다. 시대가 바뀌어가고, 노동운동이 약해질 무렵인데도, 그는 더욱 열성적으로 일하고, 노조위원장이 되어, 회사에서 해고된 사람들을 위해 농성을 했다.


그러다가, 노조원들의 비협조 속에, 그는 “회사 옥상에서 꽃으로 피었다가 마른 재”가 되었다는 것. 그는 노조위원장 임기만 마치면 그녀와 결혼하기로 약속했고, 그녀의 마음속에 “타지마할보다 아름다운 궁전”을 지어주겠다고 약속을 했던 것.

그렇다면, 그가 약속한 인도의 ‘타지마할’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일까.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 샤자한”이 사랑했던 왕비 ‘마할’을 위해 “22년간의 공사” 끝에 그녀의 유언대로 만든 궁전이다. “죽은 아내를 위한 대리석 궁전은 사방 어디에서 봐도 완벽한 균형미를 자랑하며 야무나 강가에 놓여 있다.” 즉 ‘타지마할’에는 사랑의 불변 또는 남자의 지순한 사랑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살한 그 남자를 잊지 못하는 것. 즉 화자인 그의 현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는 것이다. 좀 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화자인 그가 그녀와 어느 정도 가까워지고, 서로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 어느 날, 그녀는 “일몰 무렵의 동백”이 일품이라며, 동백 숲으로 가자고 한다. “동백꽃은 핏빛으로 물든 서해의 빛깔에 화답을 하듯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거기서 그는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풍경에 잠깐 젖어 있는 사이, 그녀가 갑자기 실종된 것이다.

 

그는 그녀의 화실에서 ‘쪽지’를 발견한다. 그녀가 과거에 사랑했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내년에 이곳에 돌아오겠다는 다소 미심쩍은 내용의 말이었다. 이러한 그녀의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랑의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가볍게 치유되는 것이 아니듯이,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화자인 그와의 사랑을 이어갈 수 없었던 여인의 방황일 것이다.

“우리의 가슴속에 지어 놓은 타지마할에서 만납시다.”

노조위원장이었던 옛 애인이 자살하기 직전, 그녀에게 남긴 유언의 마지막 말이다. 그녀에겐 아직도‘그 사람’이 던져놓은 그 말이 생생했던 것,
그는 서울과 서천을 오가며 사랑하는 그녀를 찾지만, 결국 실패하고, 마지막 기대와 환상을 가지고, 인도의 ‘타지마할’에 온 것이다. 그녀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애처롭다.

 

이 소설의 ‘동백꽃’ 이미지는 매우 강렬하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지닌 동백꽃의 다양한 그림들, 동백나무 전설, 서천의 동백 숲, 타지마할의 붉은 꽃 등으로 ‘동백꽃’이 작품의 시공간에 걸쳐 두루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녀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사랑이 중첩되면서, 그 이미지가 고조된다. 하지만 그 사랑은 성취되지 못하고, 슬픔만 남긴다.

작가 조용호는 서천 마량 포구의 동백나무 숲과 인도의 타지마할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함께 ‘동백꽃’의 이미지를 소설 공간에 치밀하게 그려 나가는데 성공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진한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가슴 저리는 진홍빛” 동백꽃 이야기다.

 

 

   

      

       ▲한상훈 평론가

 

  [약력]
 □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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