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10) 안미옥 시인

가족의 색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1/18 [19:07]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10) 안미옥 시인

가족의 색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1/18 [19:07]

    

   사진=이영자 기자.                                                                                      © 포스트2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10) 안미옥 시인

                                             가족의 색

                                                                                      

안미옥의 시는 불안정성을 띤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뿌리뽑힌 자가 되어 세계에 대립각을 세운다. 이러한 특징은 사회 중심부적 삶을 사는 자의 위치에 반해 주변적 삶을 사는 자신의 위치가 유동적이라는 데서 드러난다. 불안정성을 띤 그녀의 가족공동체시는 2000년대 새로운 모더니즘적인 성격에 기반을 두고 있어, 더 부정적이고, 더 불건강하다.


시인의 시에는 ‘서 있는 사람’,‘그림자’,‘물로 된 집’이 있고 반대쪽에는 ‘앉은 사람’,‘빛’,‘아주 좋은 집’이 있다. 이 대립각만 두고 본다면 시인의 가족공동체시는 나-어둠-해체된 가족이라는 공식으로 그릴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시인들의 시에는 가족공동체에 대한 비판적인 세계관이 드러나는데, 노혜경 시인(「레이스마을 이야기」)의 경우, 가족공동체의 문제는 아버지를 상징계의 안정된 질서와 위치에서 와해시켜버리고 그 자리에 할머니와 어머니로 대체하는 여성 가족연대의 성립을 표방한다. 이는 모성의 신화를 통해 아버지를 파편화시키고 해체하고자 하는 노혜경의 부성 부재의 시쓰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안미옥의 시는 다른 시인의 가족공동체시와는 구별된다. 그것은 아버지를 해체한 여성 가족연대의 성립이 아닌, 시인의 내면 의지로 자신을 포함한 가족공동체 모두를 부정하고 해체해 버린다. 가족공동체의 해체는 화려한 자본주의 산업화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시인의 시에서 ‘물의 집’으로 대변되는 가족공동체는 팽창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수평관계를 이루지 못한다. 단지 사회 외곽에서 중심부의 주체 변화를 재확인시켜주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점이 시인으로 하여금 세계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불안정성을 띠게 한다. 왜냐하면 시인의 과거 경험이 기억으로 끝나지 않고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인의 세계관은 서정적 특징에서 모더니즘적 특징으로 점차 변모해오는 게 아닌, 처음부터 일관되게 모더니즘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시인의 시에서 불안정성은 “깨진 벽돌”과 “녹슨 나사”, “깨진 창문”(「온」) 등이 꿈으로 나타난다. 악수를 건네는 자가 “아주 좋은 집으로 고쳐주겠다”(「페인트」)고 해도, 가족공동체는 못처럼 휘어지지 못한다.(「수색」) 그 모습을 본 시인은 모순과 갈등을 느낀다. 가족공동체는 자신들의 터전이 하락된 교환가치로 대체되는 부정성 편향을 경험했기에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 (「치료자들」,「굳은 식빵을 끓여 먹는 요리법」) 그 결과 빛을 바라보고 사는 자는 계속 빛을 보고 살고, 불 꺼진 창을 바라보고 사는 가족공동체는 “집에 아픈 사람”(「적재량」)과 “차고 흰 뿌리에 뿌리를 뻗는”(「천국」)해체를 경험하게 된다. 『온』에서 가장 부정적인 가족공동체의 시는 「가족의 색」이다.

 

          폭력은 밝은 곳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집에 살았던 적도 있다
    
          보이는 것도 흰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도 흰 것일 때

          겹겹이 백지처럼
          어두운 곳엔 없는 기도를 했다
                        - (중략)


          더 깊은 얼굴이 되면
          따뜻한 손을 갖게 될까
          지우고 싶지 않은 것들 사이엔 반드시
          지우고 싶은 색이 있다

          가족의 색
          가족의 문
          가족의 반성과 가족의 울음 가족의 일상 가족의 방식 가
          족의 손과 가족의 얼굴 가족의 정지
          그리고 가족의 가족

          알약은 깊은 곳에서 녹는다
          녹는 곳엔 바닥이 없다

          이것이 마지막 말이다

          얼굴에 그린 그림을 가면처럼 쓰고 있던 아이들이
          다 지워질 때까지
                  -「가족의 색」일부분

 

이 시에서 시인은 자본주의 폭력성으로부터 가정이 와해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그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성을 보면서, 시인 자신도 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수까지 거절하는 가족과 신을 부정해버린다 그녀는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의 폭력에 대응한 것이다.

 

그런데 시인의 왜곡된 시선이 자신의 내면 의지의 폭력이라는 점에서 문제성이 있다. “가족의 색, 가족의 문”, “가족의 반성과 가족의 울음 가족의 일상 가족의 방식” 등으로 나타난다. 시에서 시인은 가족의 모든 것을 파편화시킴으로써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회를 조롱하고 있다.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마저도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 심리양상을 보인다. “알약은 깊은 곳에서 녹는다/ 녹는 곳엔 바닥이 없다//이것이 마지막 말이다. 시인은 지금까지 버티기 위해 버틸만한 곳(「불 꺼진 고백)」을 찾았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터널 안쪽의 그림자뿐이다.(「균형잡힌 식사」) 시인이 죽음과 대면한 순간, 빛은 반대편에서 “차오르지 않는 빈 몸으로” 또는 “무너지고 있는 집안에 들어가 깨진 물건을 만지”듯이 찾아온다.(「빛의 역할」)


빛이 온다고 시인은 그 빛을 완전하게 받고 있지 않다. 아직은 삶의 짐이 과중하고, 내리막길이 펼쳐져 있으며, 한여름 강에 나아가도 언 강을 기억하고 있어(「구부러진 싸인」, 「여름의 발원」) 불안정성에 놓여 있다. 계속 아픈 가족사로 인해 그녀는 닫힌 입술과 닫힌 눈동자에 갇혀 있어 조그마한 생채기에도 아프다.


우리는 많은 시인이 잘 다듬어지고 성찰된 시를 쓰기를 기대한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한 사회 또는 한 가족공동체가 개인에게 주는 고통을 끊임없이 해체하는, 날 것 그대로의 진정성이 담긴 시를 쓰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임미옥의 시는 자본주의 사회가 보여주는 부정적인 힘의 논리와 양자 간의 대립과정에서 붕괴되는 약자의 고통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또한 2000년대 이후 모더니즘시의 한 특징인 객관성 상실과 파편화된 주관성을 통해 가족공동체로 인한 개인 고통의 정체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 점에서 이 시는 가치가 있다.  시인은 「가족의 색」에서 뿐만 아니라 『온』 전체에서도 “그림의 가면”을 벗어던졌다. 이후 시편에는 고통의 증식이 아닌, 아픈 파편들을 긁어모아 재구성한, ‘나 세움의 길’을 기대해 본다.

 

 □ 안미옥 시인 약력: 1984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권영옥 문학평론가

 

 [권영옥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 경북 안동 출생,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 시론서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 시집 『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 전 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현재 《두레문학》편집인, 문예비평지 『창』편집위원
 □ <두레문학상>수상.
 □ 이메일 : dlagkw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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