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확장하다경주빵처럼 구수한 이순(耳順)의 삶을 구운, 이인록 소설집 <16년>▶급변하는 비인간적 사회에 부딪치기보다는, 오래전부터 경험적으로 축적해 온 인간적 유대감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 기억을 현재화해 냉혹한 현실을 인간의 온기로 감싸 안는 이인록 소설가를 인터뷰했다.
Q : <16년> 소설집은 어떤 책인가요? A : 소설집 <16년>의 표제작인 단편 ‘16년’은 가족의 일원이 된 16살 고양이의 시선으로 그렸습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호흡을 유지하려 했고, 만남과 헤어짐을 숙명으로만 귀결시키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이별은 예비되고 있지만 영속성을 담고 싶었습니다.
Q : 소설 창작 활동은 어떻게 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A : 시간이 날 때마다 시립도서관을 찾고 <한국명단편 101선>을 매일 읽고 있습니다. 2016년 처음 문을 두드린 동리목월 문창대 소설반은 온전히 나를 담금질하는 공간입니다.
Q : 환갑이 넘어 등단하셨는데 소설가로 사는 제2인생에 대해 궁금합니다. A : 소설가로 사는 제2인생이란 제겐 과분합니다. 지난 40년간 달려온 생업의 현장에서 그랬듯이 지금도, 앞으로도 현역이기 때문입니다. 늦은 등단인 만큼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쓰는 것만이 생업과 소설가의 길을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전통적 인간 윤리에 기초한 기억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확대하면서, 또한 삶과 죽음, 산 자와 망자의 경계를 넘어서는 영역으로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최첨단의 시대에 전통적인 인간 윤리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이 작품을 구닥다리라고 폄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시대의 변화나 유행을 발 빠르게 좇아가는 천박한 예술 장르가 아니다.
소설은 느린 발걸음으로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절대적으로 지향하면서, 급속한 시대 변화에 내포된 비인간적인 문제점을 그 본질적 측면에서 날카롭게 비판하는 둔중한 장르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정과 자연과의 소중한 교감에 대한 기억을 절대화하고 그 기억을 현실 사회에 현실적 가능태로 현현하려는 이인록의 이번 소설집은 매우 유의미하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의 화려한 이미지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작품들에서는 결코 접할 수 없는, 진정 인간의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이번 소설집은 아프게 깨달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문흥술(평론가), 「이인록 작품론」 중에서
사랑인 듯 아닌 듯, 그래서 아픔처럼, 미련처럼 그리움으로 남은 청소년기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아련한 회억이 서정적인 필치로 펼쳐진다. 격렬하진 않으나 가슴 한편에 오롯이 상처로 남았던 사건들이 미완인 채로 끝나 버리는 결말도 이 각박한 세상살이 속에서 경상도 사나이의 깊은 속정을 느끼게 해 준다. 어차피 인생 자체가 어정대다 미완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던가. “금성산 너머 멀리 탑리역을 떠나가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워낭소리와 함께 환청인 양 들려왔다.”(「그해 여름」)라는 구절처럼 나에게는 친숙한 경상북도 일대의 지명들이 수시로 등장하여 아늑한 향수에 젖어들게 해 준다. ― 임헌영(평론가)
작가의 등단작인 「배웅」의 경우 현대와 과거, 토속이 어우러진 배경과 천륜을 넘는 참 우정, 신령재에서 맞는 혼령의 배웅 설정 등이 이채로웠고, 단편소설의 정형을 보듯 빈틈없는 구성과 깔끔한 문장도 돋보였다. 여러 작품마다 토속적인 서정성을 확장시키는 분위기가 곳곳에 배어 있는데, 「그해 여름」에서는 12살 소년과 집에서 키우는 한 식구 같은 황소와의 인간적 교감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표제작인 「16년」은 16살 고양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휴머니즘을 현대에 사는 보편적 일상과 함께 세밀한 묘사로 담담히 보여 주고 있다. 등단 3년을 맞으며 펴내는 이 소설집을 시작으로 부지런한 창작을 계속 이어 가길 바란다. ― 김지연(소설가)
경주 작가 이인록의 소설엔 그가 오래 받들고 지켜 온 삶의 전통과 유학의 향훈이 흐른다. 이 향훈은 학교에서거나 책을 통해서 배우고 익힐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향기가 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삶 속에 체화해 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인문의 향기며 인본의 향훈이다. 첫사랑의 아련한 그림자와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소년기의 우정을 그린 작품에서도 그가 오랜 삶 속에 중시하고 일상으로 실천하고 있는 유학의 법도가 흐른다. 「합장」과 「배웅」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여미게 된다. 그의 소설은 삶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르쳐 주는 동시에 그 향기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과일로 비유하면 그것을 놓아 둔 자리에 아주 오래 향기가 깃드는 소설이다. 이 향기를 많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 이순원(소설가)
▲이인록 소설가
[약력] □ 2017 신라문학대상 소설 당선, 작품활동 시작 □ 2020 문예진흥기금 수혜 □ 저서 : 『2019 신예작가』 공저 2020 <16년> 소설집 □ 현)계간 『동리목월』 편집위원 <저작권자 ⓒ 포스트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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