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리 감정평가서', '매일 시니어 문학상 수상작'

배영 시인 - 시 읽기 1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0/02/16 [16:36]

'사거리 감정평가서', '매일 시니어 문학상 수상작'

배영 시인 - 시 읽기 1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0/02/16 [16:36]

 

                                           사거리 감정평가서

 

                                                                                                          배영 시인

반세기를 건너 찾은 사방四方은
어릴 적 내가 살았던 소읍의 작은 사거리다.

나는 그럭저럭 인간의 재화를 감정하는 직업을 얻었다.

사거리를 감정하기 위해선 우선
각지의 모서리를 달래야 한다.
사라지는 차량의 뒤를 세야 하며
햇볕의 노선도를 살펴야 한다.
각각 계절의 선두이거나 후미로 사라지는
길들의 방향도 살펴야 한다.

사거리의 평가가 애틋한 것은
내가 떠나온 방향과 내가 기다린 방향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는 것이다.
사거리에서는 헤어지고 그리워하는 것이
바람처럼 둥글다.
다닥다닥 붙은 따개비 같은 집들과 늙어가는 대문들
장독대 옆 앵두나무도 헉헉 숨이 차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한 때는 흥청거렸던 반경半徑으로
휘어지거나 잠잠해져 간다.

드라이버 끝의 수나사 같은 정착지들
빙글빙글 돌아서 뿌리내린 곳
사거리의 어느 쪽은 내 어머니가 끝까지 바라본
나의 뒷모습이거나 내가 애써 외면한
어머니의 눈빛이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사거리
떠나고 기다리고, 사거리는 지금도 붐비지만
추징불가의 이자율 같은 그리움이다.

 

                                                                           '사거리 감정평가서'  [전문]

 

 

 

     프로필 이미지                               

     ▲배영시인

 

  [약력 ]                                     

□ 고려대 법대 졸업

□ 2014년 시 현실 등단

□ 2016년 매일 시니어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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