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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48), 장수진 시인 (『순진한 삶』, 문학과지성사, 2024)

신에 대한 조화와 부조화 관계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5/01/15 [09:02]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48), 장수진 시인 (『순진한 삶』, 문학과지성사, 2024)

신에 대한 조화와 부조화 관계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5/01/15 [09:02]

   

  © 포스트2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48) 장수진 시인 (『순진한 삶』, 문학과지성사, 2024)

                   - 신에 대한 조화와 부조화 관계

 

21세기는 AI 인공지능 시대이다. 이 지능이 향후 전 세계 문화, 산업, 문학 전반을 지배하거나 재편할 수 있는 큰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일을 기계나 사람 손에 의지해 효율적으로 운용해 왔다면, 이제는 AI 인공지능이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현대인들이 고대 인류의 삶이나 문화를 미개하다고 오해하게 된다. 인류 문화의 변화는 주술->종교->과학 등으로 발전해 왔다. 사람들은 지금의 과학이 그 변화의 정점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인류 문화, 문학으로 본 신화‧원형의 변화는 고대 인류에서부터 현대 인류에 이르기까지 어느 민족에게든 유사하게 반복되어 왔다. 이때 유사성은 심상이나 이미지 안에서 신성을 드러낸다. 엘리아데는 <신화와 잔존과 위장>에서 “내러티브 narrative 사이에 전통적인 신호와 현재 내러티브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시인들이 신화‧원형에 관한 시쓰기를 할 때, 세상이 부조리하다거나 부정성을 느낀다면, 즉, 자신의 욕망이 그들로부터 제거된다면 시인들은 신화‧원형 이미지를 비극적 심상과 악마적 이미지로 반복해서 써나갈 것이다. 

 

세계의 모든 문학작품은 상징뿐만 아니라 신화, 꿈, 제례 의식화에서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원형은 신화, 설화나 민담의 구성 요소와 인물 유형에도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그 일례로 장수진의 『순진한 삶』에서의 신화‧원형 탐구는 시공간적인 면에서 물, 불, 대지의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이고, 내면적인 면에서는 꿈과 제례 의식화로 드러나는 사고 과정이다. 또한 그녀의 탐구는 사회 곳곳에 드러나는 부정성의 관념이 개인의 욕망과 연결되면서 악마적이고, 비극적 원형 심상으로 해갈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서로 교통 되는가, 살펴보는 게 이 시평의 목표이다. 많은 시인의 시에서 신화‧원형 이미지 유형은 속죄양 의식이나 상승, 희극의 원형 심상으로 나타난다. 그에 반해 장수진 시인의 『순진한 삶』에서의 신화‧원형 이미지는 희극적인 심상과 비극적이고, 악마적인 심상이 양립해서 나타난다. 요약하자면 장수진 시인의 시집에서 작품들은 자아와 세계가 조화로운 관계와 부조화의 관계가 동시에 나타나 불안하고, 불안정한 요소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 점이 이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이다. 

 

      긴 여행 끝에

      눈의 흰자마저

      검게 타들어간 그들은

      허겁지겁 기도를 올린 후

      목을 축이듯

      불을 삼켰다

 

      불에서는 천궁의 향이 났다

      캄캄한 달콤

 

      작은 불길과 함께

      혀가 치솟았다 사라진 자리에선

      달이 부풀었다

 

     ……<중략>……

 

     장식성을 배제한 단순한 합창으로

     회당을 올렸다

                                                                           -「밤의 기원」 일부분

 

이 작품은, 인간이 암흑과 혼돈 속에서 불이라는 이니시에이션의 은총을 통해 현재로부터 선의 깨달음을 얻는 시이다. 매개 원소가 ‘불’이다. 그 불은 인간이 기도한 후 불을 삼킴으로써 혀가 치솟는다. 지상의 불이 상승 개념을 타고 하늘에 머문다. 하늘의 불은 태양(남성성)을 뜻하고, 이 태양은 신의 힘을 지닌 존재이기에 달(여성성)의 배를 부풀게 한다. 고대 인류사회에서 남(태양)과 여(달)는 성교로 달(여성성)의 배를 부풀리게 하는 원형 이미지의 주체이다. 달은 탄생의 생명력을 지닌다. 이 부분을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인간은 태초 어둠에서 신의 구원을 통해 초월적 세계로 들어가고자 한다. 이러한 행위는 유한성의 인간이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하나의 수단이고 방법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현실에서 초월적 세계로의 삶은 형태 변화로의 이행을 의미하는데, 이점을 직시하면서 시인은 독자들에게 타인에 대한 기대나 물욕을 버리고 신의 깨달음으로 선성을 가꾸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인이 생각한 만큼 세계의 질서는 선성으로 가득차 있지 않고, 다중적이고 속물근성 적이어서 영속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시인은 부정적이고, 불합리한 세계 질서를 접하면서 자기중심적 사고로 돌아가기는 커녕 부정성으로 세계를 보기만 한다. 이를테면 어머니들의 과잉된 남아선호사상이나 파편화된 가족을 식구라고 하는 점, 그리고 지식인들이 혜안보다는 물욕에 눈이 어둡다는 점 등이다. 그뿐인가? 과잉되게 남성을 존대하는 노인들의 오인된 사랑은 또 어떤가. (「침대 선생님」) 이처럼 시인은 문제성 인간을 낳은 신의 타락상에 대해 신화적 이미지와 비극적 원형적 심상으로 신화‧원형 이미지 유형을 드러내고 있다. (「부탁하는 마음」, 「이런 질문 가능한가」, 「주인없는 모자」, 「솔리스트」, 「매」, 「카페 편집」 등)

 

    누군가 분수대에 동전을 던진다/당신은 창문을 닫는다//느릿하고 비릿한 먹구름/예측 불가능한              곡선으로 움직이는/거구의 고양이처럼/부드러운 냉소를 흘리는//구름 끝에 달린 십자가는/누가떨          군 열쇠고리인가//신이 있다면/부디 전능하여라/나는 이별을 기도한 적 없었으니/이별 신은 소설가        에게/헤어짐의 언어는 시인에게/서로를 향하던 포악과 발광은/이국의 무덤가에 꽃으로 놓아주거

    라/아무렇게나/나의 이별을 멧돼지에게 던져주어라//신이 가져간 것은/숲/흰 눈발/내게 돌아오던

    발자국// …<중략>…/아무도 모르게 십자가를 주워놓으리니//신은 임하지 말라/고귀한 숲에 취해

    잠들어라/율법을 바꾸어라/다투는 사람들에게/헤어짐과 평안을 베풀지 말라 

                                                                       -「부탁하는 마음」 일부분

 

이 시에서 십자가는 우주적 상징성을 띠거나 예수 희생에 의한 구원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 더욱이 대지의 따뜻한 훈기와 풍성한 알곡을 선사하는 신성한 신의 묵시적 이미지도 들어 있지 않다. 부정적인 학교 교육, 한국 사교육의 세속적 욕망, 생명에 대한 존엄성 부재 등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드러내는 악마적 이미지가 십자가의 상징이다. 시인은 이런 점을 바탕으로 시에서 검은 세계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면, “십자가가 거구의 고양이처럼 부드러운 냉소를 흘린다”거나 십자가를 “누가 떨군 열쇠고리” 에 비유하는 시행이 그것이다. 원형 이미지는 최악의 악 이미지 유형이다. 이러한 악의 세계는 죽음, 전쟁, 비탄, 고통, 가난 등 부정적 이미지로 표현되는 대상을 포괄하고 있는데, 이 비극적 원형 심상은 타락과 같은 지옥의 세계를 의미한다. 

 

신을 부정적 존재로 보는 시인의 심리 속에는 그 신이 자신에게 벌주고, 모든 것을 빼앗는 어두운 면이 자리잡고 있다. 왜냐하면 신은 “숲, 흰 눈발, 내게 돌아오던 발자국”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시인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은 신은 악의 이미지이다. 위와 같이 신은 인간계에 스며들어 인간계를 악으로 물들이고, 인간을 “우아한 개”로 만들며, 죽음으로 인간을 복종케 한다. (「솔리스트」) 또한 그 신은 인간을 식물계의 악마적 존재로 변하게 해서, “갖가지 꽃으로 처연히 피어나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얼굴의 저술」) 이러한 신의 이미지를 두고 시인은 가벼움의 미학이 아니라 무겁고 그림자 같은 둔중함의 미학이라고 한다. 요약하면, 이 시는 인간의 오인된 욕망-> 완전한 신의 비인간적, 비도덕적 행태-> 신의 부정성 고발 등 전형적인 악의 원형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신에 대한 부정성은 마침내 「글로리아」에서 악마적 이미지의 정점을 찍는다. 시인은 “얼굴 없는 자가 노래를 하네”,“목이 부러진 자도/마음이 부러진 자도 노래하지”라고 말한다. ‘신에 대한 영광’ 이 역설을 통해 신은 인간의 외상 고통과 내면 고통을 치유하거나 은혜를 주지 않고, 고통스러운 인간들을 방관하고 부재한다는 점에서 시인은 악마적 신을 고발하고 있다. 

 

 장수진 시인의 현대성은 종교에서 신이 인류를 대신해서 죄업을 진다는 보편적인 십자가의 상징을 뒤집는 데 있고, 또한 현대성은 세상에서 ‘신의 부재’를 말하면서 신이 가장 무기력한 존재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아니 “과연 하늘이로구나”,“나를 축복하는구나. 개새끼여”(「부탁하는 마음」) 여기서 자신을 ‘축복한다’라는 말은 신성과 통하지만, 이런 신의 영향력이 가장 무기력하다고 하는 것에서 시인은 신의 존재를 욕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시인은 최악의 신화적 원형에 대한 아이러니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장수진 시인의 『순진한 삶』을 탐사해보면, 그녀는 신화‧원형 이미지에서 상승 원형 심상을 통해 신을 추앙하다가, 사회공동체의 부조리와 불합리한 부분에 이르면 그들로부터 자신의 욕망이 배제되어 악마적 이미지로 신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시집은 어떤 부분에서 니체의 사상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신을 부정하기보다 신의 초월적 세계가 인간을 시간으로부터 도피하게 만들고, 인간을 나약하게 하며, 인간의 악행을 방관하게 한다는 점에서 같다. 이러한 점을 보면, 신이 인간을 위해 죄를 대속하는 동시에 땅의 풍성한 수확을 위해 덕을 내려주는 묵시적 이미지와는 대극점에 있는 악의 이미지이다. 이는 인간 삶의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신성의 질서와 그에 반하는 행위는 신화‧원형의 한 유형을 비판으로 재창조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장수진 시인의 시집                   © 포스트24



〖장수진 시인 약력〗

 

□201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사랑은 우르르 꿀꿀』, 『그러나 러브스토리』, 『순진한 삶』 

 

 

 

 ▲ 권영옥 문학박사      © 포스트24

 

〖권영옥 문학평론가, 시인〗

 

□아주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2003 『시경』작품활동 시작, 2018 『문학과사람』 평론 연재

□비평집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평론집 『비시간성에 의한 그림자 시학』

□시집『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모르는 영역』

□전)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문예비평지 『창』편집장, 《포스트24》시평 연재 중

□<두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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