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빛 미소'

김단혜 수필읽기 (4)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0/09/01 [08:49]

'감빛 미소'

김단혜 수필읽기 (4)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0/09/01 [08:49]

                                                       감빛 미소

 

                                                                                                           김단혜 수필가

                                                                                 
그녀의 소식을 들은 것은 딸아이의 모바일청첩장을 돌리면서 입니다. 대구로 시집 간지 25년이 되는 여고동창입니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4년 전입니다. 조기 퇴직한 남편과 조경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 퇴직금으로 땅을 사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조경일은 일이 많아 힘들지만 행복해했습니다. 늘 무엇인가를 배우던 그녀는 조경사자격증도 땄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암이 생겼습니다. 그녀의 나이 49세. 지금부터 4년 전 우리가 만나고 난 직후였습니다. 변의 굵기가 가늘어지고 설사를 자주하고 혈변이 섞여 병원에 갔는데 대장암이라며 수술을 권했습니다. 개복을 했을 때는 이미 간과 폐에 까지 전이 된 후였습니다. 그렇게 투병생활을 시작 사경을 헤매면서 친구는 물론 친정엄마에게도 사실을 숨겼습니다. 차례로 암 덩어리를 떼어 내는 수술을 여러 번 중환자실을 오가며 그렇게 살았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생각했던 우리 모두 너무 무심했습니다.
 
딸의 결혼식에서 만난 친구들과 청도에 갔습니다. 그곳은 친구가 2년째 지내고 있다는 요양병원이 있는 곳입니다. 차로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인데 그동안 무엇이 그렇게 바빠서 서로의 안부조차 묻지 못한 것일까요. 헐티제 정상에서 가도 가도 감나무만 보이는 곳을 한 참을 돌아내려갔습니다. 요양병원은 모텔을 개조한 것이라 휴양지처럼 고즈넉했습니다. 그녀의 모든 것이 보이는 것 같은 병원 주위를 속속들이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미안해서 셔터조차 누르지 못했습니다. 요양원 한 켠에는 비바람에 섞인 약초 달이는 냄새가 지독했습니다. 우리를 맞이한 병동 앞뜰에선 나뭇잎이 자꾸 떨어졌습니다. 막 물들기 시작한 감잎입니다. 우리는 각자 4년 혹은 10년, 15년 아니 25년 만에 만나는 친구를 만날 생각에 조금씩 긴장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우리를 위로한 건 눈이 가는 곳마다 보이는 쏟아질 듯 달려있는 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감이 많이 매달려 있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땅으로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는 감은 어디서든 손을 내밀면 만져질 정도로 감천지였습니다. 우리는 팔을 뻗어 마치 친구를 만지듯 감을 따기도 하고 핸드폰에 담기도 했습니다.
 
만나고 싶은데 내가 너무 많이 변해서 ……. 라고 말끝을 흐리던 친구는 면회실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우리를 보자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었습니다. 아무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말을 잊었습니다. 괜찮다고 이렇게 만났으니까 되었다고 했지만 누구도 괜찮지 않았습니다. 할 말 대신 그녀를 안았습니다. 바람보다 가벼워진 그녀는 한 아름에 안겼습니다. 두꺼운 외투속의 갈비뼈가 달그락거렸습니다.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3인실 병동은 간이 옷장 하나에 이부자리와 약봉지가 전부였습니다. 같은 방을 쓰는 환우는 편하게 만나라고 자리를 피해 주었습니다. 병동 창가에도 감나무가 주홍빛 얼굴을 떨구고 서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감나무 한 번 쳐다보고 친구를 보곤했습니다. 

 

친구는 우리를 위로 하듯 이곳도 너무 아프면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요양병원에 있는 것도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근처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녀와 함께 보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친구가 감기에 걸릴까 봐 꼭꼭 문을 내리고 달리는 차 속에서 비로소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호리병에 나오는 곡주를 나눠 마시며 간간히 웃는 미소에서 예전친구의 모습이 언뜻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색한 웃음 뒤에는 까맣게 잊었던 일들을 속속들이 기억했습니다. 내가 모르던 나를 기억해 줄 때 비로소 예전의 그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나간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고양이 한마리가 창가에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어쩌면 그 고양이도 마치 그녀의 소식을 소식을 전해주는 듯 반가웠습니다. 

 

묵은지 촌닭에 해물파전이면 족한 조촐한 식사를 하며 오랜만에 우린 과거 어느 시간의 복도에 서 있었습니다. 그녀를 너무 늦게 만나러 온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주 늦은 것은 아닙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우리에게 주려고 청도반시 한 상자씩을 내 놓았습니다.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준비해 둔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 10킬로가 넘는 감상자를 옮기며 그녀가 이렇게 무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베란다에 놓아둔 감이 하나씩 붉게 물들어갑니다. 하나를 반을 쪼개 입안에 넣었습니다. 달달한 감이 입 안 가득 향기가 퍼집니다. 그녀가 오랜만에 발그레 웃던 미소를 닮았습니다. 우리의 달달했던 시간들이 켜켜이 쌓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 또 하나 익을 겁니다. 그녀의 주황빛 미소가 생각나면 자주 감상자를 열 것 입니다. 이 가을이 오래 오래 지속되면 좋겠습니다. 

 

 

 

    ▲ 김단혜 수필가


 □ <한국작가> 2010년 수필등단
 □ 야탑문학회 회장
 □ 성남문학상 수상 (2018년)
 □ 시집<괜찮아요, 당신> 책 리뷰집<들여다본다는 것에 대하여> 
 □ 수필집<빨간 사과를 베끼다> 
      vip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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