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다

천자수필 읽기, 김후곤 소설가 (6)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08/17 [09:52]

빌어먹다

천자수필 읽기, 김후곤 소설가 (6)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8/1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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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어먹다

 

                                                                                                       김후곤 소설가

사촌형님, 지난달 95세로 눈을 감았다. 시력이 나빠졌고 지병인 당뇨와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10여 년을 삶 같지 않은 삶을 살았다. 본인도 힘들어했고, 남은 가족들 특히 자식들에게는 반목의 눈을 싹트게 했다.

몸이 무너지고 의식의 일관성을 잃어버리기 전까지 형님은 논두렁과 밭두렁에서 이슬을 밟으며 아침을 맞았고, 해거름이 지나서야 집에 들어와 불 밝히고 저녁을 맛나게 들었다. 형님의 아침 동선은 일정했다. 불편한 일이나 동네일을 의논하려는 사람은 밭두렁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면서 기다렸다.
품앗이, 그때는 그렇게 일했다. 새참, 일꾼들은 벌써 손 씻고 논 밖으로 나간다.
“얼른 나오유. 막걸리도 허구유.”아직도 논에 엎어져 있는 형님은 말한다.
“손질 한 번만 더 허구유.”
이렇게 일하는 형님은 집에 돌아와 한 소리 듣는다.
“누구, 그렇게 일 허는 사람 있슈? 다들 요령껏 허잖유?”
갈퀴 같은 손가락으로 힘들게 더듬거리며 갈퀴질한 천자문은 형님이 세상을 열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빌어먹을 것!”
형님이 생전에 혼잣말처럼 자주 쓰던 말이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들릴 듯 말 듯한 말투였다. 일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속상할 때 던지는 독백이었다. 사람으로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행동을 보았을 때 상대방에게 사용했다. ‘빌어먹을 것’에서 ‘것’을 딱 두 번 바꾸어 썼다.
이장이 주민의 도장을 도용하여 대출을 받고 잠적했다. 동네 주민은 먹이그물처럼 모두 보증인이 되었고, 수 천만 원의 빚을 떠안았다.
“빌어먹을 놈!”
형님이 좋아했던 대통령이 신새벽에 어이없게, 너무 쉽게 세상을 떴다.
“빌어먹을 세상!”

사람은 먹어야 산다. 먹을 것이 없을 경우에는 남에게 구걸해서 얻어야 한다. 구걸에는 걸어 다녀야하는 수고로움이 따른다.
빌어-먹다【비러-따】남에게 구걸하여 거저 얻어먹다.
의미를 확장한다.
‘나는 평생을 빌어먹었다.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에게. 자라면서는 수 백 명의 선생님이 나를 키웠다. 직장에서는 선배들이 보살펴주었다.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야 할 내 삶에서의 생각과 행동은 이들이 나에게 준 것들이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생각 할 줄 몰랐고, 한 걸음도 걷지 못했다. 이 모든 것들을 나는 거저 얻었다. 공짜!’
탁발托鉢【-빨】①도를 닦는 승려가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하는 일
                  ②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빌어줌
한 걸음 더 나간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유혹하는 글쓰기. 이 두 가지가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지. 명쾌한 방법, 없지. 누군가의 생각이나 경험을 가져와야 해. 내가 아닌 것에서 빌려와야 해. 빌어먹지 않을 수 없어. 걸어 다니는 수고로움은 견뎌야 하고. 집착을 버리고 교만을 줄이며 다른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빌어먹다’여야 한다니까.’

주위에는 내가 ‘빌어먹을’ 만한 사람들이 즐비하다. 또 다른 ‘빌어먹기’를 위해 아카데미로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김후곤 소설가

 

  [약력]

 □ 현,청하문학중앙회 부회장

 □ 소설가. 수필가

 □ 수필집  『그게 사실은』 , 『숲을 거니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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