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47, 정우림 시인언어 코드에 대한 회의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 파란, 2024)
시를 쓰는 시인이라면 자기가 쓰는 시에 대해 한 번쯤은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쓰는 시가 정말 자본주의 현실 상황에 맞는 시일까, 소설과 수필 그 어디쯤 위치하지는 않을까? 그러면서 자신에게 수없이 확인하고 질문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이란 자의식과 자기 인식이 강한 존재이기 때문에 재차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독특한 사회 상황과 관련해서 자신이 사용한 언어 코드가 독자와 상호 교감을 갖지 못하거나 비껴 지나간다면, 시인의 반성적 의식은 전면화로 드러날 것이다.
정우림 시인 또한 여느 시인처럼 지금까지 쓴 언어 코드가 제대로 사용되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흔들리는 집」) 언어 코드란 언어를 다른 문학 장르로 변환하는 것이니, 시인에게서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정우림 시인이 전통시의 인습에서 벗어나고 싶고, 현대 자본주의 물상화와 전자 기술주의의 낙관론으로 인해 언어는 퇴보하거나 소멸하게 된다. 시인은 제대로된 반미학의 미학을 쓰기 위해 자기 반영적 태도를 취한다. 시에 대한 시, 시에 대한 시쓰기가 그것이다. 이를 얻기 위해 시인은 새로운 언어 코드를 찾아 길을 나선다. 이를테면 새가 되어 날거나, 인적 네트워크 속에서 타인의 언어를 보거나, 여행지에 담겨 있는 이야기나 설화를 제 언어형식으로 끌어오기도 한다.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따라서 노마드적 시인이 찾고 있는 코드는 자연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앞서 쓴 시를 대상으로 하는 시이다(「리플리 증후군」, 「이면지의 이면」)
복사할 종이를 꺼낸다 이미 기록된 종이는 다른 목소리로 말한다
암호 같고 모스부호 같고 해석이 어려울 때 가끔 독백보다 방백이 그리울 때 배우처럼 중얼거리고 싶을 때
행간에 사로잡힌 생각들을 뒤집어 본다 있다를 없다로 없다를 있다로 삐뚤어지고 흐려진 접점은 어디일까를 찾아서
빈 박스 안에서 뒹구는 자음과 모음들 종이 위에서 다시 태어나는 문장을 뒤적인다 글자 속에서 말라 가는 문장을 다시 꺼내 본다.
얼룩이 묻은 글씨들의 사귐을 날카로운 양면의 균열을 -「이면지의 이면」 부분
기술복제시대에 시인이 과거에 쓴 시를 복사하려고 종이를 꺼내 들자, 과거의 시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른 목소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시적 기법인 탈정전성에 대해 차이를 드러내는 미적 도전이다. 도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시인이 과거에 쓴 시적 기법에 관한 시를 이제 와서 읽으면 그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시는 “암호 같고 모르스 부호 같고 해석이 어렵”다. 그래서 “행간에 잡힌 생각들을 뒤집어” 본다. 그랬더니 시인이 ‘있다’를 ‘없다’로 ‘없다’를 ‘있다’로 읽고 있다. 이 반어법은 ‘뷔르거’가 말한 패러디나 패스티쉬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자기도취적 성격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적 기법이다. 해체와 파괴의 특징적 성격을 가진 시인의 다른 시는 시인에게 회의를 느끼게 하고 마음의 균열을 일으키게 한다.
그 반동으로 시인은 메타시적 서정시를 쓰고자 한다. 이 메타시는 후기 현대성의 특징인 전자, 영상매체의 탈문자화에서 회의를 느낀 시인이 원전 시 비평을 통해 새롭게 창조하는 시와 시쓰기 과정, 또는 시인을 대상으로 쓰는 시이다. (「손가락 선인장」 , 「이미지 유목민」 , 「리플리 증후군」 , 「소문의 자루」 , 「한밤의 내비게이션」 , 「이면지의 이면」, 「공원의 한 페이지를 읽는 동안」 등) 먼저, 「혀의 무덤」은, 시인이 앞서 쓴 다른 시에서 본질적 회의를 느껴, 원전 비평과 함께 부분적 시쓰기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시이다.
각 페이지마다 얼고 있다 성에와 냉기와 상형문자 무늬의 입구
……<중략> ……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도 저녁은 쉽게 잠들었다 오래 잠든 문장은 꿈에서 살얼음이 되고 여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접는 페이지 못을 박고 구멍을 뚫는다 비밀은 봉인되지 않는다
빈 페이지에서 뿌리가 무성하다 -「혀의 무덤」 부분
시인은 앞서 써놓은 자신의 시에서 메타 언어적 기능인 코드의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기술복제시대가 무제한적으로 양산한 시들 가운데서 자신이 쓴 시가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 시인 자신도 제 시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이런 시를 일러 시인은 시가 “페이지마다 얼고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성에와 냉기”의 문장에서는 그 누구도 온기를 느낄 수 없다. 더욱이 “상형문자 무늬” 시에서 시인 자신이 과거에 쓴 포스트모더니즘 시적 기법을 인식하기도 어렵다. 어려움의 비유적 표현을 시인은 “오래 잠든 문장”과 “꿈에서 살얼음”이 어는 문장이라고 한다. 더욱이 시인은 아무도 책 페이지를 열지 못하게 “못을 박고/ 구멍을 뚫는다”라고 썼다. 못을 박는데, 어떻게 뚫을 수 있는가, 비현실적인 이 말은 반어적 표현이다.
이러한 역설적 시쓰기 과정은 시인의 구체적 경험의 근원을 더 깊이 찾아가는 자기 회귀성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기 회귀성은 다양성과 탈전정성을 드러내는데, 기술, 영상 시대에는 이미지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자아가 도태되거나 소멸되고 있다. 전통시에서 시적 경험은 자아가 언어를 매개로 한 삶의 양식인데,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적 기법에서는 자아가 죽고 패러디와 풍자가 통속적인 언어를 무성하게 양산하고 있다. 이러한 언어에는 인간과 인간이 정서적으로 교감하지 않고, 불협화음과 불완전성 등 부정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시인이 시에 대한 시, 또한 시쓰기 과정에서 반복과 비평을 통해 자기 회귀성의 의미를 얻는 메타시적 서정시를 쓰는 것이다.
다음 시는 새로운 시 창작이라는 진지한 예술비평 형식을 얻고자 길을 떠나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새로운 언어 코드란 쉽게 찾을 수 없고, 시인은 자신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간판을 흔드는 굽은 길 발가락이 긴 야생의 언어를 찾아 떠난다 이름 모르는 그와 함께 풍경의 불안을 찾는다
낮과 밤의 머리카락은 옆으로 옆으로만 자란다
……<중략> ……
불모의 장소에서는 질문이 메아리로 돌아온다
낯선 골목에서 부드러운 환청을 듣는다 생소한 말들을 입속으로 발음해 본다 - 「이미지 유목민」 부분
새로운 언어 코드인 메타시적 서정시를 쓰고자 시인은 사방 눈을 열어두고 언어를 수집하고 있다. 시인이 찾고자 하는 언어 코드는 “발가락이 긴 야생 언어”이다. ‘발가락이 길다’고 하는 것은 사어가 아니라 ‘풍경 속의 불안’을 움켜쥐는 날것의 언어인데, 그 불안은 아래로 자라는 보편성이 아니다. 머리카락이 옆으로 자라는 초현실적이고 기형적인 불안이다. 이 말의 뜻은 불모지대에서 자라는 패러디나 키치의 시에 시인이 회의를 느낀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인이 자신에게 맞는 언어 코드를 찾으러 나가는 것이다. 시인에게 언어 코드가 원전에 대한 비평과 함께 새로운 시에 대한 시쓰기의 고뇌가 환청으로 들려온다. 생소한 말들까지 입속에서 발음하는 연습을 한다. 이러한 시인의 반복적 태도에서 새로운 메타시적 서정시를 쓰겠다는 마음가짐이 엿보인다.
지금까지 정우림 시인은 자신의 전 텍스트에서 회의를 느껴 새로운 언어 코드를 찾으려고 고뇌하는 노마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언어 코드가 바로 ‘풍경 속의 불안’ 인데, “질문이 메아리로 돌아온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언어 코드는 완벽하게 찾지 못한 것 같다. 시인이 찾는 ‘풍경 속의 불안’에 관한 말은 포스트모더니즘 시의 특징인 불확정성, 불협화음, 모순, 불평등 등 현대 자본주의가 배태한 특별한 상황과 그 이면의 문제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언어이다. 다음 시집에서 시인은 현대 자본주의를 밑바탕으로 쓴 자신의 원전 시 비평과 함께 시인, 시, 시쓰기 과정이라는 새롭게 확장된 창작시를 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메타시적 서정시가 자못 기대된다. 정우림 시인의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에서는 이 ‘메타시적 서정시’ 이외에도 ‘불교적 환원주의’를 주제로 하는 시편들이 있고, ‘인간 죽음에 관한 감정적 관계’나 ‘새를 통한 유목적 표류’를 주제로 한 시편들도 있다. 한 시집에서 다각적인 접근을 유도하는 시편들은 정우림 시인 이외에는 우리 시단에서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이 시집이 좋다는데 이견을 달리할 독자들은 없을 것이다. 활짝 열린 시집이라서 그런가, 나도 자주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잘 여문 시들을 출산한 정우림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우림 시인 약력〛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2014년 『열린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살구가 내게 왔다』, 『사과 한 알의 아이』,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을 썼다.
〚권영옥 시인, 문학평론가 약력〛 □아주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2003 『시경』작품활동 시작, 2018 『문학과사람』 평론 연재 □비평집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평론집 『비시간성에 의한 그림자 시학』 □시집『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모르는 영역』 □전)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문예비평지 『창』편집장, 《포스트24》시평 연재 중 □<두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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