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 김밝은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1/07/26 [09:39]

『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 김밝은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1/07/26 [09:39]

 

【연명지 기자】▶우리가 모르는 문을 찾아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김밝은 시인은 팔이 긴 시인입니다. 우리라는 시절이 단번에 사라져가는 시대를 건너가면서 자작나무의 눈동자를 손으로 읽어봅니다. 화주 한잔 받지 못한 시인의 봄날이 어딘가에서 기지개를 켜고, 시인이 숨겨놓은 서성거리는 정서는 우리와 상관 없었던 문을 이어줍니다. 밝고 명랑한 시인의 이 시집이 세상에 툭, 숭어리로 떨어져 멀리 날아가기를 소망하며 뜨거운 여름날, 자작나무의 둘레를 생각합니다. 

 

Q : 『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 시집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세요       

A : 2017년 첫 시집 『술의 미학』 을 낸 뒤 3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는 가장 큰 약점일 수 있는 상상력이 부족하다보니 몸으로 부딪쳤던 풍경들이나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이 주로 시적 대상이 되곤 합니다. 이번 시집 속 작품의 대부분도 상상력보다는 몸으로 부딪쳐 나온 작품들이 많습니다. 

첫 번째 시집을 낼 때보다 많이 조심스러웠는데 ‘시인의 직무는 시집을 열심히 내는 것’이라는 스승님 말씀에 용기를 내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등단한 후에 해 주셨던 말씀이, 처음 제 시를 보신 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만큼 저의 시적 상상력도 부족했다는 것이겠죠. 그런 스승님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지만 가르침을 주시는 대로 따라가기 위해 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 했습니다. 

아마도 당근과 채찍으로 이끌어주신 스승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시를 쓰는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너는 시를 쓰면 안 되겠다’, 싹을 잘라버리지 않고 지켜봐 주신 스승님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시로 인해 새로운 세상을 만났으니까요. 

시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 외조의 힘에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고요.

어쩌면 저는 경험한 것들이 제 몸에 쌓이면 그것을 ‘시’라는 이름으로 끄집어내온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이번 시집 속 작품들도 그렇게 한 편 한 편 몸으로 써 낸 시들이라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Q : 김밝은 시인의 시적 정서는 무엇인가요?

A : 어렸을 적에 엄마와 떨어져 고향인 해남에서 할머니와 생활했습니다. 저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유별했지만, 서울 가신 오빠를 기다리는 동요 속 여동생처럼 가끔 서울에서 내려오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 그리움으로 편지를 쓰고 봄날 진달래를 만나고 가을날 노을 속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린 눈에 비친 모든 것들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연결되어서 저를 키웠던 것 같아요. 빨랫줄에 새 한 마리가 찾아와도 반가웠으니까요. 

지금은 반대로 먼, 남쪽이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지요. 이제는 찾아가기조차 힘든 곳이 되어서 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리움의 시간들이 쌓이고 발효되어 ‘시’라는 이름으로 제게 와 주는 것 같습니다.  

시집의 표4를 써주신 스승님께서도  ‘그리움과의 대화’라고 말씀해 주셨고요. 

 결국 괴테의 말처럼 ‘내가 시를 만든 것이 아니고 시가 나를 만든 것’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어느 시인의 말처럼 ‘끝내 시가 나를 이겨주기를’ 바랍니다.

 

▶ 김밝은시인의 대표시 2편을 소개해 주세요

    

                   애월涯月을 그리다 3

                              

          애월,

          감긴 눈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믿으며 나누었던

          따뜻한 말들이 등뼈 어디쯤 박혀 있다가

          울컥울컥 상처꽃으로 피어나는 시간인가 봐

 

          순비기꽃빛으로 저녁을 짓던

          바다는 알아챌 수 없는 표정으로 울음의 기호들을 풀어놓았어

 

          소금기 밴 얼굴의 벽시계가 안간힘으로 낡은 초침을 돌리고 

          사람들 목소리 하나 앉아있지 않은 횟집,

          수족관에는 생의 하루를 더 건넌 물고기의 까무룩 숨소리가

          달의 눈빛을 불러들이고 있어

 

          눈물로 온 생을 지새울 것만 같던 순간도 잊혀지고

          단 한 번뿐일 것 같았던 마음도 희미해져 가는 거라고

 

          어둠을 밀어내며, 달은 심장가까이에서

          바다의 기호들을 꺼내 가만가만

          물고기의 붉은 아가미 사이로 들여보내주는지…

 

          애월,

          죽어서야 정갈해지는 아픈 생生이 어디에나 있어

 

 

                     내일, 능소화가 피었다

                         

          삐거덕 거리는 마음 곁에서 삼백예순 닷새

          하고도 한 사흘쯤 더

 

          상처가 없는 생은 기쁨의 날개를 달 수 없을 거라 견디며 

          입 밖으로 보내지 못한 말들에게서 열꽃이 피어났다

 

          얼마나 많은 밤을 툭툭 잘라 허공으로 길을 내는지도 모른 채

 

          좋은 사람이잖아 너는

          그냥 입술을 깨물면 돼

          선명한 피도 잠시 붉을 뿐이야 

 

          상처가 없는 생은 기쁨의 무게를 모르는 법이라니까

          자꾸 손짓하는 사이,

          이어붙인 저녁의 발밑에서 겁먹은 기억들이 깜박거렸다

 

          남의 둥지에 알을 넣어 둔 뻐꾸기처럼

          시치미 떼듯 얼마간의 눈물마저 감춰줄까 

          갸웃거리는 구름 앞에서

 

          온몸으로 껴안았던 저녁들이 너덜너덜해지는 사이

          허공에 쏟아버린 표정들이 우지직거리는 사이

 

          내일, 가짜 같은 여름에도 활활

          불이 붙을 것이다

 

 

 -표사

김밝은 시인은 ‘그리움’과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움은 정서일 수도 있고 관념일 수도 있다. 이것들의 인격화 혹은 정령화(精靈化)가 매력적이다. 어디 그리움뿐이랴 기쁨이나 섭섭함, 즐거움이나 노여움, 혹은 세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규정이나 정의까지도 이미지로 엮어내고 있다. 

그의 탁월성은 언어를 다루는 능력에서 온다. 대상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고 집중하면서 일상에서 보지 못했던 낯선 언어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자기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들이 본인을 넘어 불특정한 수많은 타인에게까지 도달해 탐스런 꽃송이로 개화하고 있다.                                           

    - 문효치(시인, 미네르바 대표)

 

 

 

 

 〔약력〕

□ 1964년 해남 출생

□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재학 중

□ 2013년『미네르바』로 등단.

□ 시집『술의 미학』『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

□ 제3회 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

□ 현재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

 

【편집=이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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