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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 8, -6.25전쟁과 피난민 소설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4/06/17 [08:26]

문학산책 8, -6.25전쟁과 피난민 소설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4/06/17 [08:26]

  ▲국제시장, 영화 일부 캡처 (사진=한상훈 문학평론가)                                       © 포스트24

 

                                           문학산책 8

                                                -6.25전쟁과 피난민 소설

 

                                                                                               한 상 훈 문학평론가 

 

6.25전쟁으로 빚어진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한반도에는 집단적 인구의 이동이 일어난다. 남, 북 간의 인구의 이동은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강요된 인구 이동인 동시에 정치적, 사상적 이동이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이호철(1932~2016), 이범선(1920~1982) 등 전후작가(戰後作家)들은 후방으로 쫓기듯 밀려가는 사람들의 암울한 정서에 초점을 맞춘다. 

 

그 당시 인구의 대규모 이동은 부산을 중심으로 도시 인구의 집중화 현상을 일으키고, 이러한 공간적 이행은 필연적으로 ‘집’의 상실감이다. 전쟁의 와중에서 사람들은 안정된 공간이었던 ‘집’에서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인간에게 ‘집’은 휴식과 편안함을 제공해 주는 공간이며 삶의 가장 기본적 요람이다.일상적 생활의 거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집’의 상실은 피난민들에게 삶을 파행적으로 가게 한다. 1950년대, 우리 소설에서 드러나고 있는 피난민들의 ‘집’의 형태는 ‘움 같은 집’, ‘통 같은 창고’, ’함석 지붕‘, 아니면 ’화찻간‘ 같은 곳이다. 

 

박용구의 <쓰레기>(1953)의 순이네 식구, 한무숙의 <파편>(1951)의 태현이네 식구, 김이석의 <동면>(1953)의 젊은 아마츄어 연극인들, 이호철의 <탈향>(1955)의 나, 두찬, 광석, 하원이들을 통해 작가들은 피난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궤적을 보여주면서 전후 황량한 사회의 단면을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소설뿐만 아니라 황순원의 <곡예사>(1951)에서 방 한 칸 마련하지 못해 여기저기 쫓겨 다니는 ‘나’의 가족,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1955)에서 친구 집으로 전전하는 중구, 이범선의 <몸 전체로>(1958)에서 딸아이가 백일해에 걸려 피난민 세대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는 창고에서 쫓겨나는 ‘나’의 가족 등 대부분 피난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작품들은 편안히 거주할 수 있는 ‘방 한 칸’이 없기 때문에 극도로 불안정한 삶의 모습을 보인다. 다시 말하면, 뿌리 뽑힌 자들의 생의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이호철은 <탈향>에서 화차에서 뛰어내리다 죽고만 광석을 통해 거주할 공간의 불안정성이 초래하는 삶의 파멸을 리얼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화차 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암울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주의 욕망은 결국 죽음의 결말로 끝나게 된 것이다. 

 

갑작스러운 인구의 이동으로 말미암아 피난민들은 먹고 살아야 할 자기 직업을 잃어 버렸기에 가난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문학 속에서 이들 피난민들의 생활은 ‘부두 노동’이나 미군부대 ‘잡부’ 같은 육체노동으로 그날그날 막연히 끼니를 이어가는 궁핍한 삶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들은 전후(戰後) 사회의 혼돈과 병리 속에서 어떠한 적극적인 삶의 양식을 찾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고, 하루의 생존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불투명한 상황 속에 놓인다. 

 

인간 이하의 생활 속에서 좌절하게 되는 뿌리뽑힌 자들의 모습들을 ‘피난민 문학’의 도처에서 우리들은 발견하게 된다. 

 

작가들은 그들의 궁핍한 삶의 풍경을 6.25전쟁 직후 야기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의 필연적 산물로 받아들이면서, 부조리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발에 머무르지 않고, 그러한 참담한 시련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선의 정당한 노력을 통해서 자기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너무나 참담한 상황에 놓이게 될 때, 인생의 가치관은 변질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피난민들이 머물고 있는 사회적 공간은 ‘돈’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나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해진다. 그 당시 ‘부산’에서 문인들이 많이 모여들었던, 실제로 그곳에 있었던 다방의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는 그러한 피난민들의 세태와 심리를 잘 조명하고 있는 소설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작가들조차도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세속화될 수밖에 없음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이 작품은 “그 놈의 돈들이 다 어딜 갔냐 말야”라는 송화백의 분노를 통해 작가 김동리는 물신화(物神化)에 물든 병적 징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범선의 <몸 전체로>는 딸을 죽게 할 수밖에 없었던 뼈아픈 피난민의 체험을 통해 사회에서 체득한 것은 오직 ‘나’만 있을 뿐이라는 절대 논리에 빠진다. 주인공에게 딸 아이의 죽음은 현실을 적대적 불화의 세계로 인식하게 만든다. “폐허 위에 수많은 <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사회로부터 고립된 단독적 자아의 초상인 것이다. 

 

피난민 문학에서 궁핍한 현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향 상실감이다. ‘궁핍’이 외적인 현실의 문제라면, ‘고향상실’은 내적인 문제로 그들의 정신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실향민들에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의 원초적 정서로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이호철의 <탈향>과 이범선의 <오발탄>은 1950년대 전후사회(戰後社會)의 실향민들의 애환과 고통스러운 삶의 궤적을 잘 표현한 수작이다. 

 

<탈향>에서 작중인물들의 기억 속에 있는 고향은 ‘까치’나 ‘상나무’, ‘장자골집의 잘 웃는 형수’가 있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공간이다. 이러한 고향 생각은 작중인물들이 타향에서의 낯설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면서,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진통제 역할을 해준다. 

<오발탄>에서도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주인공 철호는 지주의 집안으로 풍요롭게 살아왔던 삼팔선 너머의 고향이 너무나 간절하게 다가온다. 

 

<탈향>이나 <오발탄>의 인물들에게 전후의 사회적 현실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진행형의 삶이다. 그들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체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밝은 미래를 꿈꾸기도 하면서, 실향민의 상처를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상처는 시간이 가면서 잊혀지거나 치유되기보다는 오히려 덧나면서 깊은 정신적 내상을 입게 된다.

극단적인 경우 <오발탄>의 어머니처럼 분단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가자, 가자’ 하면서 정신 이상의 상태를 일으킨다. 

 

<오발탄>의 어머니와 같은 인간의 본능적 광기는 선우휘의 <망향>(1965)에서 독자들에게 더욱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주인공 이장환의 부친은 분단의 현실을 자각하면서도 도저히 고향을 잊을 수 없는 지독한 그리움 때문에, 자신이 살던 북쪽의 고향과 지형이 닮은 남쪽의 시골을 찾아다닌다. 마침내 고향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시골을 발견하여, 그곳에서 고향의 살던 집과 같은 모양의 집을 지어 산다. 

그러나, 어느 날 부친은 여기는 고향처럼 천장에서 쥐 소리가 찍찍거리며 내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하여, 아들인 이장환은 지극정성으로 천장에 쥐까지 넣어주는 촌극을 벌인다. 그럼에도  부친은 실향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하게 된다.

 

<오발탄>의 철호의 어머니나 <망향>의 이장환의 부친의 고향에 대한 맹목적 집착은 정신 분열을 일으킬 만큼 마음 속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처럼 6.25로 인한 실향의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극복되지 못하고, 21세기의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넓고 깊게 이어져 오고 있다. 

 

1950년대 전후소설 중에, 실향민의 상처를 다루면서, 인간의 도덕적 윤리의식을 집중적으로 추구한 작품들이 더러 있다. 이러한 소설들은 이북에 남편이나 처자가 있는 사람들이 남쪽으로 홀로 내려와서 다른 사람들과 다시 인연을 맺으면서 야기되는 인간의 윤리적 갈등을 그리고 있다. 

 

김동리의 <실존무>(1955)는 부산의 ‘국제시장’을, 최정희의 <찬란한 대낮>(1956)은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존무>에서 극작가이며 기자인 이영구의 현실적인 인생관에 대해 처음은 배타적이었던 김진억과 장계숙은 부산의 국제시장에서 우연히 만나면서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고, 점차 그들의 현실적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북에 처자를 두고 홀로 내려온 김진억과 6.25 때 남편이 납치되어 친정 식구와 함께 남하한 장계숙은 망설이다가 마침내 결혼하게 된다. 

 

결혼 후 그들 부부의 삶의 기반이 서서히 이루어질 무렵, 이북에 있는 줄만 알았던 김진억의 처와 아이들이 나타나 그들은 감당할 수 없는 혼돈 상태에 빠지게 된다. 

작가 김동리는 김진억과 장계숙의 파국적 삶을 통해 실향민의 상처를 분단의 현실과 관련시킨다. 

 

<찬란한 대낮>은 남편이 인민군 의용군으로 떠나, 남편의 생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외로움과 가난 속에 놓인 길수 어머니가 이북에 처자식을 두고 온 강인기와 우연히 만나 살게 된다. 

이 소설에서 남편 강인기는 술주정을 통해 그의 내면적 잠재의식을 선명하게 표출하고 있다. 그것은 길수 어머니와 동거하면서 북에 두고 온 처에 대한 반성적 죄의식이다. 홀로 월남하여 다른 여자와 살아가는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시며 도피하고자 하는 강인기의 원초적 몸부림을 독자들은 이 소설,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나, 길수 어머니의 내적 갈등은 강인기와 다르다. 소설 후반부에, 포로 수용소에서 남편이 석방되어 돌아온다는 말을 길수에게서 듣는 순간, 재회의 반가움보다는 오히려 지금의 안온한 현실이 파국에 놓일까 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는 청계천변에 가서 자기 남편이 정말로 돌아올 것인지를 확인하게 되며, 강인기의 말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비로소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실존무>나 <찬란한 대낮>은 분단 현실 속에서 다른 반려자를 만나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피난민들의 내면적 심리 세계를 냉정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북의 남편이나 아내를 두고 홀로 내려온 사람들이 남쪽에서 새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것은 실향의 상처를 보듬고 미래의 희망을 위해 나가야 할 이정표이지만, 전통적 윤리관으로 볼 때 매우 곤혹스러운 문제로 피난민들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 지점을 전후의 작가들은 예리하게 포착하여 분단의 비극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한상훈 문학평론가                                       © 포스트24



​<약력>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경기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현재 <포스트24> ‘문학 산책’, 계간 <문학미디어> ‘시 계간평’, 계간 <문예운동> ‘문학공간의 ’새’ 이미지’ 연재 중. 주로 문학공간에 나타난 ‘꽃’과 ‘새’의 이미지에 대해 연구, 발표하고 있다. 그 외 작가론 및 문학특강 다수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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