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축제를 즐길 자격
조재은 수필가, 수필읽기 (8)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9/20 [11:24]
구월의 축제를 즐길 자격
조재은 수필가
초록이 숲속에서 떠날 즈음 사과 익는 향기가 난다. 미국 중부 사과 농장 규모는 과수원 입구에서 사과나무 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안내소에는 그 기간 과수원에서 딸 수 있는 사과 종류를 20가지 진열 해 놓아 맛을 직접 볼 수 있다. 진열대는 사과 색은 무엇인지 찾아보라는 동그라미를 그린 팔레트 같다. 빨강 자주 노랑 파랑…. 사과는 빨강 색이라는 고정 관념이 무안하다. 크기도 어른 주먹만 한 것에서 굵은 포도알 만한 것 까지 다양하다. 과수원 주인은 사과 따는 시기를 8월부터 10월까지 구분하여 프린트를 해 놓았다. 사과를 향한 정성이 보인다.
<그림, 르노아르 >
사과 이름이다. 금빛가을, 빨간자유, 황제, 축제, 다윗 왕, 휴일, 행운…. 백여 개가 넘는 이름들이 사과 맛만큼 풍요롭다. 이름은 오래전부터 전해진 것과, 과수원에서 독특한 품종이 나오면 주인이 짓기도 했다 한다. ‘구월의 노래’ 이름이 좋아서 그 사과로 정하고 옆에 있는 ‘축제’도 끼워주기로 하고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이름에 매혹되고 사과 향기에 취해 과수원 마차를 타고 깊은 곳으로 간다. ‘구월의 노래’를 따서 한 입 깨문다. 신선한 사과즙이 입안으로 짜르르 흐른다. 사과 살은 조금 질기지만 단맛이 강하다. ‘축제’를 먹어본다. 우리나라 홍옥과 후지의 중간 맛이다. “바로 이 맛이야”가 절로 나온다. 늘어진 가지에 달린 것은 맛이 없다는 말에 될수록 위에 것을 따려고 발돋음 하고, 있는 대로 팔을 늘려 따보면 한쪽 면만 익고 반대쪽은 아직 덜 익었다. 땅에 버린다. 그 다음 가지 위에 아주 크고 탐스러운 사과가 보인다. 뛰어 딴다. 뒤 면에 벌레 먹은 자리가 검다. 다시 던진다. 시어서 버리고 벌레 먹어 버리고 안 익어서 버리고. 못되게 저지른 욕심의 잔재들을 본다. 흉하다. 내 맘은 저렇구나.~
한 나무 한 나무 더 좋은 사과를 찾다보니 보니 너무 멀리 들어 왔다. 일행과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훨씬 넘었다.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서둘러 가야 된다. 아직 사과 바구니에 서 너 개 더 담을 수 있는데 아쉬워 톨스토이 동화 에 나오는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땅 한 평을 더 차지하려고 조금 더, 더, 욕심을 부리다 무리해서 죽고 관이 들어갈 땅 한 평만 차지한 사람 생각이 났다. 입구를 향해 뛰어가며 맛에 상관없이 길에 있는 늘어진 가지의 사과라도 따서 담는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잠시 흥분했던 마음이 가라앉자 사과로 꽉 찬 바구니를 가만히 보다 고개를 돌린다.
수녀가 사과를 고른다. 가장 큰 것을 골랐다가 내려놓고 가장 둥근 것을 골랐다가 내려놓고 가장 붉은 것을 골랐다가 다시 내려놓고는 얼굴을 사과로 붉힌다 …
이생진의 시 ‘수녀’처럼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땅에 버린 사과가 눈에 밟힌다. 한 바구니 맘껏 따서 담으라는 과수원 농부의 햇볕에 그을린 선한 얼굴, 검게 그을린 손, 사과나무 돌보려고 수없이 돌아 본 걸음. 그 노력과 정성을 아무 생각 없이 땅에 버린 천한 욕심이 부끄럽다. 9월의 축제를 즐길 자격을 잃었다.
▲ 조재은 수필가
[약력]
□ 이메일: cj7752@hanmail.net
□ 전) 『현대수필』 주간, 편집장, 『월간문학』 편집위원, 한국펜클럽 이사 현) 『현대수필』자문위원 『에세이포레』 편집위원 □ 작품집 <시선과 울림>200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 <하늘이 넒은 곳> <삶, 지금은 상영 중> <에세이 모노드>
□ 구름카페문학상', '일신수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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