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의 ‘새’ 이미지 탐색 (2)

까치 ⓶ ,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11/02 [20:58]

문학공간의 ‘새’ 이미지 탐색 (2)

까치 ⓶ ,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11/02 [20:58]

  ▲사진=여숙자.                                                                                             © 포스트24

 

                                      문학공간의 ‘새’ 이미지 탐색 (2)

                                                                  -까치 ⓶

 

                                                                                           한 상 훈 (문학평론가)

 

까치 2편에서는 몇 편의 소설과 수필 1편을 감상해 보기로 한다. 1950년대 전후세대의 작가인 이범선(1920~1981)의 단편 「태자 까치」. 우선, 까치의 이름에 ‘태자’가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까치’의 집안은 왕족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 글은 동화다운 요소는 있지만, 동화는 아니다. 제목의 ‘태자’는 다름 아니라, ‘고궁’에 있는 나무의 둥지에서 까치가 떨어져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소설의 기본적 서사는 나무의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까치를 가지고 와서 집에서 키운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아주 식구들에게 완전히 길이 들어버린 까치는 식사 때면 자기도 식탁에 한 자리 끼어드는 것이었다.” 

 

도시의 아이들은 까치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고민한다. 고궁의 아저씨한테 물었더니, 까치가 ‘베짱이’를 잘 먹는다 해서 신나게 베짱이를 잡으러 다니다가, 나중에는 개구리를 잡아 챙겨 주기도 한다. 화자인 ‘나’의 아이들은 ‘까치’의 먹거리에 유난히 관심을 갖는다. “까치가 얼만치 커서 방안을 날아다니게 되었을 무렵부터는 베짱이나 개구리 대신 날고기와 생선, 두부 등을 먹여 키우고 있었다.” 까치는 실제로 잡식성이라 개구리나 곤충류는 물론, 작은 새의 알과 새끼, 곡물류나 나무열매, 나무의 해충 등 아무 것이나 잘 먹는 편이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먹는 음식들을 주기도 하면서, 까치를 가족의 일원으로 완전히 편입시킨다. 

집에서 키운 새끼까치의 몸집이 거의 어미까치 만큼 컸다. 깍깍하고 때때로 소리도 질렀다. “방바닥을 그 독특한 걸음걸이로 깡충깡충 뛰다가는 후르르 날아올라 마루로 나간다. 유리에 부딪치고 털썩 바닥에 떨어지곤 했다.” 걷지도 못했던 까치는 이제 나무에서 떨어진 상처도 깨끗이 다 낫고, 날기도 한다. 무척 커진 ‘까치’를 보고 화자의 가족들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까치와 같이 생활하는 우리들은 즐겁고 재미있지만, 까치의 행복을 위해서는 본래 살았던 자리로 보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결국, 마음 아프지만, 까치를 가져온 고궁으로 도로 돌려보낸다. 당연히, 아이들은 못내 아쉬워한다. 하지만 까치들이 모여 있는 그곳이 까치를 위해서 잘한 결정이라며 아이들은 어른스러운 면을 보인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다음 날 새벽, 장독대 항아리 위에 그 까치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나’와 아이들은 반가워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소설의 서사가 단조로운 감이 있지만, 아이들과 까치의 자연스러운 친화 과정을 통해 따뜻한 인간미가 바탕에 흐르고 있으며, 자연을 사랑하는 작가의 온기가 작품 속에 잘 스며 있다.

 

‘까치’를 소재로 한 역작 중의 하나인 김동리(1913~1995)의 단편 「까치소리」로 들어가 보자. 이 소설은 이범선의 「태자 까치」에 나오는 ‘까치’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이다. 까치소리에 얽힌 속신과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운명적 삶의 모습을 비극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까치소리」는 작가의 「무녀도」나 「등신불」처럼 액자 형태로 되어 있다. 겉 이야기의 화자인 ‘나’는 서점에 들렀다가 ‘나의 생명을 물려다오’란 책이 눈에 띄어, 단숨에 그 책을 읽어버린다. 

속 이야기의 주인공 봉수가 사는 마을의 분위기는 어딘지 음산하다. 그 이유는 회나무에서 수시로 까치들이 울음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까치의 울음소리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들려온 소리에, 그저 그러려니 하고 무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한 까치의 울음소리가 봉수네에겐 특별한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까치가 울 때마다 기침을 터뜨리는 어머니는 아주 흑흑하며 몇 번이나 까무러치다시피 하다 겨우 숨을 들이키면 으레 봉수야 하고, 나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그것도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죽여다오’를 붙였다.” 

 

봉수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머니에 대해 ‘연민’을 가졌으나, 점차 어머니의 말대로 그녀에게 ‘살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목에 걸린 가래를 떼지 못하여 쿨룩 쿨룩 쿨룩을 수없이 거듭하다 아주 까무러치다시피 될 때마다 나는 그녀의 꺼풀뿐인 듯한 목을 눌러주고 싶은 충동에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 김동리는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를 치밀하게 그려나간다. 즉 인간의 심층에 깃들어있는 원초적 정서를 ‘까치’ 이미지를 통해 실감 나게 펼쳐나가고 있는 것. 

어느 날, 봉수에게 전쟁터에 나가라는 영장이 나온다. 적과 살벌하게 대치 하고 있는 전선에 나간 봉수는, 고향 마을에 남아서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머니보다도 사랑하는 연인 정순 때문에, 전쟁터에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기 손을 몰래 자해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후송 나온 봉수는, 전선에 남아 있는 전우들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정순이를 만나려는 간절한 마음을 지니고 마을로 돌아온다. 

하지만 상상외의 사건이 발생. 친구에게 시집간 그녀에게 심한 배반감을 느낀다. 봉수가 영장을 받아 전쟁터에 간 사이에, 친구 상호는 정순에게 다가가, 봉수가 전선에서 죽었다며, 그녀를 꼬드겨서 결혼한 것이다. 분노한 봉수는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 헤맨 끝에 상호를 붙잡아, 당신의 아내가 된 정순이를 한 번이라도 만나야겠다고 위협한다. 

친구의 집에서 그녀를 극적으로 만난 후, 함께 이 마을을 떠나기로 은밀히 약속 했지만, 그녀 대신 친구의 동생 영숙이가 약속 장소에 나온다. 그는 과거에 정순이와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던 보리밭으로 영숙이를 안고 들어간다. 

“이때 까치가 울었던 것이다. 까작 까작 까작 까작 하는, 어머니가 가장 모진 기침을 터뜨리게 마련인 그 저녁 까치 소리였던 것이다.” 

석양 무렵 보리밭에 누워,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포옹하는 듯한 두 남녀의 풍경은 까치의 울음소리와 동시에 섬뜩한 살해 현장으로 바뀐다. 남녀가 누워서 바싹 껴안은 상태에서, 어머니에 대한 살해 충동을 느꼈던 까치의 울음소리와 동시에, 봉수의 거친 손이 그녀의 가늘고 흰 목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저녁 까치가 울면 초상이 난다"는 그 마을의 속신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 것이다. 

김동리의 이 소설은 ‘까치 1편’의 이성복이나 함민복의 시처럼 ‘까치’의 불길하고 암울한 이미지가 돋보인다. 까치는 우리 민족에게 사랑받는 길조의 새로 반가움과 밝음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몇 편의 텍스트에서 보듯이 이처럼 어두운 죽음의 이미지로도 우리 문학에서 종종 발견하게 된다.

 

신경숙(1960~)의 장편 「풍금이 있던 자리」의 마지막 부분엔, 어미까치의 새끼들에 대한 사랑의 장면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 글을 당신께, 이미 거기 계시는 당신께 부칠 필욘 이제 없겠지요. 그래도...까치, 까치 얘기는 쓰렵니다. 이 마을에 온 첫날 그렇게 부지런히 둥지를 틀던 까치가 새끼 세 마리를 낳았더군요. 옥수수 씨를 심을 구덩이를 파느라고 산밭에 다녀오다가 봤어요. 먼발치라 자세히는 못 봤지만, 그 중 어느 새끼도 눈먼 새는 없는 듯했어요. 세 마리 모두 다 어미가 먹이를 물어오니까 서로 밀치며 소란스럽게 한껏 입을 벌리는데, 입속이 온통 빨갛...새빨갔어요. 그 새끼 까치들이 날갯짓을 할 무렵이면 이곳도, 여기 이 고장에도 초여름, 여름...이겠지요.” ‘불륜’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그 소재가 지닌 불온한 구석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오히려 신경숙의 독특한 문체에 힘입어 시종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화자인 ‘나’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냈던 어떤 기억을 떠올리며, 유부남과의 사랑으로 인한 내면적 방황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고향마을의 까치들이 처음에는 나무에 둥지를 만들더니, 어느덧 어미까치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행복한 풍경을 부러운 심정으로 독자들에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사랑하는 ‘당신’에게 왜 이 까치 가족의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을까. 내가 본 까치들의 풍경은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며,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 ‘당신’의 가족에게 불행을 안겨주고 싶지 않은 ‘나’의 내면세계를 말하고 싶은 것. 그런 점에서, 암수의 까치가 둥지를 만들고, 어미가 새끼까치들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은 바로 사랑하던 남자를 포기해야하는 ‘나’의 윤리적 판단과 긴밀하게 조응을 이루고 있다. 이 소설에서 까치 이미지는 당연히 따뜻하고 정겨운 가족의 사랑을 함축하고 있다.

 

이번엔, 월북작가 이태준(1904~?)의 수필 「까치」를 검토해 본다. 화자인 ‘나’는 새총을 갖고 참새를 잡으려다가 눈 속의 까치를 우연히 본 것이다. “까치라도 대가리만 맞으면 갈데없이 잡히리라” 화자는 까치의 머리를 조준했지만, 움직이는 통에 맞추기 힘들어 날갯죽지를 겨냥해 정확히 맞추었다. 까치는 두 다리와 한 날개로 제대로 날지 못해, 반은 뛰면서 도망갔다. 

‘나’는 새총을 들고 눈 덮인 밭고랑으로 까치를 쫓아갔다. 피를 흘리며 달아나던 까치는 지쳤는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새빨간 눈으로 ‘나’를 쏘아 보았다. “그 날카롭게 노리고 있는 주둥이, 그의 얼굴은 매섭기 악마 같았다.” ‘나’는 손으로 잡으려다가 오히려 독 오른 까치에게 물릴 것 같아, 발길로 차버린다. “그는 캑 하면서 두어 간밖에 나가떨어지더니 사지를 뒤틀며 피를 뱉으며 더 나를 쳐다볼 생각도 못하고 덮어 누르는 죽음과 싸우기에 애를 썼다.”

 

화자인 ‘나’의 행위가 매우 잔인하고 야만스럽게 펼쳐지고, 수필의 형식이지만, 소설의 서사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서 픽션적 요소가 가미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까치를 볼 때마다 그 생각이 난다.”로 시작하는 것으로 볼 때,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나간 것임에 틀림없고, 자기의 부끄러운 행위를 가감없이 그려나갔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이 수필은 결말에 이르러, 까치가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냉정히 바라보는 ‘나’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화자는 죽어가는 까치의 모습을 보며, 자기의 행위를 후회하게 되고, 고통을 줄여줄 생각으로 새의 뒤통수에 또 한 방을 놓는다. “왜 그를 죽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살이 먹고 싶어 죽인 것도 아니고, 그의 털이 갖고 싶어 죽인 것도 아니다. 왜 죽였는지 알 수 없었다.” 작가는 눈으로 덮인 밭고랑에 죽은 까치를 내던지고,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이 수필은 작가 이태준이 고딩 때 발표한 작품이다. 그의 모교인 휘문고의 교지에 실린 것으로, 필자가 휘문고교 재직 중에, 학교도서관에서 우연히 찾아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학생다운 치기가 엿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1930년대 대표적인 소설가로 꼽히는 이태준의 작가적 역량이 이미 고딩 시절부터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는 귀중한 텍스트이다. 특히 까치와 인간의 대치 상황과 심리전을 긴장감 있게 전개하고 있어, 요즘으로 보면, 수필보다는 스마트 소설의 양식으로 봐도 손색이 없겠다. 

 

 

 

 

  ▲한상훈 문학평론가


 【약력】

□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 경기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역임.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 이메일 : hansan53@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