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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18)

김윤이 시인, 긴 호흡의 므네모시네적 사랑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10/07 [08:05]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18)

김윤이 시인, 긴 호흡의 므네모시네적 사랑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10/07 [08:05]

             

  © 포스트2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18), 김윤이 시인 

 

                                         긴 호흡의 므네모시네적 사랑

                                             김윤이의 『다시 없을 말』 

    

인간이 한세상 살아가는 동안 어떤 형태든 간에 사랑은 현존재의 기반이 된다. 그녀는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두 권의 시집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독한 연애』)에서 죽은 사랑에 대한 상처와 고통의 극한을 말한다. 그러다가 시쓰기에서의 정화를 통해 제3시집 『다시 없을 말』에서는 므네모시네적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레테의 사랑, 즉 망각된 사랑은 애도에서 대상을 포기하거나 망각하기에 본래의 자신으로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기억’에 관한 므네모시네적 사랑은, 그녀가 사랑의 기억을 가슴에 꼭꼭 여며두고 필요할 때마다 회상하기에 상처가 오래가고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녀는 연인과의 사랑을 본인 스스로 사멸시켜 그 죗값으로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지내다가, 그 고통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어 다시 내면에 잠식시켜놓았기 때문이다. 이후 가라앉은 고통이 어떤 계기를 통해 의식 표면으로 올라와 자신의 전체를 흔들고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그 결과 그녀의 죽은 사랑은 자기 안에서 탈고를 끝내지 못하고 다시 내면에 가라앉는다. 이 말은 결국 더 사랑하는 자가 대상 부재의 사랑을 오래 끌어안고 기억하기 위해 사랑을 보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랑의 고통을 담은 『다시 없을 말』의 많은 시편은 설화 기법을 차용한 만연체 언술로 쓰였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타인의 사랑에 얹어 죽은 사랑에 대한 기억을 독자들에게 조곤조곤 말하고 있다. 보통 시에서 사랑이 주제일 때 시인이 산 경험을 시에 녹여내는 고백적 언술로 이루어지거나, 대상에 대한 원망, 애틋함을 녹여내는 특별한 대상적 언술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김윤이 시의 경우 사랑의 부재에 관한 시적 주제는 대상을 향한 감정이 아니다. 그녀는 말해서는 안 되는 사랑의 금서를 한평생 몸에 지닌 채, 자신의 기억과 타자들의 사랑에 대한 음각을 섞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김윤이는 블랙홀로 빠져버린 부재의 사랑에 대한 내용을 다양한 형식을 통해 한 권으로 시집으로 엮었다. 사투리와 고어로 짜깁기해서 시어를 만들고(「여자는 촉촉하니 살아 있다」, 「배꼽」, 「바다에 쓰다」, 「풍경에서 헤매다」) 하게체와 반말체, 하십시오체를 사용하여 어조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며 감칠맛 나게 언어를 조탁했다. 그녀의 시집에는 자신의 실존적 사랑과 타인의 사랑을 한 편, 한 편 교직으로 엮어 서정성과 선시풍, 아이러니 형식을 취해가며 일직선의 어두운 터널처럼 부재의 사랑에 집중했다.

 

      꽃이 낭자해 이른 봄 다저녁때야

      사윈 어둡고 유작집을 읽다 그와 헤어질 일 생각한다

      인적 그쳐 징하게 길목 어둔가 봐

      불과 이주 전 그와 거닐던 밤 수풀의 꽃떨기들

      꼿발 들고 잡으려 해도 떨어지는 소리들, 따가워

      그립다 보니 버룻처럼 펴던 책을 자리 삼아 때 없이 잔다

 

      먼 훗날 눈떠 보면 사이프러스 사이일 거야

      내 사랑의 종착은 구릉진 들판 지나

      방치된 묘지에 자란다는 수십 미터 사이프러스 숲일

      거야

      무모히 그를 잡겠단 눈물은 새끼 쳐 실뿌리쯤 심겼을까

      하, 나의 한숨은 소로(小路)에…

      독백이 된 사랑을 향해 이 밤도 흘러들 것 같아

 

      밤에 말이야 

      사이프러스는 부부처럼 홀로 남겨진 시신을 살핀대

      수십 세기 이녁을 저버리지 않는 사랑의 형상

      못난 사랑은 세상 변해도 변경에서 자리 지키는 그런

      거니까

      후에, 훨씬 후에 자취없이 말랐거나 싶어 눈 번쩍 떠도

      퍽은 그렁그렁 고인 슬픔의 묘지

 

      한 시도 그 없이는 못 살지만 

      맘속으론 울고 눈이고 코고 입술로는 웃을련다

      달궈진 나무못 박아 입관된 사랑을 티 내진 않을련다

      사이프러스식으로 그이 주변에만 서성이던 내 사랑에

      관하여

 

      언짢아는 말아 줘 꽃 따 안고 누운 훗날에도 나는, 오직 

      그를 사랑함으로 사랑하겠네

      사랑을 뒤좇다 땅끝까지 파 내려가고 또 파내려가고

      말겠네

      숲속에서 묻는다 그대도 여태

      자신을 훨씬 넘는 키높이 사랑을 하느냐고

                                -⸀사이프러스식 사랑」 전문

 

 

그녀의 사랑시는 대상에 대한 감정적 전달이 아니라, 타인의 사랑을 빌려오거나 위험한 이쪽에서 사랑이 탄생 (「물이 눈으로 변할 때 사랑의 위험한 이쪽에서 탄생한다」)하듯,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기억하는 므네모시네적 사랑이다. 그 시작으로 그녀는 타인의 유작집을 읽다가 글쓴이의 심리적 고통이 느껴져 자신의 죽은 사랑과의 단절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가 “꼿발 들고 잡으려 해도” 소리들이 떨어지고, 추억의 한때처럼 “펴던 책을 자리 삼아” 누워도 때 없이 자기만 한다. 그녀는 부재의 대상을 끊고자 하지만 사랑의 기억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계속 부재의 사랑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애도이다. 애도는 사랑에 대한 상실감을 끝까지 안고 가는 것인데, 그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별한 대상을 자신의 내면에 끌어안고 산다. 그것이 문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부재의 대상을 내면에 안고 살 경우 트라우마로 인해 부재의 대상에 대한 리비도 투여의 여지를 남긴다고 한다. 이러한 욕망은 유아 때부터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엄마’,‘맘마’,‘물’처럼 언어를 통해 제 욕구를 해결한다. 그녀 역시 상실한 대상에게 결핍의 사랑을 계속 말함으로써 제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먼 훗날 눈떠 보면 사이프러스 사이일 거야”/“수십 미터 사이프러스 숲일 거야” 이 시행처럼 그녀는 부재의 사랑을 ‘먼 훗날’ 까지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결국 그녀의 실존적 삶은 “멍한 얼굴로 나앉은 흐리멍덩한 색감”(「파랑을 건너다」)을 보는 것이며, 꿈에서 깨어나는 곳은 부재의 대상이 방치된 ‘사이프러스 숲’이다. 여기서 “사이프러스 숲”은 이별한 대상의 묘역을 지키는 그녀의 심리를 상징한다. 이때 그녀의 자기고백적 언술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더 나아가 수십 세기 지나도 “이녁을 저버리지 않고”, “세상 변해도 변경에서 자리 지킨”다고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이 뜻의 진위는 “뭐든지 사랑의 메시지다 큐피트다 믿어버린”(「우유 따르는 여자와 큐피트」) 자신의 마음에서 나타난다. 그녀는 “파장한 매장처럼 시간이 멎거나”/“심장이 오그라들어도”(「경」, 「사랑의 아랑후에스」) 부재의 대상을 사랑하는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랑을 뒤좇다 땅끝까지 파 내려간다고 한다. 이러한 그녀의 일직선적 사랑은 누군가가 단절된 사랑이 지닌 ‘망부석적 비극’을 알린다고 해도 걱정될 게 없다. 왜냐하면 그녀가 힘내서 땅 짚고 자신의 사랑을 계속 써나가는 일(「새 폴더」)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랑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기억을 환기해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죽은 사랑의 대상으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 

 

이처럼 그녀는 끝까지 죽은 사랑을 지키려 한다. 욕망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대상에게 바쳐지는 슬픔의 심로여서 애절하고 아프지만 이러한 슬픔이 그녀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원동력이며, 언어를 궁글려 시를 쓰게 하는 힘이다. 그러한 면에서 김윤이의 시는 독자들의 가슴에 한줄기 눈물을 흘리게 하는 승화효과를 주고,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구원한다. 그녀는 시쓰기 작업을 통해 한평생 자신의 시 속에서 몸 감추고 죽은 사랑을 기억할 것이다. 므네모시네적 사랑은 ‘one night stand’를 하는 일부 독자들을 반성케 하고, 또 다른 독자들에게 귀감을 주며, 무엇보다 자신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거울인 셈이다. 따라서 ‘명경’ (「경」)을 세우는 작업은 예술적, 정신분석적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김윤이 시인 시집

 

 【약력】

□ 서울 태생, 서울예술대학교 및 명지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 2007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 시집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독한 연대』,  『다시 없을 말』이 있다

□ freewill0408@hanmail.net.

 

 

 

 



 

 

 

 

 

 

 

 

  ▲권영옥 시인 문학평론가

 

 【약력】

□ 안동 태생, 한양대학교 대학원 및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 (문학박사) 

□ 2003년 『시경』 작품활동 시작, 2018 『문학과 사람』 평론 발표

□ 시집 『계란에 그린 삽화』,  『청빛 환상』,  『모르는 영역』, 비평서  『한국 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 전 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현재 인문학 연구소 <공간> 아카데미 소장

□ 두레문학상,  

dlagkw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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