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시간들을 지켜내는 방법

서연 김태실 수필가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10/31 [20:38]

낯선 시간들을 지켜내는 방법

서연 김태실 수필가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10/31 [20:38]

                                      낯선 시간들을 지켜내는 방법


                                                                                                        김태실  수필가

 

 “하버지, 꼬기들이 아~해. 와!”
 “이쁘지? 배고픈가?” 
다리를 중간쯤 건너고 있었다. 4살 정도로 보이는 손녀와 할아버지가 고개를 숙이고 다리 물밑에서 입을 벌리며 먹이를 구하는 잉어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큰 마스크가 내려와 아이의 턱에 걸쳐져 있다. 빙긋대며 지나치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할아버지의 손이었다. 다리에 철사로 난간이 쳐져 있기는 하지만, 어린아이의 덩치는 작다.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손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등 뒤에서  아이의 점퍼 아랫단을 잡고 계셨다. 놓치지 않으려고 꼭 잡은, 굵고 두툼하고 주름진 그 손이 봄바람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잘 뭉쳐져 있는 튼실한 꽃송이 같다.


햇살이 부서지는 4월의 점심때가 막 지난 오후, 원래 아이는 놀이방에서 친구들과 낮잠 잘 시간이다. 어르신은 공공체육시설에서 탁구를 치시고 점심식사 후, 회원들과 차를 마실 시간일 것이다.
혼란 속에서 두 달이 지났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만여 명이 되기까지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이제 하루 늘어나는 확진자 수가 두 자릿수가 되었다. 희망이 보이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세계적인 팬데믹은 누군가에게서 귀한 가족을 빼앗아 갔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일할 장소를 없애버렸다. 모임이 취소되었다. 공공시설이 폐쇄되었다. 결혼식이 연기되었다. 해외 신혼여행도 미정이다.


모두에게 지루하고 견디기 힘든 ‘낯선’ 시간들이 주어졌다.
지켜야 할 ‘사회적 거리’는 ‘홀로 놀이’를 탄생시켰다. 이웃과 함께 하다가 튀게 될 ‘침 한 방울’이 두려워 밥은 집에서, 홀로 걷기가 운동이다. 울타리 밖이 위험하다. 집의 작은 공간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재택근무를 하며 가족이 함께 하루를 보낸다.


모여 있는 식구의 세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중요한 하루 일과가 되었다. 찌개를 가운데 놓고 함께 퍼먹는 대신에 개인 접시를 사용한다. 드라마에서 자매가 한 양푼에 비빔밥을 비벼서 같이 떠먹는 친숙한 장면은 이제 없어질 것이다.
‘블로그’를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뭔가를 쓰고 내 글을 공유하는 일이, 이 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홀로 놀이’ 중에 하나가 될 줄은 몰랐다.
이 와중에 20일간 승강기 교체공사로 고층을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했다. 무릎 부상으로 아찔했다. 마스크를 쓰고 좁은 곳에서 예정된 공사를 하는 기사분들을 보니 감히,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코로나와 정면에서 싸우고 있는 분들까지 모두가 정해진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해내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도 바쁘다. 학교나 학원을 가지 않는 학생들 몇몇이 모여 경기를 한다. 축구를 하면서 희희거리는 목소리를 듣는 것은 좋다. 오늘은 세 명이다. 구성인원이 참신하다. 할아버지로 보이는 60대 남자분이 골키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매가 상대 선수다. 고학년 누나보다 저학년 남동생이 더 잘 찬다. 할아버지는 목장갑 낀 손으로 두 팔을 활짝 펼치고 공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역부족이다. 재빠른 남자아이는 골을 여러 번 성공시킨다. 공을 뺏기 위해 열심인 누나 또한 만만치 않다. 이번엔 누나가 공을 힘차게 찼다. 골인~.
탄천도 붐빈다. 아이와 자전거를 타는 엄마도 있고 롤러브레드를 타는 것을 지켜보는 할머니도 계신다. 농구 골대에서는 중학생 여러 명이 서로 경쟁하며 땀나게 공을 슛 시킨다.


학교 폐쇄로 이어진 전염병이 학원에서 시달리던 학생들에게 여유시간을 선사하는 ‘뜻밖의 선물’이 되었다. 반면에 다른 이들에게는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건강의 위협’으로 이어진다. 4인 가족이 돌 의자에 떡볶이와 컵라면을 놓고 맛나게 먹고 있다. 이 그림만 놓고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도시가 폐쇄되고 의료진들까지 감염되고, 사망자가 너무 많아 장례식도 제대로 못 치른다는 참담한 소식이 잠시 잊힌다.


이 시간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인가. 놓인 깻잎 반찬을 젓가락으로 서로 눌러주며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을 수는 있는 것인지. 전염병을 물리치고 맞이할 새로운 미래도 걱정스럽다. 그러나 가정과 사회가 안전하고 견고해야 하는 이유와 가족과 경험한 소중한 순간들을 점점이 늘려주었다. 그래서 불안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제자리에서 낯선 시간들을 지켜내고 있다.

 

 

 

 

      
       ▲ 서연 김태실 수필가
 

 

  [약력]

 □ 이메일: tayalee3@hanmail.net
 □ 독서치유사
 □ 수필집 <마음이 있어요>
 □ ‘강원문학신인상’ 수상, 수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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