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낙비』 김화연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1/09/03 [00:49]

『소낙비』 김화연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1/09/03 [00:49]



                                    『소낙비』 김화연 시인을 만나다

 

▶낯선 도시의 다리위에서 서로 마음이 가는 쪽으로 우리는 서 있었다, 흩어지는 시선을 모아 시로 풀어낸 각도는 시가 만든 틈새이다. 우리는 김화연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시인이 만든 틈새만큼 숨을 쉬고 각자 고독해진다. 시를 쓴다는 의식없이 소낙비를 맞는 시인의 모습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는 그리 거창한게 아니라 그저 기다려 주는 것이라고, 진심을 담아 오롯이 사랑을 전해준다. 김화연 시인의 전자시집 『소낙비』가 세상모두에게 따뜻한 시집이 되기를 바란다. 

 

Q : 『소낙비』 전자 시집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세요

A : 2015년 계간 시현실로 등단, 2018년 ‘내일도 나하고 놀래’ 첫 번째 시집을 내고 디지북스에서 작은 시집으로 시10편과 산문1편으로 낸 두 번째 시집입니다. 열편의 시중에 여섯 편이 물방울에 대한 사유와 이미지이고 상상력이다. 소낙비라는 전자시집은  둥글고 모나지 않는, 친숙하게 다가오는 물방울이 소재다. 촉촉함을 좋아하는 내게 한 방울의 물방울 속에는 우주와 세상의 이치가 담겨있고, 시를 쓸 수 있는 씨앗으로 보였다. 

비가 줄기차게 내리면 농사를 짓는 할머니가 하루 편하게 쉬는 날. 구부린 허리를 펴는 할머니의 손길과 구수한 입담은 나를 상상의 나래로 데리고 갔다.

이번 소낙비 시상 전개에서는 은유보다는 직설이나 단순한 이미지 확장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겸허하고 진솔하게 쓰기위해서 어릴 적 사고의 확장과 모나지 않고 둥글다는 것의 사유를 주변의 풍경과 함께 시의 한 줄로 채웠다.

물방울은 낯선 땅에서도 손을 내밀며 화합으로 영글어갔다. 서로 붙으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 모나지 않게 흐르는 법을 가르쳐 준 물방울. 둥근 감자가 배고픈 여름을 채웠던 그 시절을 그리며 소낙비라는 글을 쓰지 않았나 싶다.       

   

Q : 김화연 시인의 시의 주소는 어디인가요?

A : 어릴 적 늦가을의 일이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은 엄마는 동네 연탄 가게를 놓아두고 연탄공장에서 연탄 한 트럭을 배달시켰다, 그날 아버지는 무척 화를 내시며 일 년에 한철 장사를 하는 동네 연탄 가게를 놓아두고 연탄 공장에서 시켰다고 당장 반품시키라고 큰소리를 치셨다. 다시 물릴 수 없는 어머니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식구들은 난감해 했다. 한참 뒤 아버지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누가 도와줄 것 같냐고, 가까이 있는 이웃이라고, 그 이웃을 돌보는 마음, 아랫녘을 내려다보는 마음을 가지며 살라고...  

 

나의 시의 주소는 어릴 적 살아 온 더불어 사는 삶이다. 이것은  절망을 넘어 밤의 저 켠을 환히 빛내주는 달빛처럼 나의 시 밑바탕에 깔려있다. 모든 시는 구체적인 대상을 전제로 하는데 가령 고향 순창군 복흥면을 가면 텃밭에 심어놓은 옥수수밭 옆 은행나무 두 그루에 올빼미가 울어서 뒷간을 가지 못하고 거름 속에 묻혀두었던, 어릴 적 경험했던 이야기처럼. 그리고 주관적 대상의 감정적 측면으로 기술하는 유형을 좋아한다. 이런 시를 감정시라고도 하는데 나의 내적 감정을 토로할 수 있다는 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창의적이고 낯선 의미를 고유명사나 부사나 동사에서 시적발상을 찾곤 한다. 끈으로 매달려 있는 생명줄 같은 하나의 낱말에 의거해 새로운 눈으로 보고자 한다. 즉 사고를  전환해서 어두운 면을 밝은 면으로 해석한다든지, 중심 이미지를 햇살 한 줌 불어넣어 나만의 상상력으로 키운다든지, 기존 의미를 버리고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것이 시라고 생각한다. 현대인의 막막함 삶속에서도 프랑스작가 미셸 뤼노의 ‘시인을 꿈꾸는 나무’에서 말한 “꿈을 간직할 줄 아는 것” 상상력을 꿈꾸는 것. 나는 시공간 제약이 없는 꿈에서 씨앗 하나 가져와  발화하여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나의 시의 주소는 시간이 갈수록 어떻게 변할지는 나 자신도 모르겠다. 시는 대중의 공유재산이 아니라 고독한 자의 사유재산이라는 옥타비오파스의 말이나 침묵 속에서 솟아난 시가 아니면 별 쓸모가 없다라고 말한 발레리처럼  상처 속에 잠들어 있는 소리를 찾아서 밀고 나갈 것이다 많이 체험하며 홀로 독백하면서 엄살이나 겉멋을 부리지 않고 통점(痛點)을 찾아가는 마음으로 쓸 것이다 내가 쓴 시가 한 줄이라도 타자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다면… 

 

▶ 가장 애정이 가는 시 1편과 산문을 소개해 주세요

 

          물방울 탑

 

     겨울은 물이 거꾸로 자란다

     물은 식물이나 흐름을 따라 자라지만

     지붕에서 제 키를 늘리기도 한다

     지붕에서 떨어지던 한낮의 물방울들

     밤이 되면 굳어

     냉기의 탑이 된다

 

     혼자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을 때

     추운 것들이 그 혹독함에라도 깃들 듯

     막다른 기원으로 버텨내는 

     눈물 한 방울 같은

     영하의 극점

     조금의 온기만 닿아도

     초승달 손끝의 글씨 한자에도

     녹아서 흘러내리고야 말 물방울 탑

     뼈대도 없는 염원이라는 것

     오죽하면 유리창밖 지붕 밑 추운 날씨의 

     끝에라도 붙어 보겠다고 할까

 

     바닥까지 닿지도 못하고

     공중에서 얼고 공중에서 녹아사라지는

     고드름을

     물방울들의 끝

     잠란(蠶卵)의 집이다

 

 

          치자꽃 미학 

 

호기심 하나, 체크 천 가방에 넣고 뜬구름 타고 나선다. 떠나는 발걸음은 뒤돌아보면서도 가볍다.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는 마음에는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한 두근거리는 새벽이 있다. 배를 타고 섬에 도착. 혼자만의 여행에 심심함을 메워줄 몇 권의 책과 마음 사전 한 권이 친구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섬.

야자수가 가로수인 섬.

 

보쉬에의 말을 따르면 인간이란 멈출 수 없는 시간을 여행으로 꽉 채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빈 곳을 채우려고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여행에는 무슨 의도가 몇 개쯤 있는데 미지의 세계를 가보는 호기심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다. 호기심이 짙은  발걸음을 데리고 안내자가 없는 걸음으로 가벼운 산책을 했다. 산책은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것이라는 사전적인 말보다도 나보다 먼저 걸었던 이 길을 두고 자연과 함께 하고 있다는 기분을 가진다. 걷고 또 걷고 회전목마처럼 빙빙 돌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그러다 해 질 무렵 잠시 쉬면서 즐길 수 있는 산책이란 자연과의 교감이라고 했던가. 그럴 때 작은 풀, 돌담길, 구름을 데리고 노는 하늘, 눈에 보이는 것이 새롭다. 이 섬에 와서 한 달 살기를 시작한 첫날 돌담과 돌담 사이에 피어있는 하얀 꽃이 눈에 들어왔다. 코의 점막을 타고 병적으로 냄새를 못 맡는 코에 달려드는 향기. 

진실로 향기에 눈을 뜨고 감게 하는 모스카토의 향.

뜨거운 햇살을 빛나는 오묘하고 도도한 입술 같은 꽃잎. 

식이 끝나고 걸어오는 하얀 신부의 여유로운 미소 ...

 

그리움의 순결로 피어있는 꽃,

 

스무 살의 제인이 신혼의 드레스를 입고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다.

신혼의 꽃물이 새겨진 이불을 덮고 꿈나라를 갈 거라는 상상도 잠시, 다닥다닥 붙은 막다른 골목집 앞에는 밤마다 술꾼들의 목젖 취하는 소리, 옆집 아저씨의 군기 어린 목소리, 그리고 새벽을 기다리는 시간에 붙어 있는 욕망과 아집과 자존심이 누렇게 물든 소리들로 인하여 육체와 정신의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때 우리의 애인은 한 권의 책 폭풍의 언덕, 데미안, 제인 에어. 푸른 벌판에 서 있을 때 책 속의 주인공들은 창백한 얼굴을 가려줄 복면의 여인이었다.

평생 앓아야 할 가슴앓이와 상실감을 닮은 제인. 

그 시절 내 마음은 제인을 닮았다. 

책의 온도로 내 앞에 피어있는 치자꽃. 하얀빛은 시간이 지나면 노랗게 빛을 잃고 떨어진다. 

나의 신혼도 구겨진 몇 줄의 페이지에 지문을 넣고 불필요한 수식어를 빼보면 한순간 지나가 버렸다. 

신혼이란 단어에 포장도 해보고 비단 보자기에 쌓아놓고 싶지만 절절한 소금기에 절어있다. 소금기 절인 물에도 곡식은 여물어지고 꽃들은 피어나고 잡초들도 나름대로 그 자리를 지켰다. 입을 열지 못한 내재해 있던 희망과 우울은 적당히 숨어 있다가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서 어느 한 시절 빛이 나는 시절이 있나보다. 여름의 더위와 장맛비를 견디면서도 제 향기 잃지 않는 꽃처럼 

잠시 피었다 지는 단순 명료한 맑은 꽃에 정신을 놓고 멍하니 서 있다.

 

사랑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말을 위로해주던 그 꽃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준 꽃. 

마당 없는 집에 핀 한그루 치자꽃나무.

해마다 피는 꽃물에 작은 디딤돌을 놓으면서 걸어왔던 게 아니었던가. 제 자리 잃지 않고  말라비틀어져도 본연의 색을 유지하는 꽃을 들고 잔 여운을 들이킨다. 

아직은 여름의 햇살과 장맛비, 그리고 지지부진한 바람이 꽃잎에 잔잔하게 붙어 있다. 푸른 이파리를 쳐다보면서 땅위에 뒹구는  저 노란 치자꽃을 보면서

여름은 가고. 뜨겁던 시절이 내려앉는다.

이제는 웃음보다 미소로. 

앞모습보다는 뒤태가 은은한 우리의 생(生)을 생각한다. 

 

삶은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일

 

산책이란 내가 잊어버렸던 일을 새김질하며 찾게 하고 발견하게 하는 일이 아닐까? 뜨거운 한 여름 햇살을 좋아하는 꽃을 보면서.

너와 나 할 것 없이 짧고 긴 시간에 구애 없이.

장소가 어디여도 좋으니.

한번쯤 제 향을 낼 수 있는 치자꽃처럼. 

 

 

 

 

  ▲ 김화연 시인.                                      © 포스트24

 

 

 

 

 

 

 

 

 

 

 

 

 

 

 

 

 

 

 

약력

 □ 전북 순창출생

 □ 2015년 시현실로 등단

 □ 시집 『내일도나하고놀래』. 전자시집『소낙비』

 □ 현재 단국대 시낭송과시창작 외래교수

 

 

 【편집=이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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