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의 ‘새’ 이미지 탐색 (3)

-기러기 ⓵, 한 상 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12/03 [09:35]

문학공간의 ‘새’ 이미지 탐색 (3)

-기러기 ⓵, 한 상 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12/03 [09:35]

 

  ▲ 큰기러기.                                                                                              © 포스트24


                             문학공간의 ‘새’ 이미지 탐색 (3)

                                                           -기러기 ⓵

 

                                                                                             한 상 훈 (문학평론가)

 

기러기는 오리과에 딸린 물새다. 10월 하순쯤 날아와서 겨울을 보내며, 3월에 시베리아 동부나 한대지역으로 멀리 가버리는 겨울 철새다. 색깔이나 크기에 따라 쇠기러기, 큰기러기, 흑기러기, 회색기러기, 흰이마기러기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회색기러기와 흰이마기러기는 ‘미조’(迷鳥)다. ‘미조’는 태풍이나 기후변화 등이 원인이 되어서 본래의 서식지나 이동경로를 벗어난 새를 말하는데, 정체성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과도 같다. 

‘철없는 철새들’이란 말이 있다. 철새들이 이동 시기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물총새, 해오라기, 칼새, 휘파람새 등이 한 달 정도 이동 시기가 앞당겨졌다고 한다. 이동 시기가 늦어지는 새들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철새들은 왜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고, 가야 할 머나먼 거점을 향해 ‘길찾기’를 잘 해내는 것일까? 무엇을 이용하여 몇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그들의 번식지나 둥지로 정확하게 이동하는 것일까? 철새들은 주로 낮에 이동할 때는 태양의 위치를 통해, 밤에는 별을 길잡이로 삼아 이동한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철새가 지구의 자기장을 이용해 길을 찾아간다고 밝히고 있다. 나침반의 바늘이 지구 자기장에 따라 남북을 가리키듯이 철새에게도 그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철새의 몸의 어느 곳에 있을까하는 것이 과학자들의 고민이었다. 

최근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철새의 눈 속에, 지구의 자기장에 정확하게 반응 있는 화학물질이 있다는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지구는 거대한 하나의 자석이다. 바로 이 점을 이용하여 철새들이 자기 눈 속에 있는 나침반으로 ‘길찾기’를 한다는 것.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서 각종 통신장비나 발전소, 온갖 매체의 방송 시설에서 나오는 강력한 인공 자기장으로 말미암아, 철새들의 눈 속의 자기장이 가끔 오작동이 일어나, ‘미조’(迷鳥)처럼 철새들이 헤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김소월(金素月, 1902~1934) 시인은 바로 ‘미조’(迷鳥)와 같은 존재였다. 그의 대표적인 시 「길」을 감상해 보자.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김소월, 「길」 전문

 

시인의 젊은 날, 쓸쓸한 삶의 내면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유랑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아픔과 겹쳐진다. 4연의 ‘정주 곽산’은 평안북도에 있는 김소월의 고향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어 일찍 개화된 지역이며, 그로 인해 신학문을 일찍 접할 수 있었던 공간이다. 김소월의 고향인 ‘정주’는 한국문학사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지리적 거점이다. 김소월이 태어나기 10년 전에, 현대소설의 신호탄을 올린 이광수(1892~1950)의 고향이었으며, 김소월이 태어난 10년 후엔,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인 백석(1912~1996)이 거기서 출생했기 때문이다. 

 

김소월은 최초의 순문예지인 「창조」 제 5호에 「낭인의 봄」(1920)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한다. 일제 강점기 시인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김소월은, 등단 이후, 불과 6~7년 동안 2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엔 작품 활동이 극히 저조했다.

그는 일본 도쿄상과대학 유학 중에 관동대지진으로 중퇴하고 돌아온 후, 광산업을 하는 조부를 도와 생계를 꾸려나갔으나, 광산업의 실패로 생계가 극히 어려워졌다. 그 후 고향에서 동아일보지국을 개설해 생계를 이어나갔으나, 그것마저 경영에 실패. 결국 계속된 사업 실패 후, 가난에 허덕이다가, 술과 아편을 먹고, 그의 고향인 곽산에서 음독자살하였다. 

김소월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본인에게 폭행당한 후 정신질환이 일어나는 사건이 있었다.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정신적 트라우마와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물레방아」의 작가 나도향(1902~1926)의 요절, 사업 실패 등이 그의 자살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에는 두 마리의 새, 까마귀와 기러기가 등장한다. 1연의 ‘가마귀’의 울음은 삶의 방향을 잃은 서정적 주체의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을 비유하고 있다면, 5, 6연의 ‘기러기’는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시적 화자에게 부러움의 대상으로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이 시에선 자유롭게 날고 있는 ‘기러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서정적 주체를 주목하게 된다. 그 장면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방황하는 김소월 시인의 젊은 청춘이 우울하게 떠오른다. 문학에서 ‘길’이란 ‘인생’인 것. 이 시도 그런 시각에서 감상하면 될 듯. 

 

고전 시가를 한편 감상해 보자. 우리의 전통적인 혼례에서 신랑이 신부집에 갈 때 기러기를 가져가 바치고 절을 하는 ‘전안례’(奠雁禮)라는 의식이 있다. 지금은 산 기러기 대신에 나무로 깎아 만든 기러기로 대신 하는데, 이것을 ‘목안’(木雁)이라고 한다. 이러한 의식은 기러기가 부부 간의 금슬이 좋기 때문에 생긴 풍속이다. 기러기는 암수 중 하나가 먼저 죽으면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여생을 마친다고 할 정도로 절개가 강한 새다. 그래서 그런지 옛 선인들은 ‘외기러기’를 통해 자신의 서글픈 처지를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은 조선 중기 때의 문신인 윤선도의 <견회요(遣懷謠)>이다.

 

     산은 너무도 길게 이어져 있고 물은 멀리도 멀리 굽어져 있구나.

     부모님은 너무도 그리운데

     어디서 외기러기는 처량하게 울면서 가는가.

 

     부모님 그리워할 줄은 처음부터 알았지만

     임금 향한 마음은 하늘이 만들었으니

     정말로 임금을 잊는다면 그것이 불효가 아니겠는가? 

                             -윤선도, <견회요> 부분 

 

윤선도가 1616년(광해군 8년) 성균관 유생으로서 서른 살이었을 때, 광해군을 임금으로 올려놓은 공으로 최고의 권력자가 된 이이첨 등 당시 집권 세력의 죄상을 격렬하게 규탄하는 <병진소>(丙辰疏)를 올렸다. 윤선도의 선비다운 강직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로 말미암아 이이첨 일파의 모함을 받아 그는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윤선도는 <견회요(遣懷謠)> 5수와 <우후요(雨後謠)> 1수 등 시조 6수를 지었다. 인용된 위의 시조는 바로 유배 생활 속에서 부모님을 그리워하면서, 효도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자신의 서글프고 쓸쓸한 마음을 ‘외기러기’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는 것. 임금을 향한 충성이 부모님을 섬기는 효(孝)와 일치한다는 내용으로 그의 연군의 정에 대한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는 20년의 유배생활과 19년의 은둔생활을 한 선비로 조선시대 ‘유배문학’을 논할 때, <사미인곡>의 송강(松江) 정철(1536~1593)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보길도’를 배경으로 쓰여진 40수의 연시조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등 단가의 명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글의 마지막으로, ‘기러기’를 소재로 한 현대시 1편을 감상해 보기로 한다. 현대시에서 ‘기러기’는 슬픔을 보여주는 시들이 많다.

 

     羊이 큰 것을 美라 하지만 

     저는 새가 너무 많은 것을 슬픔이라 부르겠습니다 

 

     철원 들판을 건너는 기러기떼는 

     끝도 없이 밀려오는 잔물결 같고 

     그 물결 거슬러 떠가는 나룻배들 같습니다 

     바위 끝에 하염없이 앉아 있으면 

     삐걱삐걱, 낡은 노를 젓는 날개소리 들립니다 

     어찌 들어보면 퍼걱퍼걱, 무언가 

     헛것을 퍼내는 삽질소리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퍼내도 

     내 몸 속의 찬 강물 줄어들지 않습니다 

     흘려 보내도 흘려 보내도 다시 밀려오는 

     저 아스라한 새들은 

     작은 밥상에 놓인 너무 많은 젓가락들 같고 

     삐걱삐걱 노 젓는 날개소리는 

     한 접시 위에서 젓가락들이 맞부비는 소리 같습니다 

     그 서러운 젓가락들이 

     한쪽 모서리가 부서진 밥상을 끌고 

     오늘 저녁 어느 하늘을 지나고 있는지 

 

     새가 너무 많은 것을 슬픔이라 부르고 나니 

     새들은 자꾸 날아와 저문 하늘을 가득 채워버렸습니다 

     이제 노 젓는 소리 들리지 않습니다 

                                -나희덕, 「기러기떼」 전문

 

어린 시절, 필자도 푸른 하늘을 일렬로 날아가는 기러기떼의 모습을 자주 눈여겨 봤다. 그것도 서울 충무로의 도시공간에서.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근래엔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날아오지 않는 것인지, 하늘을 바라보는 일상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시인은 ‘철원 들판’을 건너오는 기러기떼를 보는 행운을 갖는다. 점점이 수많은 새들이 얼마나 열심히 날개짓을 하며 날아가는지. 그 풍경은 끝없이 밀려오는 잔잔한 ‘물결’ 같기도 하고,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나룻배’ 같기도 하다. 

시인은 이러한 ‘기러기’들에게서 악착같이 살아가려고 애쓰는 서민들의 안간힘을 본다. 열심히 일해도 밥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쳤다. 내년 3월이면 벌써 대통령 선거다. 선거 때마다, 잘 살게 해주겠다고 각 정당의 후보들은 외친다. 그 구호에 혹해서 우리들은 투표에 참여하고, 특정 정당이나 좋아하는 정치인을 지지한다. 하지만 기다려도 소망하는 세월은 서민에게 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기러기떼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헛것을 퍼내는 삽질소리”이다. “내 몸 속의 찬 강물”은 “아무리 퍼내도” 줄어들지 않는다. ‘강물’은 ‘슬픔’일 것이다. 

이처럼 기러기떼의 풍경은 서민들의 삶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이다. 기어이 시인은 더욱 직접적으로 속마음을 토해낸다. 기러기떼의 풍경이 “작은 밥상에 놓인 너무 많은 젓가락들 같고/ 삐걱삐걱 노 젓는 날개소리는/ 한 접시 위에서 젓가락들이 맞부비는 소리 같습니다” 어느새 기러기는 ‘서러운 젓가락’들이 된다. 우리들은 “오늘 저녁 어느 하늘을 지나고 있는지”, 시인의 마음은 서글프기만 하다. 

 

 

 

 



 

 

 

 

 

 

 

 

 

 

 ▲한상훈 문학평론가 

 

 

  【약력】

□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 경기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역임.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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