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소리를 듣다

천자수필 읽기, 김후곤 소설가 (7)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09/14 [23:34]

귀뚜라미 소리를 듣다

천자수필 읽기, 김후곤 소설가 (7)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9/14 [23:34]

                                                 

                                                귀뚜라미 소리를 듣다

 

                                                                                                    김 후 곤 소설가

 

텃밭에서 올려다보는 봉우리 사이 여명의 기운은 저 너머에서 밀려드는 햇살로 슬며시 자취를 감춘다.
언뜻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소리와 함께 서늘한 바람이 슬쩍 내 몸을 건드리며 휘돌아나간다. 나는 작은 진저리로 몸을 추스린다. 일순 몸은 가벼워지고 머리는 상쾌해진다. 소리와 바람이 나를 일깨운다.


‘벌써? 아니, 이제 끝나는가?’

장마는 길었다.
텃밭의 채소들은 끊임없이 쏟아 붓는 물 폭탄으로, 폭염에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듯 물러져 흐물댔다. 뿌리조차 견뎌내지 못했다. 돋아나 힘차게 자라던 우듬지의 작은 줄기들은 무거운 빗물로 맥없이 툭툭 떨어져 도로의 바닥에 이리저리 뒹굴며 쓰레기가 되었다. 황금빛 얼굴로 해를 좇던 해바라기는 마귀의 장난인 듯 새카맣게 썩고 있었다.


태풍이 연달아 왔다.
텃밭으로 올라가는 길, 자동차는 다닐 수 없어라는 듯, 태풍이 할퀴고 지나가면서 도랑이 움푹했다. 걷기에도 신체의 균형을 잡으려면 조심해야 했다. 태풍이 일으킨 쓰나미로 해안가 주택과 시장은 쓰레기더미가 되었다. 울릉도, 방파제 테트라포트(약 40t의 무게)가 파도에 밀려 일주도로 터널 입구를 세 발로 버티고 있었다. 마치 터널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듯이.
장마, 태풍! 이것들은 코로나의 부분집합일 뿐이었다.


코로나는 길고 무겁고 음울하고 끈질기게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검은 장막으로 꼭꼭 덮고 있다. 누군가 말한다.
“사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이 아침, 먼 산은 아늑하고, 잦은 비에 산의 우거짐은 더욱 푸르다. 바람이 불어 숲은 우우우~ 쏴아아~ 소리에 너울대며 춤을 춘다. 빠르게 흐르는 구름 사이로 햇빛이 슬쩍슬쩍 얼굴을 내민다. 텃밭 너머 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는 힘차고 끊임없이 재잘댄다. 귀뚜라미 소리, 서늘한 바람을 이끄는 자연은 그대로이고 변함없다.
이를 바라보는 내 몸은 가볍고 마음은 상쾌해진다.

 

 

 

 

 

   ▲김후곤 소설가

 

  [약력]

 □ 현,청하문학중앙회 부회장

 □ 소설가. 수필가

 □ 수필집  『그게 사실은』 , 『숲을 거니는 사람 』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인기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