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탐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김단혜 수필읽기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0/12/02 [00:44]

하늘도 탐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김단혜 수필읽기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0/12/02 [00:44]

                                   하늘도 탐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김단혜 수필가

 

한 달에 한 번 마술에 걸리는 여자처럼 찾아가는 곳은 성남아트센터 마티네콘서트다. 공연은 밤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셋째 주 목요일 오전 11시 브런치가 있는 행복 콘서트다. 사람들의 옷에서 벌써 음악회 분위기가 난다. 음표가 그려진 셔츠 드레스와 깊은 바다 빛 핸드백에서 사뿐함이 느껴진다. 일상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차 한 잔하며 이상의 세계로 오르는 발걸음은 프레스토다. 열심히 일한 당신 클래식을 들어라. 마치 어느 여행 문구처럼 다가온다. 브런치 커피와 토스트를 받는 앞줄의 여인에게서 여름 향기가 난다. 지난여름은 혹독했다. 육십 년 만에 찾아온 극심한 더위로 온 나라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주체 할 수 없는 폭염에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목덜미를 쓸어올리며 날리는 스카프 자락을 여미게 하는 한 줌 바람이 간절했다.

 

여름의 끝자락 그렇게 권혁주를 만났다. 그는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 전곡을 무대에 올린 연주자다. 검은 연미복을 입고 지그시 눈을 감으며 땀을 흘리며 연주하는 그의 모습에서 악마에게 혼을 팔았다는 파가니니가 보였다. 연주자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파가니니. 그가 긋는 활 끝이며 현을 짚는 손마디, 손가락 근육이 견디지 못할 정도의 강렬한 카리스마로 다가온다. 그의 바이올린을 소리를 듣는 순간 창자가 타들어 갈 정도로 무더운 여름을 보상받은 듯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다는 감동에 앞뒤를 두리번거린다. 바이올린 음률에 실려 온 짜릿한 행복감,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소름끼치는 전율이 온몸에 독처럼 번진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자신을 나타낸다. 어떤 말보다 그가 들려주는 정직한 음악이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고스란히 연주에 담아 보여준 권혁주의 연주는 목 넘김을 타고 뼛속까지 향기롭게 퍼진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만이 낼 수 있는 모든 기교를 보여준다.

 

그는 3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고 했다. 7살에 한예종 예비학교에서 김남윤 교수의 사사로 시작된 음악 생활은 러시아 유학 시절 야사 하이페츠의 후계자로 불리며 타고난 천재성을 제대로 발휘했다. 그는 아이큐가 184로 멘사의 회원이다. 9살에 러시아 음악학교에 들어가 외로워서 바이올린을 켰다는 권혁주. 머나먼 이국땅에서 추위를 이기기 위해 바이올린을 켜다 잠들었다고 했다. 왼손 검지 손가락 손톱아래 배긴 굳은 살이 연습양을 말해준다. 어떤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보다 높은 외로움에 이르는 것이다. 외로움을 비우기 위해 켜고 또 켠 바이올린에서는 추위와 외로움이 고스란히 소리로 전해진다. 그의 연주는 귀로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손, 발, 눈 몸에 있는 모든 기관으로 들려오며 감정선을 하나씩 건드린다. 청중들의 숨을 조이며 명치로 스며드는 연주에 침을 꼴깍 넘긴다. 침묵, 음악은 침묵을 위해 침묵하는 언어의 이면이라고 했던가.

 

그해 가을 새벽, 신문에서 발견한 권혁주의 사망 소식 한 줄. 8월 셋째 주에 만난 권혁주가 아닌가. 10월 13일 부산공연을 앞두고 택시에서 심근경색에 의한 심정지로 우리의 곁을 떠났다. 바이올린만 알고 바이올린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던 그 권혁주가 아닌가. 31살 불에 델 것처럼 뜨거운 나이 아니 예술가로서 절정에 오른 순간이 아닌가. 못다 한 말 못다 들려준 음악은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홀로 아들을 키운 권혁주의 어머니는 또 다시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이번에는 러시아가 아니라 그의 음악을 탐한 하늘나라로 보낸 어머니는 2017년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자녀를 훌륭한 예술가로 키워낸 어머니에게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여하는 상이다. 그러나 정작 그 어머니를 있게 한 권혁주는 이 세상에 없고 그가 연주한 곡만이 남아있다. 그가 연주하던 이탈리아 장인이 만들었다는 과다니니는 가을 바람소리에 홀로 남겨져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 김단혜 수필가

 

 
 □ <한국작가> 2010년 수필등단 
 □ 야탑문학회 회장
 □ 성남문학상 수상 (2018년)
 □ 시집<괜찮아요, 당신> 책 리뷰집<들여다본다는 것에 대하여> 
 □ 수필집<빨간 사과를 베끼다> 
     vip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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