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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의 여인, 송주성 소설 연재

송주성 역사 중편 소설_ 연재2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4/11/10 [23:09]

광릉의 여인, 송주성 소설 연재

송주성 역사 중편 소설_ 연재2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4/11/10 [23:09]

  © 포스트24

 

                               광릉의 여인, 송주성 소설 연재 

 

                                                                                     송주성 역사 중편소설_ 연재2

 

계곡의 소마다 투명한 물이 흘러넘쳐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에서 푸른 옥이 계곡으로 쏟아지는 듯했다. 계곡 물소리에 묻혀 사병들이 지르는 사냥몰이 함성이 들리지 않았다. 한여름의 백운계곡을 사병들에게 쫓기는 사슴들이 뛰어오르고 여우들이 나타났다 다시 숲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은 사냥감에는 관심 없고 부인에게 물을 뿌리며 장난치기 바빴다. 물에 젖은 낙랑대부인은 선녀보다 아름다운 미모를 뽐냈다. 수양대군이 부인의 미모에 푹 빠져 정신을 못 차릴 때 숲에서 백호 다섯 마리가 나와 유유히 계곡을 가로질러 갔다. 백호를 발견한 부인이 소리도 못 지르고 손가락질하자 수양대군이 백호를 발견하고 물속에서 뛰어나와 잽싸게 활을 들어 시위에 화살을 매기고 백호를 노려봤다. 무리를 이룬 백호 다섯 마리는 대호 암수가 한쌍이고 중간 정도 자란 백호 두 마리와 어린 백호 한 마리였다. 대호가 수양대군과 눈이 마주치자 걸음을 멈추고 수양대군과 부인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백호 무리가 선유담계곡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수양대군이 백호 무리에 화살을 겨누자 부인이 팔을 잡고 쏘지 말라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수양대군은 만류를 뿌리치고 화살 시위에서 손을 뗐다. 화살이 날아가 중간쯤 자란 백호의 등에 명중해 숲으로 도망치지 못하고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네 마리는 숲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쓰러진 백호를 수양대군이 어깨에 들쳐 메고 사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봐라! 백호를 잡았다.

 사병들이 달려와 수양대군과 부인을 엄호하며 백호를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낙랑대부인은 백호를 죽인 것이 마음에 걸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백호가 사라진 선유담계곡으로 사병들과 말을 달려갔으나 백호의 흔적은 없었다. 수양대군이 선유담계곡에서 야영을 결정해 사병들이 천막을 치고 사냥한 사슴과 여우, 백호 고기를 구웠다. 수양대군은 옷을 벗고 계곡에서 사병들과 알몸으로 기마전을 펼쳤다. 혼자 수십 명의 사병을 상대하여도 힘을 당하는 자가 없었다. 기마전에서 사병들을 무너트린 수양대군은 선유담 물속에서 승리의 함성을 지르고 나와 구수하게 익은 고기 살점을 쓱쓱 썰었다. 낙랑대부인이 수양대군의 화살통에 막걸리를 가득 따랐다. 사병들도 화살통에 막걸리를 따랐다. 

 수양대군이 사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사들은 잘 들어라. 우리는 하나의 가족이며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수양대군이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외쳤다.

 -자, 단숨에 마시자!

 -수양대군 만세! 

 사병들이 외치고 하나같이 화살통을 하늘이 높이 들고 막걸리를 마셨다. 화살통을 비운 수양대군이 부인에게 주고 막걸리 통을 번쩍 들어 넘치도록 막걸리를 따랐다.

 -부인도 마셔야지요.

 낙랑대부인은 거침없이 화살통의 막걸리를 마시고 트림을 “꺼억!” 하였다. 수양대군이 부인의 등을 두드리며 안주로 노릿하게 잘 익은 백호 갈비를 손으로 뜯어주었다.

 낙랑대부인은 다음 날 운악사 주지 스님을 만나 백호 얘기를 털어놓았다.

 -부인, 백호는 호랑이의 왕입니다. 백호가 수양대군 앞에 나타난 것은 왕이 나올 길조입니다.

 -다섯 마리나 되었습니다.

 -부인, 포천 운악산은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노는 명당입니다. 분명히 포천에서 다섯 왕이 나올 징조입니다.

 -스님, 정말로 포천에서 다섯 왕이 나온다는 말이 확실합니까?

 -백호는 조선 팔도에서 보기 어려운 영물입니다. 부처님이 부인에게 미륵불을 보여주신 겁니다.

 -하면, 다섯 왕은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그것은 부처님만 아실 겁니다. 부인은 다섯 왕을 위해 준비하셔야 합니다.

 낙랑대부인은 스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으나 그렇다고 스님의 말을 그냥 듣고 넘기기도 어려운 일이라 고민하다가 수양대군에게 운악사 주지 스님의 얘기를 들은 대로 전했다.

 -부인,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지금 조선은 건국의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아버지가 잘 다스려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습니다. 또 세자도 총명하여 잘 보필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앞날을 어찌 알겠습니까? 아버님이 왕이 되신 지 삼십여 년이 되어가고 연세도 오십이 다 되었습니다. 세자도 서른을 훌쩍 넘었습니다. 아버님은 소갈증과 눈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불미스러운 일에 대비해야 합니다.

 낙랑대부인의 예언대로 수양대군이 서른다섯이 되는 해에 세종이 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러자 세종의 뒤를 이어 세자 문종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세자로 책봉된 지 삼십여 년이 되었고 오 년 전부터 병마에 시달리는 아버지 세종을 대신에 실제적 왕의 권한을 행사하여 문종의 집권 후에도 세종 시대와 변함이 없었다. 문종은 학문이 깊고 세자로 정치 수업을 오랫동안 받아 학자들을 아끼고 여러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세종이 건강을 위해 취했던 왕실의 불교를 유생들의 반발로 배척하면서 문종은 병약하여 왕실의 위엄을 세우는 데 실패하고 형제들의 견제를 받았다. 세종은 여섯 명의 부인에게서 스물두 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중 둘째가 수양대군, 셋째가 안평대군이었다. 형제들의 위협에 문종은 즉위하면서 바로 아들 홍위를 세자로 책봉했다. 

 세종은 병약한 맏아들과 어린 손자를 무예에 능한 수양대군이 위협할 것을 두려워하여 원래 그의 이름 진양대군을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멸하자 신하가 왕을 토벌한 것에 반대하며 수양산에서 절개를 지키며 고사리만 뜯어먹다 굶어죽은 형제성인 백이숙제의 충성심을 본받도록 수양대군으로 개명하였다. 안평대군은 서예와 시문 그리고 그림에도 뛰어나 명필로 이름을 날리며 독서를 즐기고 김종서, 황인보와 친밀하고 세종의 북방 정벌로 두만강 회령에서 여진족을 물리친 굳센 기상과 진취적 정신을 가진 왕자였다.

 낙랑대부인은 어느 날 집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을 크게 부풀렸다. 하녀들이 밥을 하는 중에 가마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는 명랑한 소리를 수양대군에게 집 가마솥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났다고 말하였다.

 -어허, 우리 집에서 큰 잔치가 열릴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대감,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포천 운악사 주지 스님에게 넌지시 물어보고 왔습니다. 나라에 큰 슬픔이 닥칠 징조라 하였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스님이 속뜻을 숨기기는 하였으나 분명 우리 집에서 큰 호랑이가 나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감, 포천 백운계곡에서 백호 다섯 마리가 나타났을 때도 다섯 왕이 나올 징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집에서 왕이 다섯이나 나온단 말이오?

 -대감, 나는 스님의 표정을 보고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인의 야심이 너무 큰 거 아니오?

 -대감, 안평대군도 시서화를 핑계로 여러 대신과 친분을 쌓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대감만 당합니다.

 -안평대군이 김종서 집을 들락거린다는 소리는 우리 무사들에게 보고받아 나도 알고 있소. 부인이 독서를 많이 하여 영특한 것은 알고 있소만, 부인의 욕망이 너무 지나친 것 같소이다.

 -대감, 부부간에 무엇을 의논하지 못하겠습니까? 그것이 정난이라 할지라도 숨김이 없어야 합니다.

 -부인 뜻은 알겠으니 입조심 하시오.

 수양대군을 따르는 무사들을 중심으로 은밀히 소문이 퍼지면서 팔도에서 무술 꽤나 하는 무사들이 수양대군의 사병이 되겠다고 몰려들었다. 낙랑대부인은 집으로 찾아오는 무사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여 모두 수양대군의 사병으로 만들고 포천의 운악사를 자주 찾아 불공을 드리고 많은 시주를 하며 궁궐의 대소사를 불교에 의지하였다. 숭유억불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고 있는 조선에서 낙랑대부인의 불심이 남다른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홍천현감 시절 홍천에서 태어나 공작산 아래 수타사에 태를 묻은 인연이 컸다.

 시름시름 앓던 문종은 왕 즉위 이 년여 만에 명장 김종서와 영의정 황보인을 고신대신으로 지명하며 어린 세자가 왕이 되면 잘 보필해줄 것을 부탁하고 숨을 거뒀다. 열한 살의 나이로 단종이 왕이 되자 보필을 맡은 김종서와 안평대군에 맞서는 수양대군 사이에 왕위를 놓고 칼날이 번뜩이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런 때에 별안간 수양대군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권람이 한양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말렸지만, 수양대군은 명나라 사신과 시문을 겨루어 찬사를 받았던 신숙주를 사은사로 추천받았다. 낙랑대부인도 말리고 나섰으나 운악사에서 주지 스님을 만나고 온 다음에는 적극 찬성했다. 명나라 사신으로 가려는 깊은 뜻을 아는 사람은 수양대군 자신과 낙랑대부인 두 사람뿐이었다. 명나라에서 수양대군이 돌아오자 부인은 숨겼던 야심을 드러냈다. 서른 중반에 큰 뜻을 품은 부부는 밤이 깊은 줄 모르고 혁명을 모의했다. 

 

 ▲송주성 소설가.                                                                                 © 포스트24

 

 

[송주성 소설가 ]

2014년 금샘문학상 대상 작품활동 시작

2018년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2019년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저서]

2018 장편소설 <직지 대모>

2021 장편소설 <국궁>

2023 장편소설 <후쿠시마 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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