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11)

갈대⓶ 한 상 훈(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0/12/01 [23:53]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11)

갈대⓶ 한 상 훈(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0/12/01 [23:53]

                       

  © 포스트24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11)
                                                              -갈대⓶


                                                                                                    한 상 훈(문학평론가)


이번 갈대 2편에서는, 오래간만에 중국소설 1편만을 가지고 소설 속에 갈대 이미지가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 정밀하게 검토해 보려고 한다.

 

(1) 갈대숲의 풍경

중국의 국민작가이며 북경대 교수인 차오원쉬엔(曺文軒)의 장편 『청동해바라기』는 갈대숲이 시종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소설이다. 제목의 ‘청동해바라기’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 ‘청동’과 ‘해바라기’의 이름이자, 해바라기 아버지의 예술 작품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보리밭 마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청동’과 ‘해바라기’는, 어린아이들로 심성이 곱고 순수하여, 이들에게 닥치는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맑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 독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준다.


어느 날, 사방이 갈대로 둘러싸여 있는 이 마을의 강 건너편에, 도시 사람들이 온다. 그들은 갈대밭에 와서, 집을 짓고, 땅을 일군다. 몇 달이 지나더니 “갈대밭에 선명한 파란 벽돌 벽에 빨간 기와를 얹은 주택”이 몇 채 세워졌다. “그들은 호기심 가득한 낯선 눈으로 보리밭 사람들을 보았고, 보리밭 사람들도 똑같은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왔던 보리밭 사람들은, ‘편안한 도시’에서 온, 노동 하는 낯선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소설의 서사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시골의 토착민들과 외지에서 온 사람들과의 갈등 구조로 얼핏 생각했는데, 이 소설은 인물의 대립구도로 극명하게 전개되거나, 사회성이 짙은 작품이 아니다. 해바라기 아빠를 비롯해서,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갈대를 베어 내고, 그 곳을 옥토로 만들고, 연못을 만들어야 하는 무거운 육체 노동의 임무”가 있다는 것으로 볼 때, 이 작품의 배경은 중국 현대사의 엄청난 소용돌이를 몰고 온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이상의 사회적 변화나 혁명의 구체적 사건은 제시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 글은 동화적이며 서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 이유는 강가의 갈대숲의 정경 속에서 아이들 중심으로, 작고 큰 에피소드가 끊임없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강이 흐르고 있는 갈대숲의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백로 떼가 뭔가에 놀라 오랜 세월 고요하기만 했던 갈대밭을 푸드덕 날아올랐다. 백로들은 잠시 갈대밭 상공을 빙 돌다가, 보리밭 하늘로 날아가 끼루룩 끼루룩 울음소리를 냈다.” “물 흐르는 소리와 갈대 부딪치는 소리가 달콤한 속삭임 같고, 물결이 갈대 사이를 흐를 때면 마치 강이 귀밑머리를 훑는 듯 했다.” 이처럼 보리밭 마을의 갈대숲 정경은 강과 새, 바람, 햇살 등의 자연과 어울리며 한 폭의 그림처럼 서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렇기에 가난한 시골 사람들의 고난을 작가가 그리고 있지만, 거칠거나 팍팍하지 않다. 중심인물인 ‘해바라기’의 삶은 매우 기구하다. 엄마는 2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오빠 역시 오래 전에 뇌막염으로 죽었다. 이곳으로 부역을 오게 된 아빠는 해바라기와 함께 지낼 수 없어 한숨으로 나날을 보낸다. 어린 해바라기는 혼자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조각가인 아빠는 꽃 중에서 ‘해바라기’를 좋아했다. 그 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재료로 ‘청동’을 꼽았고, “따뜻한 느낌의 해바라기와 차가운 느낌의 청동의 결합”이야말로 가장 이상적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동 해바라기’란 작품을 만든 것이다. 딸아이와 보리밭 마을의 벙어리 ‘청동’의 이름을 결합시킨 것과 동일한 작품의 명칭은 두 캐릭터가 긴밀한 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을 암시한다.

 

어느 날 조각가인 아빠가 사고가 난다. 그는 강 건너에 해바라기로 가득 차 있는 들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곳으로 그림을 그리러 갔다가, 갑자기 몰아친 회오리 바람 때문에 강물에 빠져, 목숨을 잃게 된다. 혼자가 된 어린 해바라기는 어찌할 도리 없이 보리밭 마을의 어느 집에 입양 되어야 할 형편에 처한다. 이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까위네와 가장 형편이 어려운 벙어리 청동이네가 서로 ‘해바라기’를 원한다. 경제적 조건이 좋지만 밉상맞은 까위네보다 착하고 인정이 많은 청동이네로 해바라기는 가게 된다. 해바라기가 청동이네 식구로 편입되면서, 벙어리인 청동이는 해바라기의 오빠가 된다. “청동과 해바라기는 흙탕물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두 아이가 장난치며 들판을 뛰어다니는 모습은 보리밭 사람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촉촉하고 따뜻하게 퍼져 나갔다.”


(2) 갈대꽃 신발

이 소설에서, 청동이는 ‘갈대’와 가장 각별한 관계에 놓이는 캐릭터다. 갈대숲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이유도 있지만, 가장 ‘갈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갈댓잎으로 만든 풀피리”를 불러서 해바라기를 놀라게 한다든가 갈대꽃을 채집한다는 등이 그런 사례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가난으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갈대꽃으로 신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파는 모습이다. 이곳 사람들은, 겨울에 방한화를 신을 형편이 못되어서 “갈대꽃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 다니곤 했다.


청동은 “커다란 마대를 들고 갈대숲 깊은 곳으로 들어가 새털처럼 부드럽고 북슬북슬하게 난 은빛 갈대꽃”을 땄다. 그것으로 새끼줄과 섞어 꼰 뒤에, 신발을 만드는 것이다. 청동이네 식구들은 틈만 나면 갈대꽃신을 엮었고, 청동은 등에 갈대꽃신을 십여 켤레 짊어지고 읍내로 팔러 나갔다. “새끼줄에 갈대꽃신을 죽 꿰어서 묶은 뒤 어깨에 걸치고 걸으니 갈대꽃 신발들이 들썩들썩 춤을 췄다.” 읍내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벙어리가 또 갈대꽃신을 팔러 나왔네.”하고 한마디씩 한다.

 

그런대로 ‘갈대꽃신’은 인기를 끌면서 잘 팔려나가고, 청동이네 식구들은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던 중 이 마을에 갑자기 메뚜기 떼가 급습한다. 그나마 얼마 안되는 이 곳의 먹거리가 다 사라지는 등 갈대밭마저 초토화되고 만다. “메뚜기 떼가 덮치면 집 안의 책이며 옷가지까지 몽땅 먹어치워. 이빨이 없으니 망정이지. 만약 이빨이 있었다면 사람까지 먹어치웠을 거야.” 보리밭 사람들에게 메뚜기 떼는 ‘공포’ 그 자체인 것이다. 그 메뚜기 떼의 습격을 받았으니, 청동이네는 물론 대부분 보리밭 마을의 사람들도, 굶주림에 허덕거렸다. 쌀독 안의 ‘마지막 한 톨’까지 다 먹어버린 상태에서, 벙어리 청동이는 어떻게 하든지 식구들의 먹거리를 만들어야만 했고, 급기야 해바라기를 데리고 갈대숲으로 간다. “청동은 바구니를 든 해바라기를 소 등에 태우고 갈대숲으로 출발했다. 깊숙한 곳으로 가서 부드럽고 달콤한 갈대 뿌리를 캐려는 것이었다. 갈대숲 깊숙한 곳의 갈대 뿌리일수록 부드럽고 달콤하다는 것을 청동은 알고 있었다.”

 

청동은 손가락으로 갈대 뿌리를 파내어, 물가에 가서 씻어서 먹어보라고 해바라기에게 준다. 해바라기 역시 청동에게 갈대 뿌리를 주자, 그 아이도 한입 베어 문다. 갈대숲에서 갈대뿌리를 캐는 장면은, 극한적 상황 속에서 서로 감싸주는 남매의 진한 사랑이 매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남매는 서로 갈대 뿌리를 캐다가, 좀 질긴 것이 나오면 그것은 소에게 주었다. “소는 맛있게 씹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이처럼 서로 챙겨주는, 따뜻한 남매의 에피소드가 이어지고 있어서, 필자는 이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 벙어리 청동과 해바라기가 서로 사랑을 하게 되는 연애 서사로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 기대를 여지없이 배반하였다.

 

정치적 격동이 지난 후, 해바라기 아빠의 조각 작품인 ‘청동 해바라기’의 가치를 깨달은 도시의 시장이 이미 고인이 된 해바라기 아빠에게 감사를 느낀다. 그러던 중 아직 보리밭 마을의 어느 집에 그 딸인 해바라기가 입양되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시장은 어린 해바라기를 더 이상 그 마을에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그 마을의 이장을 동원하고, 청동이네 부모를 설득하여, 기어이 도시로 데려오게 되는 것이다.

 
(3) 벙어리가 입을 열다

작가는 남매의 애타는 이별을 더욱 고조시켜 나간다. 안타까움에 마음 졸이는 독자들은 해바라기가 커서 다시 보리밭 마을로 찾아오든가, 아니면 청동이가 도시로 가서 재회하게 되는 극적 만남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나간다.


해바라기가 떠난 후, 청동이는 짚가리의 꼭대기에 올라가 하루종일 앉아서, 강가를 바라본다. 그곳은, 하얀 증기선을 타고 해바라기가 사라진 강의 끝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다. “빗물이 쉴 새 없이 그의 머리 위에 떨어지고 있었지만 청동은 눈을 부릅뜨고 강 끝을 바라보았다. 세찬 빗줄기와 망망한 강물을.” 필자로서는 작가가 이 소설을 ‘망부석 설화’로 끝내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어딘지 좀 싱겁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그런 생각도 잠깐이었다. 청동이는 짚가리 꼭대기에서 꼼짝 앉고 강가만 바라보다가, 해바라기가 자기를 향해 뛰어오는 환상을 본다. 그 순간 청동이는 거기서 깜짝 놀라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짚가리 꼭대기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해바라기를 향해 달려 나가다가 땅 위로 떨어진다.


청동은 천천히 일어나 다시 앞을 보니, 해바라기가 여전히 자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을 본다. “해바라기야?” 청동은 입을 크게 벌리고 온 힘을 다해 소리친다. 청동의 친구인 까위가 그 앞을 지나다가 청동이가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청동이는 다시 해바라기냐고 외친다. 놀랍게도, 벙어리인 청동이의 말이 실제로 목구멍에서 나오고 있었다. 까위는 깜짝 놀라, 청동이가 말을 하고 있다며, 보리밭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소설은 끝난다.

 

다정했던 해바라기와 청동이가 끝내 재회를 하지 못한 상태로 끝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비극적이다. 하지만 벙어리인 청동이가 해바라기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녀의 환상을 보며 굳게 닫혀져 있던 말을 하게 됐다는 것은, 그 비극적 결말을 뛰어넘는 휴머니티의 따뜻함을 담고 있기에 감동적이다.

 

이 소설에서 ‘갈대숲’은 보리밭 마을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의 배경이며 남매의 따뜻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작가는 갈대숲뿐만 아니라, 갈대꽃이나 줄기, 뿌리 등 이 식물이 지닌 모든 속성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갈대 줄기로 피리를 분다든가, 갈대꽃으로 신을 만드는 모습, 갈대 뿌리를 파내어 달콤한 즙을 먹는 행위 등이 매우 이채롭고 향토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게 한다.

 

 

  

      

       ▲한상훈 평론가

 

  [약력]
 □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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