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12)

동백⓵ 한 상 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1/02 [17:37]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12)

동백⓵ 한 상 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1/02 [17:37]

                           

  © 포스트24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12)
                                    
       -동백⓵


                                                                                                     한 상 훈(문학평론가)

 


대부분의 꽃들이 겨울 추위에 떨어 꼭꼭 숨어서 아름다운 자태를 꽃피우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을 때에, 제주나 남쪽 섬에서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동백꽃. 이 꽃이 많이 피어나는 거문도 지방에서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 저녁, 뜨거운 물에 동백꽃을 넣어서 꽃물을 우려내는 ‘동백꽃 목욕’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한겨울에 붉은 꽃의 ‘동백’에게서 사랑의 열정이나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가들이 많다.

“백설이 눈부신/ 하늘 한 모서리// 다홍으로/ 불이 붙는다.// 차가울사록/ 사모치는 정화//그 뉘를 사모하기에/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정훈, 「동백」)

 

사설시조의 변형인 듯한 이 시는 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백설’과 ‘동백’의 색채의 대비 속에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화자의 어조에는 누구를 연모하여 저리 아름답게 꽃피고 있는 것인지,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어쩌면 겨울에 홀로 피어있는 붉은 꽃은 시인 정훈(1911-1992) 시인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시인들에게 하얀 눈 속에 핀 ‘동백’은 너무나 처연해서, 아름답게 사랑이 맺어지는 풍경의 이미지는 아닌 듯하다.


허수경(1964~2018) 시인의 「동백여관」(2012)도 겨울에 피는 붉은 꽃을 바탕으로 그려나간다.

“눈이 왔다// 울음 귀신이/ 동백처럼 붉은 전화를/ 길게 걸어왔다/ 절은 눈처럼 흩날렸고/ 산은 눈처럼 걸어갔고/ 당신이 잠든 방은/ 눈처럼 떠나갔다”

정훈 시인의 시가 임을 사모하는 마음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허수경 시인은 이별의 비애감에 치중했다. 더불어 환상적 기법이 돋보인다. 두 작품 다 색채의 대비가 선명하다. 허수경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인한 ‘이별’의 상처는 ‘동백’ 이미지의 현대시에선 자주 보인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최영미, 「선운사에서」)

 

시인은 사랑하는 임에 대한 헤어짐의 슬픔을, 피고 지는 ‘꽃’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이라는 표현처럼 임과의 이별 후에 오는 내면적 고통을 쓸쓸하게 노래하고 있다. 이제는 임을 잊고 싶지만, 내 맘대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무작정 헤맬 수도 없고, 상처가 아물 수 있는 방황의 기간이 녹록지 않을 듯하다. 동백꽃으로 유명한 ‘선운사’와 ‘지는 건 잠깐이더군’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꽃’이 ‘동백’임을 알 수 있다.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도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물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김용택, 「선운사 동백꽃」)

 

이 시는 사랑하다가 헤어진 여자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남자답게 참고 참다가, 사랑하는 여자처럼 아름다운 동백꽃과 눈 마주치며, 기어이 슬픔이 폭발해버린 것일까. ‘이 악물고’ 맹세하며 다짐했건만, 내 의지대로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오히려 실컷 울고 나면 맺힌 상처가 풀리니, 그 이상의 치유는 없을 듯하다. 김용택(1948~) 시인의 시처럼 ‘선운사’하면 ‘동백꽃’이다. 이처럼 꽃과 지명이 나란히 조합을 이루며 형상화된 시들이 제법 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 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서정주, 「선운사 동구」)

 

시인은 동백꽃을 보러 선운사에 갔다가, 너무 일찍 갔기에, 꽃 핀 풍경은 미처 보지 못하고, 막걸리나 마시면서 술집 주모의 육자배기 가락을 들으면서, 흥겨워한다. 외로움을 달래볼까 꽃구경을 갔지만, 의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상심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낭만적 여유를 보이는 화자의 모습이 소탈하고 낙천적이다.
현대시에만 이처럼 ‘동백꽃’의 시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옷이야 남녘이라 겨울에도 덜 입지만/ 술이야 근심 많아 밤마다 더욱 마시네/ 한 가지 유배객의 시름을 덜어주는 것은/ 섣달 전에 붉게 핀 동백꽃이라네”

조선후기 정조의 최측근이었던 대사상가 정약용의 시가이다. 그는 정조 사후에, 정적들에 의해 강진으로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동백꽃’을 보면서 귀양살이의 서러움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은 것이다.


동백은 피는 형상뿐만 아니라, 지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린 작품들도 제법 된다. 동백꽃은 지는 모습이 뭔가 잘못되어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만큼, 목이 부러지듯 툭 하고 통째로 떨어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문정희, 「동백」)

 

꽃이 떨어지기 직전, 가장 아름답게 핀다는 동백꽃. 시인은 꽃의 절정에서 져버리는 ‘동백’의 특성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가장 눈부신 아름다움의 절정에 있을 때, 그 지점이 바로 ‘소멸’이라니, 허무하기도 하다. ‘독약’마저 붉어 아름다우니, 죽음의 미학에 도발적 관능마저 느껴진다.     

“섬진강가 동백 진 거 본다/ 조금도 시들지 않은 채 동백 져 버린 거/ 아, 마구 내다 버린 거 본다/ 대가리째 뚝 뚝 떨어져/ 낭자하구나”(문인수, 「동백」)

 

남도의 섬진강가에 동백꽃이 선혈처럼 붉게 여기저기 떠다니는 풍경. 문정희 시인의 탐미적 세계와는 어조가 사뭇 다르다. 곱다고 해야 하나, 잔혹하다고 말해야 할까. 꽃송이째 떨어지기에 “대가리째 뚝 뚝 떨어져”로 섬뜩하게 표현하고 있다.

서정적이고 목가적 세계관의 시인 신석정(1907~1974)은 ‘동백’으로 유명한 여수의 오동도를 배경으로 “일렁이는 바다로/ 노을 비낀 속에/ 동백 떨어지는 소릴/ 들을거나”(「오동도엘 가서」)로 노래하고 있다.
문정희(1947~)와 문인수(1945~)가 낙화의 시각적 이미지에 역점을 두었다면, 신석정은 오히려 청각적인 이미지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

 

 

 

 

      

       ▲한상훈 평론가

 

  [약력]
 □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인기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