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작은 일에 화가 나는가

김단혜 수필 읽기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11/04 [08:04]

나는 왜 이렇게 작은 일에 화가 나는가

김단혜 수필 읽기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11/04 [08:04]

                               나는 왜 이렇게 작은 일에 화가 나는가

 

                                                                                                            김단혜 수필가


숯불에 올려진 고기가 지글지글 마른 불꽃을 피우며 익어가고 있다. 식당 주인은 구워진 고기를 앞 접시에 올려준다. 고기를 연신 뒤집으며 고기가 맛있으려면 이렇게 살을 비벼야 한다고 한다. 우리 부부가 살을 섞은 게 언제였나. 남편과 소통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살을 비비지 않은 시간이 길어서 인 지도 모른다. 요즘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생의 허기가 느껴진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프고 마음 한구석이 뻥 하고 구멍이 뚫린 것 같다.


지적 허영은 책 읽어주는 남자 전승환의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같은 책 한 권만 사도 채워지고 스트레스는 <리틀 포레스트>처럼 맛있는 영화 한 편이면 풀리지만 가슴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오는 굵직한 무언가가 채기처럼 늘 따라다닌다. 다정한 속삭임 누군가에게 아낌을 받는다는 느낌이 없어졌다. 괜찮다고 힘내라고 하는 작은 위로, 한 공기의 사랑이 절실하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의 말투. 표정 말의 높낮이조차 마음을 건드릴 때가 많아졌다. 자기 통제력이 약해져서일까. 몸의 변화가 느껴질 때 나이 드는 것을 실감한다면 마음의 변화가 느껴질 때 노인이 된 기분이다. 늙는다는 것은 감정선이 돼지비계처럼 두꺼워져 그 상태가 오래가는 것이라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감정이 뱃살처럼 두둑해짐을 느낀다. 뇌의 전두엽에서 불안한 생각과 정서를 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감정이 들쑥날쑥하다는 전문가의 글에 온몸이 오싹해지며 두렵고 무섭다.

 

어제 저녁의 일이다. 텃밭에서 상추와 고추를 뜯고 남편이 좋아하는 고수까지 푸른 채소를 한 바구니 씻었다. 이지그릴에 고기도 제대로 구웠다. 밥을 한 그릇 비우고 난 남편은 평소처럼 물 좀 달라고 했다. 그냥 물 좀 달라면 괜찮은데 시원한 물을 달라는 것이다. 사실 정수기에선 시원한 물이 늘 나오고 있어 시원한 거라고 말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아니 정수기가 바로 앞에 있는데 일어나서 누르기만 하면 되는 데 말이다. 집이 넓은 것도 아니고 식탁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정수기 앞인데 그걸 시키느냐고 한마디 하고 싶은 걸 참았다. 저녁식사 후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은 이번에는 어깨가 아프니 약을 달라는 것이다. 약을 갖다 주었다. 또 이번에도 시원한 물을 달라고 한다. 거기에서 버럭 화가 났다. 정말 아갈머리를 확….
텔레비전 드라마의 대사가 막 입에서 튀어 나오는 걸 틀어막았다.

 

‘딩동’
택배가 도착했다.

친구 모임에서 난 요즘 이렇게 물 달라는 소리에 버럭 화가 난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친구는 남편이 소변보고 물을 내리지 않아서 미치겠다고 한다.
택배상자를 여니 장밋빛 상자에 미니 바구니와 함께 사탕이며, 젤리, 초콜릿이 수북이 종류별로 낱개 포장 되어 있다. ‘정수기 옆에 두고 남편이 물 달라고 할 때마다 하나씩 먹어.’ 라는 메모가 들어있다. 우리가 이야기할 때 옆에서 조용히 미소 짓던 졸혼 1주년이 된 친구다.

 

 

 

 

    ▲ 김단혜 수필가

 

 
 □ <한국작가> 2010년 수필등단 
 □ 야탑문학회 회장
 □ 성남문학상 수상 (2018년)
 □ 시집<괜찮아요, 당신> 책 리뷰집<들여다본다는 것에 대하여> 
 □ 수필집<빨간 사과를 베끼다> 
     vip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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