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형을 그리며

이우중 소설가, 수필읽기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1/27 [09:11]

매형을 그리며

이우중 소설가, 수필읽기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1/27 [09:11]

   

 사진= 이영자 기자.                                                                                  © 포스트24

 

                                                      매형을 그리며
                                                                   

                                                                                                     이우중 소설가

 

전라북도 익산시 웅진면 제석리 인적이 드문 첩첩산중에 3단으로 된 가족묘역이 있다. 
가족묘역 세 번째 단에 보통 크기의 봉분이 있고 봉분 앞에는 봉분과 어울리지 않는 큰 비석이 세워져 있다. 직사각형 이 비석의 폭과 크기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광개토대왕 비 높이 6.39m, 너비2m 와 맞먹을 만큼 거대하다.

 

매형은 1960년대 대학에서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였고 군사독재반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가 제적당했다. 
매형은 군사독재시절 요주의 인물이었기에 공직이나 회사에서 받아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20대 초반 큰누이와 결혼,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신림동과 용산구 해방촌, 성북구 하월곡동 등을 일주 하며 살았다. 거리의 두부장수 생선장수 배추장수 포장마차 등 온갖 일을 하였다. 마지막에는 벽돌 찍는 인부 일까지 하였다.
매형은 반정부 단체 활동을 하는 요주의 인물 이었으므로 20년 동안 형사에게 쫓겨 다녔고 밥벌이도 만만치 않아 빚쟁이들에게 도망 다니기 바빴다. 밑바닥 인생을 전전한 매형은 80년대 중반 겨우 안정을 찾아갔다. 그때부터 매형은 낮에는 사업가로, 밤에는 민주 투사로 두 가지 일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낮에는 사업가들과 술을 마셨고 밤에는 재야 민주 인사들과 숨어서 술을 마셨다.


매형이 벌인 사업의 이익금 중 많은 부분은 옥에 갇힌 민주 투사 가족 뒷바라지와 쫒기는 재야인사들의 숙식비로 쓰였다. 또한 쫒기는 정치 선후배들은 매형 사업장에 숨어 지내거나 매형 사업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용돈을 타갔다. 
군사 독재 정권이 물러나자 매형은 낮에는 조직 확대를 위하여 동지들과 술을 마셨고 밤에는 사업 확장을 위해서 사업가들과 술을 마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려다 48세에 간경화로 쓰러져 투병 생활을 하다 1994년 저세상으로 길을 떠났다.


매형이 하늘나라로 길을 떠나고 5년이 지난 1999년 김대중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정치가 안정되자 그의 정치 선후배들은 그를 기리는 추모비 건립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1999년 10월 27일10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추모비 건립 행사단이 매형의 묘소로 향했다. “고(故)황준규 선생” 으로 시작되는 비에는 449글자 장문의 추모사와 추모비 건립에 참여한 많은 단체와 수많은 현직 국회의원 등의 직위와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매형, 매형이 하늘나라로 떠나고 2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매형과 같이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여 민주화 선봉에 섰던 지도자 중 한 분 김대중 대통령은 2009년,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은 5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분은 아직 역사적 평가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민주화를 이끈 분이셨지요. 물론 매형이 이룩한 많은 일들 또한 가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형은 서슬퍼런 군사독재의 끝이 보이지 않았던 엄혹하고 암울한 시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하여 표시나지 않게 주위의 어려운 동지들을 도왔으며 군사독재에 결연히 맞선 사람이었습니다.

 

매형은 또한 세상 살아가는데 자신이 없던 저에게 말과 행동으로 희망과 포부를 세우게 하였고 정직과 성실로 살아가게 하였으며, 목표를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었습니다. 저는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닥칠 때 마다 매형이 가르쳐준 성경말씀 “처음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를 생각하며 힘든 일을 헤쳐 나가곤 합니다.


매형!
누님은 매형이 남겨준 유무형의 재산 덕분에 큰 걱정 없이 잘살고 있으며 외아들 보욱이는 16년 전 창업한 무역회사를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제는 튼튼한 기반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보욱이가 10년 전 결혼한 며느리는 매형도 잘 아는 성당교우의 딸이며 8년 전 손주 승준이가 태어났습니다. 승준이는 어찌나 똘똘하고 재롱을 잘 부리는지 주위사람들의 귀여움과 누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으며 승준이 동생도 내년 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입니다. 


어제는 매형이 살던 상도동 누님 집에서 김장 200포기를 담구어 성당 사람들과 이웃 그리고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누님의 김장 나눔 행사는 매형이 돌아간 다음 해부터 시작 하였는데 24년 동안 한해도 빠지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우리 아내도 매년 2박3일 누님의 상도동 집에서 숙식하며 행주산성 아래 매형이 마련한 밭에서 키운 배추를 뽑아서 다듬어 절이고, 새벽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젓갈을 사는 등 여러 사람과 같이 김장행사를 도왔습니다. 

매년 김장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어제 김장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매형이 좋아했던 홍어회와 생굴 그리고 돼지고기 삶은 보쌈을 먹으며 매형을 그리워하며 추억 하였습니다.


매형, 저는 요즘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매사가 그렇지만 글쓰기를 시작 할 때 처음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기를 바라면서 시작하였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매형의 일대기를 소설로 써보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매형의 짧은 삶은 대부분 고단 했지만 그 흔적은 크게 뚜렸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눈은 아주 먼 아득한 하늘나라에서 보일 듯 말듯 한 작은 점들로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눈들은 허공에서 뭉치고 흩어졌으며, 또한 서로 서로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대지로 내려온 눈들은 쌓이고 쌓여 창대한 하얀 눈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익산의 첩첩 산중 매형 묘소와 커다란 비에도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하얀 눈들이 쌓여가고 있을 것입니다. 두서없는 글 올렸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막내 처남올림.
                                                                                                                 2019.12

 

 

 

  

   ▲이우중 소설가

 

 

  〔약력〕

 □ 1997년 KT 문예대상 금상 수상, 2015년 경기도문학상

 □ 2018년에는 KBS와 고용노동부주관 40년 전통의 제39회 근로자 문학상 수상
 □ 2010년 장편소설『신은 한국을 선택했다』외 4권 출판
 □ 전)서울 남산문학회장, 전)성남시 야탑문학회장 역임 

 □ 현)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

 □  http://cafe.naver.com/emlee02     E-mail : emlee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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