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엄니를 위한 엘레지

『나를 깁다』, 이혜민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1/01/18 [20:36]

어머니와 엄니를 위한 엘레지

『나를 깁다』, 이혜민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1/01/18 [20:36]

  ▲ 이혜민 시인.                                                                                            © 포스트24

 

Q : 언제 시가 찾아왔나요?
A : 이 십 여 년 전 비오는 날이었어요. 울적한 마음으로 빗속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아스팔트위에 달아 붙은 전단지가 눈에 들어 왔어요.
시창작교실, 가슴에서 쿵하는 천둥소리를 들었어요. 이거다, 하고 소녀 적 감성이 꿈틀거리기 시작 했죠. 그때부터 시는 내 삶이 되었네요.

 

Q : 시의 소재는 어디서 가져오며 시적 고민은 무엇인가요?
A : 시의 소재는 일상에서 가져옵니다 삶이 시이고 시가 삶인거죠 투박하고 거칠기도 하지만 진솔하고 진정성있는, 삶에서 그대로 건져 올린 시어들이 날것처럼 생동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Q : 자신에게 위로가 되었던 시를 소개해 주세요.
A :  '돌다리' 입니다. 

 

                 돌다리

 

          흐르는 생의 물살
          가로 막고 엎드린
          당신의 등을 밟고 건너 와
          뒤 돌아 봅니다


          어머니
          이젠 일어나 내 등을 밟고 건너 보세요
          이렇게 당신 발아래
          날작 엎드릴께요

 

▶ 슬픔이 가지런한 이혜민 시인의 시를 들여다 보아요

 

                    나를 깁다

 

          거울 속에 꿈틀거리는
          날개 같은 것이 한 자루 가득
          쉼 없는 쉼을 위해 얼굴을 가리고 있다
          어디서부터 마름질이 어긋난 걸까
          햇살 바늘이 살갗을 뚫고 들어오며
          박음질부터 해댄다
          담장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유년의 얇은 천과
          날고 싶어 하는 날개가 청춘을 누비며
          한 벌 몸뚱이를 깁는다
          어디를 가는 모습과 질감이 똑같은,
          어지간한 오염에도 물들지 않는 원단
          늘 빡빡 문질러서 빨아야하리
          그러나 따뜻한 손길이나 입술엔 취약해
          고문 단속을 당하기도 한다
          나를 가리고 있는 천을 수선할 때마다
          빗방울처럼 떨어져 번지는 눈물
          무명의 노루발로 박음질 하는
          난, 한폭의 생을 깁는다

 


                     꿈속에서 꾸는 꿈


          잠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자는,
          눈 뜬적 없이 의식을 떠 다니는 꿈과 현실의 비구성, 피카소의 색채를 빨아 들이다가

          흑백으로 덧칠하는 색들

          구름위에 떠 있는 그녀 날개짓의 흥분과 절규,
          몽골 초원위 들꽃으로 피었다가 고비사막 모래톱 고사목이 되고 마릴린 몬로의 치마

          속 팬티에 붉은 꽃물이 드는


          목 짧은 스트라무스의 발자국이 화성에  먼지를 일으키며 찍힌다
          야성적  잠에서 걸어 나온 사내들이 침대위에 가득하고 썩은 냄새를 풍기는 산기슭을

          떠도는 하이에나의 울음소리가 들려 온다
          모자를 눌러 쓴 오래된 고고학자의 털붓에 화장기를 지우는 크레오파트라, 사람과 동

          물들의 발자국이 뒤 엉키는 금지된 오르가즘이
          프로이트의 무덤 속으로 불랙홀처럼 빨려 들어간다
          화장장 속으로 들어 간 죽음과 이제 막 죽음을 빠져나간 영혼, 불 구덩에도 아낌없이

          뜨거운 불꽃과 검은 뼈의 그림자
          삶도 죽음도 경계도 없는 꿈속 세상은
          그 곳에서 반송되는 흔들리는 죽음의 실루엣이다

 

          한장한장 그려서 슬라이드로 필름을 만들어 아낌없이 돌려주는 영사는 누가 만들었을까

 

          모든 무의식을 재현해 내는 놀라운 편집력과 의식의 몸부림이
          깨어지는 어둠의 파편들이
          잠의 심장을 멈추게하는

 

  ▲ 『나를 깁다』 이혜민 시집.                                                   © 포스트24

 

▷ 이혜민 시인의 시집 『나를 깁다』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이에서 길항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삶과 죽음을 서정성이 짙은 농도로 잘 드러내고 있다. 이혜민 시인에게 죽음은 ‘어긋난 마름질’이나 ‘물기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모노드라마’ 같은 것으로, ‘박제된 풍경’이고 ‘신이 베푼 잔인한 자비’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은 ‘비명의 다른 언어’들로부터 회피하거나 도주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의 경계에서 담대한 사유를 한다. ‘위험한 경계’를 넘나드는 에로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밤마다 궁글리는 밤벌레’가 되어 펼치는 애정행위는 ‘새벽별을 밟으며 월담’을 하거나 ‘자궁 속에 숨어 몸을 부풀’리기도 한다. 이러한 이혜민 시인의 시적 확장은 “고추패설”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혜민 시인은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길항하는 삶과 죽음을 통해, 본질적인 인간의 욕망을 ‘금서’를 읽듯이 재확인내고 있다. 여기서 이혜민이 견지하는 ‘금서’에 대한 시말은 곧 그 자신만의 ‘다른 언어’로 펼쳐낸 인간에 대한 원초적인 서정의 다른 행보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 권혁재, 시인

 

 

▶이혜민 시인은 시의 오브제들이 도처에 수두룩하다. 삶과 시가 한 가족이다. 몇 년 전 겨울, 병원에서 임종을 맞게 하고 싶지 않다 던 그녀의 헌신으로 시어머니는 당신이 살던 집에서 평안히 가셨다. 하지만 친정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눈을 감으셨다.

 

그 한 달의 간극이 시인에게는 어머니와 엄니를 기억하며 부르는 엘레지이다. 그 겨울의 쓸쓸함과 기일의 정서를 풀어 바람을 만들어 주는 시들이 절절하다.


두 분을 기억하면 언어의 지느러미가 헤엄을 친다. 엘레지를 부르며 자신을 기워가는 이혜민 시인의 시집 갈피마다 새 한 마리, 또 한 마리 정겹게 앉아있다.

 

『나를 깁다』시집이 독자들에게 오래도록 사랑 받기를 소망하며 인터뷰에 응해 주신 이혜민 시인께 감사드린다.

 

 

   

    ▲ 이혜민 시인


 【약력】

 □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

 □ 2003년 문학과 비평 신인상으로 등단.
 □ 시집 : 『토마토가 치마끈을 풀었다』, 『나를 깁다』

 □ 전자책 시집 : 『봄봄 클럽』
 □ 2006년 경기문화재단창작기금, 2018년 성남문화발전기금 수혜.
 □ 2019년 제 2회 안정복문학상 수상

 

 【편집=이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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