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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의 여인, 송주성 소설 연재

송주성 역사 중편 소설_ 연재4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5/01/21 [22:29]

광릉의 여인, 송주성 소설 연재

송주성 역사 중편 소설_ 연재4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5/01/21 [22:29]

 ▲중앙공원의 집비둘기.                                                                             © 포스트24

 

                          광릉의 여인, 송주성 소설 연재

                                - 송주성 역사 중편 소설_ 연재4

 

세조는 역모의 책임을 물어 단종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강원도 영월의 섬과 다름없는 청령포로 유배시켰다. 단종의 소식을 들은 금성대군이 유배지 경상도 순흥에서 군사를 모아 복위를 모의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돼 처형되었다. 세조는 끝없이 일어나는 단종 복위 역모에 시달렸지만 모든 역모의 원인은 단종을 살려둔 탓이란 신하들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전이 세조의 마음을 읽고 말했다.

 -단종을 죽이지 않으면 전하는 하루도 편한 날을 보내지 못할 겁입니다. 또 다섯 왕이 나기도 전에 전하가 처음이자 마지막 왕이 될 것입니다. 왕권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도 죽이고 형제도 죽인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수두룩합니다. 어린 조카 하나 죽이는 것조차 망설이면 큰 뜻을 어찌 이루겠습니까? 왕권을 지키려면 전쟁도 불사하는 것이 나라의 일입니다.

 -부인, 어찌하자는 말입니까?

 -어찌 전하의 손에 피를 묻히겠습니까? 계유정난 공신들을 이용해야지요. 신하들이 노산군에게 사약을 내리라고 상소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조선은 전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나만의 나라는 아니지요. 중전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전하, 이 나라는 백성들의 나라입니다.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세조가 감탄하며 중전을 껴안고 번쩍 들어 방안을 한 바퀴 휘돌아 내려놓았다. 중전의 얼굴이 붉어지자 세조가 말했다.

 -나는 평생 중전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어찌 한 여인만 바라보고 살겠습니까? 좋은 여인이 있다면 후궁으로 맞이하셔야지요.

 세조는 좋은지 싫은지 허탈하게 웃으며 근정전으로 갔다. 이미 대신들의 상소가 빗발치듯 올라와 있었다. 하나 같이 역모의 주동자는 단종이니 사약을 내리라는 상소들이었다. 세조는 이미 형제들을 둘이나 죽이고 심정이 괴로웠으나 중전의 뜻에 따라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도록 어명을 내렸다. 

 단종은 사약이 청령포에 도착하기 전에 노산대에 올라 한양의 부인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팔십 미터 절벽 아래 동강으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강에 떠오른 시신을 불쌍히 여긴 부자가 죽음을 무릅쓰고 물에서 건져 야산에 매장했다. 단종의 죽음으로 역모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세조는 조카를 죽인 죄책감에 신경쇠약으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중전은 포천 운악사를 찾아가 부처님께 성심을 다하였지만, 세조의 피부병은 낫지 않고 부스럼이 딸기처럼 심해지자 더욱 불교에 심취에 궁궐 안에 불당을 짓고 불서를 간행하며 세조가 죄책감에서 벗어나도록 애를 썼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지 삼 년 만에 의경세자의 병세가 악화되자 정희왕후는 수십 명의 승려를 경회루로 불러 병마를 덜고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공작재를 올렸다. 신숙주와 한명회, 정인지 등 계유정난의 훈구대신들이 모두 참석해 불공을 드렸지만 의경세자는 병이 깊어 스물의 나이로 계유공난 일등공신 한확의 딸과 혼인해 낳은 월산대군과 자산군 두 아들을 두고 숨을 거뒀다. 중전의 슬픔은 백두산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한확의 딸과 세자를 결혼시킨 의도는 그의 딸 둘이 명나라 황제의 후궁이므로 세자가 왕위를 물려받아도 그 누구도 왕위를 위협하지 못할 외척의 힘으로 세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애석하게 의경세자는 절명했다.

 정희왕후는 큰아들의 죽음이 단종을 죽인 저주라 생각돼 수시로 한강 건너 봉은사와 포천의 운악사를 찾아 불공을 드렸다. 하지만 지극한 불심으로도 죄책감은 씻기 어려워 늘 불안하고 세조 또한 죗값을 치르느라 피부병이 심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괴로웠다. 불길한 일은 계속돼 궁궐에 폭우가 내리고 천둥치며 번개가 내리쳐 자산군을 보호하던 환관이 벼락에 맞아 새까맣게 타 죽고 주변의 환관과 궁녀들이 모두 기절하였으나 어린 자산군만 기절하지 않고 당당히 서 있었다. 정희왕후는 자산군의 씩씩함과 굳센 기상에 감탄하였다. 자산군이 벼락을 피해 살아난 것은 부처님의 보살핌이라 믿었다. 중전은 조카 단종을 죽이고 남편을 왕위에 올려놨으나 한명회의 권세가 하늘 높이 치솟고 조선의 선비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드는 것이 두려웠다. 계유정난을 성공시킨 그의 지략이 역으로 세조에게 미칠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희왕후는 비가 오는 날은 무섭고 두려워 수없이 하늘을 쳐다보다 경회루에서 세조가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보았다. 중전이 다가가자 세조가 옷 속에 손을 넣고 배를 굵다 급히 손을 뺐다. 중전이 세조 옆에 앉으며 물었다.

 -전하, 비 오는 날은 더욱 가렵습니까? 온양온천이라도 다녀오시지요?

 -피부병에는 온양온천 물이 특효라고 어의가 권하니 다녀와야겠습니다.

 -전하, 자산군의 혼처는 전하의 보위와 장차 세자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한명회의 딸과 혼인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한명회를 따르는 자들이 조선팔도에서 모여들고 그의 권세가 전하에 버금가고 있습니다.

 -글쎄올시다. 좋은 혼처는 많은데 내가 왕이 되어도 내 마음대로 혼처를 정하지 못하다니 서글픕니다. 정난을 일으킨 뜻은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는 정치를 하고자 하는 뜻이었으나 정난공신들의 권세는 이상정치를 넘어 부정부패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전하, 공신들의 공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전하를 왕으로 세웠듯 전하를 왕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자들입니다. 최고의 권세가 한명회와 사돈을 맺는 것이 왕실을 보호할 가장 안전한 장치입니다.

 -중전, 하지만 둘째 해양대군이 이미 한명회의 딸과 혼인을 하지 않았습니까?

 -아들과 사돈을 맺었다고 손자와 또 사돈을 맺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어찌 전하만 생각하십니까? 아들과 손자도 보호막이 필요할 겁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돌려받지 않으려면 한명회 딸과 자산군의 혼사는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명회 대감의 뜻은 어떠합니까?

 -전하, 이 나라 신하들은 왕실과 사돈이 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르지 않습니다.

 정희왕후는 둘째아들 해양대군에 이어 손자 자산군을 한명회의 딸과 다시 한번 결혼시켜 어찌 보면 한명회에게 아들과 손자를 장가보낸 꼴이 되었다. 백성들은 한명회의 권세가 세조를 능가한다고 떠들고 선비들은 한명회의 집 앞에 길게 줄을 섰다. 또한 의숙공주는 정인지의 아들과 결혼시켜 왕가와 공신 그리고 공신과 공신 집안끼리 혼사가 이루어져 사돈 관계로 거미줄처럼 이어졌다.

 세조의 온몸에 피부병이 번져 고름이 줄줄 흘러나왔다. 온양온천과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까지 가서 불공드리며 피부병의 완치를 꾀하였으나 병은 전혀 차도가 없었다. 정희왕후는 세조가 후궁을 들이지 않는 것은 피부병 때문이라 생각했다. 세조는 밤에도 중전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을 꺼려했다. 부스럼이 덕지덕지 붙어 딱지가 지고 또 헐어 진물이 흐르고 고름이 누렇게 곪아 누르면 터져 흘러나왔다. 정희왕후도 남편인 세조의 몸을 차마 눈 뜨고 보기 역겨웠다. 

 세조에게는 수양대군 시절에 박 씨 후궁이 있었다. 세조가 즉위하자 정3품 소용에 봉해져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곧 죽고 세조의 관심이 뜸해지자 환관과 사랑하다 발각돼 세조의 옛정으로 죽음을 면하고 나인으로 강등되었다. 박 씨는 나인이 돼 또다시 세조의 조카 구성군에게 연애편지를 보냈다가 구성군이 세조에게 고하여 또 한 번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였다. 세조는 박 씨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또다시 살려주려 하였으나 정희왕후의 반대로 대신들이 죽여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세조는 다음 날 박 씨를 참수하고 슬퍼하다가 왕이 국난을 당할 때 입는 붉은 융복에 붉은 갓을 쓰고 예를 갖췄다. 그 후로 세조는 다시는 후궁을 들이지 않았다.

 피부병은 세조에게 참기 어려운 처참한 고통이었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지 십삼 년이 되도록 어떤 어의도 세조의 피부병은 치료하지 못했다. 부스럼이 온몸에 금강산 일만이천봉 바위처럼 솟아올라 고통스러워할 때 함길도 호족이 난을 일으켰다. 함길도는 조선 왕실의 발상지로 많은 호족이 등용되었으나 세조는 반대로 함길도 인재 등용을 반대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자 길주의 호족 이시애가 북방호족을 선동하여 난을 일으켜 함길도를 차례로 점령하고 한양을 향해 진격했다. 세조는 구성군을 함길도, 강원도, 평안도, 황해도 4도병마도총사로 임명하고 삼만의 병사를 주어 남이장군을 대장으로 삼아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시애는 한양의 한명회, 신숙주 세력과 합세하여 세조를 제거할 계획이라고 헛소문을 퍼트렸다. 이시애의 작전에 말려든 세조는 한명회와 신숙주를 옥에 가두고 신문했다. 정희왕후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목숨을 구한 한명회와 신숙주는 역적의 누명에서 겨우 풀려났다. 이때 경복궁 문지기 출신 갑사 유자광이 세조에게 상소를 올렸다. 그는 함길도가 산악지형이기는 하나 적이나 관군 모두에게 같은 조건이므로 과감하게 전투를 치를 것을 주장하고 작은 자리라도 준다면 이시애의 목을 베 바치겠다고 하였다. 세조는 유자광을 불러 그의 계략을 묻고 종9품의 벼슬을 내려 구성군을 도와 책사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도록 하였다. 

 구성군은 북청전투에서 이시애를 물리치고 삼 개월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함길도의 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다. 동갑내기 남이장군은 북청전투에서 몸에 대여섯 개의 화살을 맞고도 용감하게 적을 물리친 공을 인정받아 구성군과 함께 일등공신에 책봉되었다. 

 

 ▲송주성 소설가                                                                                           © 포스트24

 

[송주성 소설가 ]

2014년 금샘문학상 대상 작품활동 시작

2018년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2019년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저서]

2018 장편소설 <직지 대모>

2021 장편소설 <국궁>

2023 장편소설 <후쿠시마 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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