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엄마로 산다는 것

부모의 유연성. 이정림 작가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10/04 [21:31]

사춘기 엄마로 산다는 것

부모의 유연성. 이정림 작가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10/04 [21:31]

    

  © 포스트24

 

 

 

                                    사춘기 엄마로 산다는 것

                     믿음이란 계단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 마틴 루서 킹 주니어-

 

                                                                                                           이정림 작가

                                                                             

                                      부모의 유연성


허균의 『한정록』(민족문화추진회)을 보면 상용은 노자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뜨려 하자 노자가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청했다.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혀가 있느냐?”
“네 있습니다.”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알겠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말을 마친 상용이 돌아누웠다.
노자의 유약겸하(柔弱謙下), 즉 부드러움과 낮춤의 철학이 여기서 나왔다.

사춘기 아이를 둔 십 대들의 부모도 유연성과 부드러움이 필요하다. 어제 한 잘못된 행동을 오늘도 어김없이 반복하는 아이를 보면서 한숨을 쉰다. 말로는 아이를 바꾸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명나라 때 육소형의 『취고당검소』(동문선)에서 “혀는 남지만, 이는 없어진다. 강한 것은 끝내 부드러움을 이기지 못한다. 문짝은 썩어도 지도리는 좀먹는 법이 없다. 편벽된 고집이 어찌 원융함을 당하겠는가?”
강한 것은 남을 부수지만 결국은 제가 먼저 깨지고 만다. 부드러움이라야 오래간다. 어떤 충격도 부드러움의 완충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강한 것을 더 강한 것으로 막으려 들면 결국 둘 다 상한다. 출입을 막아서는 문짝은 비바람에 쉬 썩는다. 하지만 문짝을 여닫는 축 역할을 하는 지도리는 오래될수록 반들반들 빛난다. 좀 먹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가?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나만 붙들고 고집을 부리기보다 이것저것 다 받아들여 자기화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큰아이, 작은아이의 일기장을 유치원 때부터 쓴 것을 모아 두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 성인이 되면 일기장을 추억의 타임캡슐에 넣어주기 위해 보관해주고 있다. 색다른 추억을 선물해 주는 아이들의 어렸을 적 일기장은 또 다른 선물이다. 
 

 

큰아이 일기장의 한페이지

 

2011518일 날씨 맑음이다.

오늘 나는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서 아침 자습을 하고 수업을 했다. 수업하고 집에 갔는데 외할머니가 계셨다. 그래서 좋았다.

그러고선 간식을 먹고 학원에 갔다 왔다. 숙제하고 있는데 아빠가 오셨다.

우리는 외할머니, 엄마, 아빠, , 동생 이렇게 저녁을 먹었다.

그러고 수학 문제를 풀었는데 다 맞아서 아빠한테 칭찬을 들었다.

기분이 왠지 으쓱했다. 아빠는 수학을 잘하셨다. 나도 앞으로 수학을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할머니가 가셔서 인사를 드렸다. 위기탈출 넘버원을 보고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잤다. 난 오늘 깨달았다. 공부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랄 총량의 법칙에 대하여


다시 태어날 시간이다. 서두르자. 나만 아는 나, 남이 아는 나, 내가 모르는 내가, 남이 모르는 내가 있다. 아이가 누군지에 대하여 문득 궁금하지만 시간이 주는 영속성 앞에서 시간에 먹혀가는 것인지 사춘기가 시간을 먹는 것인지 누구나 시간을 먹는다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창비출판사, 18쪽)에는 운동권 출신으로 한때 교사로 일했고 우리 딸 또래의 아들을 키우고 있던 유 선생님은 저에게 혹시 ‘지랄 총량의 법칙’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당연히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유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지랄 총량의 법칙은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그 양을 다 쓰게 되어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도 했습니다. 사춘기에 호르몬이 어쩌고저쩌고하는 설명도 가능하겠지만, 그것 보나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 표현이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자연스럽게 부모가 되면서 육아를 하고 교육하게 된다.
나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출산하면서 부모가 됐지만 서툴기만 했다. 첫아이 때는 워킹맘이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친정엄마에게 의지했었다. 온통 초보 엄마였던 시절에는 아이를 등에 업는 것도 잘하지 못해서 엄마와 아빠가 도와주셨다. 다행히 포대기보다는 아기 띠가 있어서 나는 수월했다.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오로지 아이만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내 안의 분노도 치밀어 올랐다. 직장에 가면 아이에 대한 걱정 때문에 불안해 했고 집에 오면 직장에 대한 걱정 때문에 늘 좌불안석이었다.

 

김보성, 김향수, 안미선의 『엄마의 탄생』이란 책에서 워킹맘은 시시때때로 ‘아이도 제대로 못 키우면서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이 고생인가’라는 회의에 젖고 전업주부는 ‘돈도 못 벌면서 아이도 제대로 못 챙기니 이게 무슨 꼴인가’라고 자책한다. 고군분투해도 엄마 노릇은 불충분하기만 하다.….

꼭 영화 얘기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엄마는 ‘슈퍼맨’이다. 먹거리 불안에 맞서 ‘엄마표’ 간식으로 내 아이의 건강을 챙기고, 수년에 걸친 성장앨범을 준비해 아이의 초등학교 자기소개 시간에 꺼내놓는다. 아이가 영어유치원에 다니면 엄마 스스로 영어 공부도 마다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아이 요건의 기획·관리자로서 엄마의 역할은 끝이 없다고 말한다.


헬리콥터 맘, 잔디 깎기 맘…. 자식 옆에 붙어 다니는 엄마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2015년 6월 1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는 여고생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아들을 구하려는 엄마의 광기 어린 모정을 다뤄 화제가 됐다. 여고생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아들을 구하려는 엄마의 광기 어린 모정을 다뤄 화제가 됐다. 엄마 덕분에 진범인 아들은 혐의를 벗지만 다른 정신지체 청년이 죄를 뒤집어쓴다. 내 아들이 진범이라고 고백할 수도, 무고한 청년을 변호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엄마는 그 청년에게 울부짖는다. “넌 엄마 없니, 엄마 없어?”

딸이 재학 중이던 고등학교에서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엄마들을 봤다. 사춘기라는 감정보다는 공부가 먼저이고 우선시되는 수험생의 분위기 앞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말이다. 자아실현의 꿈을 키워온 ‘고학력 맘’들이 스스로 모성의 덫에 뛰어드는 모습은 언뜻 보면 의아하다. 저자들은 과거와 달리 요즘 여성들은 숱한 검토 끝에 결혼할지, 아이를 가질지 등의 인생 경로를 선택하는 데서 그 배경을 찾는다. 엄마가 되기로 신중하게 선택을 한 여성은 역설적으로 아이를 통해 끈질기게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고 얘기한다.

 

나 자신의 인생보다는 아이에게만 몰방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하기도 하다. 아이의 사춘기도 아이의 공부도 고스란히 받아내고 감내해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맹모삼천지교가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갖게 된다. 아이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자녀는 자녀대로 인생이 있고 엄마는 엄마대로의 인생이 있는데 가만히 두지를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자녀들은 알지 못한다. 사춘기 시절이 지나가고 나면 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자발적이라고 해서 엄마들의 신음을 놔둬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아이가 아파도, 잘 안 먹어도, 공부를 못해도 “다 엄마 탓”이라는 지적은 엄마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기 때문이다. 육아의 사회적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 보니 워킹맘이든 전업주부든 늘 아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함과 죄책감을 떠안고 산다. 해법이 쉽진 않다. 다만 저자들은 엄마들의 눈물과 한숨, 우울과 히스테리가 개인의 문제가 되지 않도록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제안한다고 한다.

 

 

  

    ▲이정림 작가

 

  [약력]

 □ 2016 [시현실] 등단
 □ 저서 : <부모의 사춘기 공부><보물지도18><초보엄마 육아필살기><열살엄마 육아수업> 4권 출간
 □ 이메일 : juri004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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