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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9) 안희연 시인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0/12/19 [19:32]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9) 안희연 시인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0/12/19 [19:32]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9) 안희연 시인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 포스트24


전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에서 알 수 있듯, 안희연의 시의 특징은 인간 존재의 부조리와 세계의 소멸에 대한 감각적인 언어 운용과 탐구로 이해되어 왔다. 이번 시집도 앞의 시집과 같은 특징을 담고 있다. 「업힌」, 「자이언트」, 「표적」 같은 시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시들은 인간의 부정성과 세계의 파편화에 대한 고통을 색색이 유리알처럼 감각적 언어로 조련하고자 한다. 포크레인에 의해 집이 부수어 지는 것이나 (「빛의 산」), 개의 한쪽 눈이 붉음을 지나 검어지고 죽음의 손에 끌려 가버리고 마는(「그의 개는 너무 작아서」) 것과 인간의 마음이 너무 많이 매달려서 나무가 부러졌다는 소식은 존재의 비윤리적인 부정성으로 인해 모두가 소멸되어가는 존재들이다. 이 존재들에 대해 시인은 감각적인 언어로 시를 운용하고자 하지만 욕구와 달리 언어에 대한 자신의 한계성 때문에 현상과 이미지 영역 너머인 다른 행성(「역광의 세계」)으로 가게 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시이다.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할아버지께서 노래를 찾아오라고 하셨다
어떤 노래를요?
그건 차차 알게 될 거라고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와야 한다고 하셨다

                              - (중략)

오들오들 떨며 달의 분화구를 향해 갔다
거기서 잠시 추위를 달랠 요량이었다
그곳엔 행색이 초라한 사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아저씨, 일어나보세요. 저는 노래를 찾으러 왔어요
얘야, 나도 노래를 찾아 수백년을 걸어왔지만
노래는 어디에도 없고 이제 더는 걸을 수가 없구나
그의 가방 속에는 녹슨 아코디언이 들어 있었다
건반을 눌러봤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갔다
나는 내게 남은 모든 옷을 벗어 그에게 입혔다
저 해는 아저씨의 심장 같아요
밤이 되어가는 그를 말없이 지켜보다가

결국 나는 빈손으로 되돌아왔다
할아버지, 이 땅엔 노래가 없어요
울음을 터뜨리는 내게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벌거숭이 노래를 가져왔구나, 얘야
그건 아주 뜨겁고 간절한 노래란다
                -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일부분

 

이 시는 모두 네 편으로 구성된 우화 형식의 환상시다. 근원에 대한 회상을 환상적으로 구축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환상은 주로 인물과 사물의 상상된 행동과 장면이 방어기제에 의해 와해되고 구부러진 방식으로 표현된다. 시인은 ‘달’이라는 원초적 환상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노래가 없다. 노래(언어)는 욕망 그 자체이다. 시인은 할아버지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노래 찾기’ 여정에 오르지만, 이 세계는, “신발을 벗어주면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외투를 벗겨 달아”나고, 시인이 건반을 눌러봐도 ‘아무 소리’도 없는 ‘빈손’의 영역이다. 시인은 노래를 찾지 못하고 죽어가는 자에게 “남은 옷을 모두 벗어 입혀” 준다. 그러나 이 세계의 존재들은 부정성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은 “땅과 씨앗”을 파헤쳤던 (「지배인」) 지난날을 반성한다.


이 시에서 특히 도드라지는 점은 언어의 탐구 방식에서 확장해 환상을 통해 감각적 언어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환상의 영역에는 노래(언어)가 없다. 대신 초월적 존재로부터 욕망에 대한 교훈을 얻게 된다. 초월적 존재는 시인에게 “삶과 죽음을 가르는 건 단 한걸음의 차이라고(「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p.54)” 말하거나, 색색의 유리구슬이 담고 있는 “침묵의 세계”(「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p.52)를 보라고 한다. 또한, 시간의 “매듭을 풀 때는 신중해야 한다”(「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p.52)고 당부한다. 초월적 존재의 교훈은 ‘흰 접시’(「시」)로 비유되는 언어에 대한 욕망이다. 욕망은 ‘벌거숭이의 노래’이며, ‘빈손’이라서 무無다. 결국 시에 대한 시인의 욕망은 “완두콩의 연두”→ “딸기의 붉음”→ “갓 구운 빵의 완벽과 무구를”(「시」) ‘흰 접시’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언어들은 떠도는 혼령과 같아서 사라지고 만다.


시인은 존재의 비윤리성과 세계의 소멸에 대해 “아주 뜨겁고 간절하게” 시를 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언어만으로는 어떤 얼굴도 만질 수”(「아침은 이곳을 정차하지 않고 지나갔다」) 없기 때문에 원초적 환상을 통해 언어를 탐색하고자 한다. 현실세계처럼 환상의 영역 역시 언어에 의해 충족될 수 없는 세계다. 결국 시인은 “앵무 앵무 울며” 자신을 견디고 있다. (「앵무는 앵무의 말을 하고」)


나는 뜨겁고 간절한 자신의 ‘벌거숭이 노래’를 찾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걸 안다. “여름날 모든 것을 불태우는 계절”(「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처럼 시인은 교훈을 배면에 깔고 현실 체험의 질서화와 참여 정신으로 언어를 수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이 시는 시인의 한결같은 존재의 가치와 개성적인 언어를 찾고자 하는 방향, 그 고유한 위치를 찾아가기 위한 고통의 과정을 그린다고 하겠다. 색색의 털실 뭉치로 짠 안희연 시인의 개성적이고 아름다운 시가 매력적이다.

 

【안희연 시인 약력】
2012년 창비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이 있다.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했다.

 

 

 

 

 

  

    ▲권영옥 문학평론가

 

 

 [권영옥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 경북 안동 출생,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 시론서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 시집 『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 전 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현재 《두레문학》편집인, 문예비평지 『창』편집위원
 □ <두레문학상>수상.
 □ 이메일 : dlagkw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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