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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 (43), 강빛나 시인 (『만지면 없는 당신을 가졌어요』, 지성의 상상, 2024)

사회 구조적 모순에 의한 불편한 정서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4/05/04 [16:5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 (43), 강빛나 시인 (『만지면 없는 당신을 가졌어요』, 지성의 상상, 2024)

사회 구조적 모순에 의한 불편한 정서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4/05/04 [16:54]

  © 포스트2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 (43), 강빛나 시인 (『만지면 없는 당신을 가졌어요』, 지성의 상상, 2024)

                                -사회 구조적 모순에 의한 불편한 정서

 

강빛나 시인의 시는 단정하고 부드러운 겉모습 속에 세계 부정성과 그로 말미암아 생긴 고통을 숨기고 있다. 시인은 그 속에서 계층 간 갈등을 겪는 사람들과 사회 구조적 모순 때문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고통스럽다. 이러한 감정은 외부의 개인적 상황을 토대로 하지만, 시인의 의식이 심적 상태로 환기된 후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에는 특수한 환경에서 살아온 시인의 원체험과 추체험이 녹아 있다. 만약 대도시인이 사회 병리 현상을 보게 된다면 그것들을 일상적인 상황으로 치부해 버렸을 것이다. 매일 부딪히는 현실을 자신과 상관없는 것으로만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섬 환경에서 가족공동체로 살아온 시인은 특별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그 상황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게 된다. 게오르규 짐멜에 의하면 “대도시에서 사는 개인의 전형적인 심리적 기반은 신경과민인 데 반해, 자연적 환경에서 자란 개인들은 정신적 생활 속도가 느리면서 평탄하게 흘러간다고 말한다.” 환언하면 자연적 환경에서 가족공동체로 살던 시인이 대도시로 이주해 옴에 따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에 대해 내적 본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시인의 시는 원체험과 추체험을 통해 총체적 심리세계를 깊이 탐색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시가 단정한 미문을 구사하는데도 불구하고 환기되는 메시지가 충돌 관계를 보인다면 이 때문일 것이다. 충돌 관계는 사회의 부정성에 대한 대립에서 발생하고, 또한 가족공동체 가치관의 약화에서도 갈등이 생긴다. 그로 인해 시인의 정신 구조가 시의 본질적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가벼운 태도의 시 감상을 거부한다는 의미다. 거기에 관한 시편은 (「문어」, 「괜찮아지는 습관」, 「겁怯」, 「간격」, 「발톱」, 「방 탈출」, 「P2P」) 등이다. 

 

      허벅지에서 찌리릿 센스가 작동했다

      출처 없는 걱정이 밤마다 거리로 나와

      뿌리도 없이 번져갔다

 

      번지 점프를 하다가 퍼지는 고함의 목젖처럼

      금방 떨어질 것 같은 눈알들이

      공중을 맴돌며 알알이 증식해 갔다

                                                                        -「겁怯」 일부분

 

      지난해 아빠처럼 생각 없이 여자 친구에게 발을 맡기면 떨어져 나간 조각

      들이 꿈속에서 악어로 변해

      더 많은 조각을 찢어내죠

 

      밤이 깊어지면 의심이 늘어나는 엄마

      친척 집에 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죠

      거기에는 우리의 살점을 기다리는 뱀의 눈이 많아요

                                                                        -「발톱」 일부분

 

‘겁’에서 화자는 친밀한 대상과 부조화로 인해 극치감이 소멸하면서 만나지 않은 미래까지 엎질러 버린다. 대상과의 단절은 서로 합일되지 못하는 부조화 관계에서 발생한다. 그런데도 화자는 그 대상과 단절했다는 이유로 불안해한다. 이 경우 불안(anxiety)은 외부세계에서 오는 현실적 불안으로, 화자가 어떤 위험성을 알기에 그것을 통제하려는 본능이다. 자신을 지켜줄 외부 세계가 없다면 인간은 불안함을 느낀다. 처음부터 대상이 화자의 배경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화자는 이 상황에 대해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배경에 대한 지식이 있기에, 자신을 지켜줄 외부 배경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화자는 불안해한다. 이를테면 “출처 없는 걱정이 밤마다 거리로 나와 뿌리도 없이 번져”가고, “눈알들이 공중을 맴돌며 알알이 증식해” 가는 화자의 불안한 상황은 꿈에서도 나타난다. 화자의 아버지는 여자 친구에게 발을 주어, 그 발 조각들이 악어로 변해 더 많은 조각을 찢어내는 모습까지 보이기도 한다. ‘발’은 아버지의 자유로운 몸이다. 그런 발을 엄마가 아닌 여자 친구에게 맡기고, 또 조각까지 내는 상황은 가족 해체를 의미한다. ‘악어’, ‘눈알’, ‘발톱’, ‘뱀의 눈’ 등 각각의 기표들은 병치은유로 모아져 화자의 불안한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가족공동체는 화자에게 안도감이나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화자의 무의식 정서는, 원체험과 추체험이 부분적으로 남아 두려움에서 불안으로 변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시인은 시에서 대상의 불안을 통해 사회 일각에서 일어나는 부정성을 비판하고 있다. 부정적인 사회는 단적으로 말할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한 갈등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 구조는 자본주의가 낳은 폐해인데, 사회경제적 성장과 수혜의 불균형에서 오는 계층 간의 갈등 체계이다. 또한 다변화된 사회에서 물질에 최우선 가치를 둔 타자들이 탈물질화됨에 따라 초자아의 도덕성 해체로 인해 그들은 불안해한다. 결국 시작품을 통해 시인은 ‘뼈대’와 ‘비트코인’이라는 미학적 코드 변환을 거쳐 자본주의가 낳은 구조적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시작품에서 드러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무엇이고, 이 문제로 인해 대상은 어떤 정신적 현상을 겪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뼈대 없는 가문이라는 것이

      마땅히 후광 받을 곳이 없다는 것이

      눈시울을 이렇게 붉히는 일인 줄 몰랐다

                                                                                 -「문어」 일부분

 

「문어」는 사회적 속성과 내면적 속성이 맞물리면서 감정이 갈등에서 시작되어 불안으로 변용된 시다. 문어는 왜 불안한가? 머리는 좋은데, 천애 고아이기 때문이다. 드넓은 바다에서 문어는 자신을 지켜 줄 외부 배경이 없어 불안하다. 그 불안은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살아야 먹히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더욱이 문어는 “뼈대 없는 가문”이라서 마땅히 후광 받을 곳이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러한 존재는 넓은 바다에서 언제 사건화될지 모른다. 그런데도 관습적인 인간은 “집안을 봐야 그 사람을 안다”라고 말한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집안’은 뼈대 있는 가문을 의미하고, ‘그 사람을 안다’고 하는 환유는 예의범절과 사회적 골격을 갖춘 품성 좋은 사람이란 걸 의미한다. 전통적인 관습이 사회적 잣대로 들어오면 그 사회는 ‘부’와 ‘빈곤’의 불균형을 초래해 빈부의 갈등 양상을 드러낸다. 예컨대 사회적 인간이 강으로 빈부의 경계를 지으면 부자들의 상징은 ‘카약’이 되고, 가난한 자들의 상징은 ‘혁대’가 된다. (「간격」) ‘부와 빈곤’, ‘배경 있는 가문과 배경 없는 가문’, ‘섬과 대도시’ 등이 서로 경계를 두면 계층 간의 갈등이 일어난다. “집안을 봐야 한다”는 말에 문어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연체동물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눈시울 붉히는 말과 연결되면서 시인은 ‘문어’를 추체험으로 끌어올려 목소리를 강조하고 있다. 목소리의 의미는 계층 간의 갈등과 사회적 통념이 한 개별체에게 불안을 형성하게 하는 정신적 사건이다. 그 때문에 화자는 ‘文魚’에서 ‘文語’로 변환 코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외도 불안은 변화하는 외부 세계를 대상으로, 생산성과 물질적 가치에 목표를 둔 사람들의 정서를 나타낸다. 

 

      한탕하고 싶었을까, 폼나게

      오늘을 살아본 적 없어서 탕진하기 좋은 밤처럼

 

      너는 짐 빠져나간 배낭 같다

 

      피로한 한숨이 앙상한 쇄골에 걸려 버둥대고

      너무 어두워서

      저 혼자 용감해지는 커튼 뒤에 숨어

      코인 지수가 웅덩이에 풍덩 하고 빠질 때마다 

      왼쪽 머리를 쥐어뜯는다

                                                                              -「방 탈출」 일부분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성에 의해 생산성을 높이고, 부의 가치를 창출한다. 그에 반해 이 시에서 사회는 인간과 인간 간 대화가 아니라, 인간과 컴퓨터 간 접속을 통해 시장의 유동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대상의 성공 여부는 가상화폐와 직결된다. 비트코인 지수가 내려가면 대상의 행동은 “어두운 커튼 뒤에 숨어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러한 행동은 ‘부’에서 ‘빈’이라는 변동성의 차이로 인한 불안 본능이 작용한 것이다. 그만큼 코인이 대상에게 매혹의 기표로 작용한 셈이다. 이러한 점으로 봤을 때, 대상이 탈물질화를 경험한다고 해도 방 탈출은 용이하지 않다. 연민 감정이 강한 화자는 대상에게 “능한 위장으로 기분 띄워주는/변명의 금고는 열지” 않겠다고 하지만 결국 화자는 “피로한 한숨이 앙상한 쇄골에 걸려 바둥대”는 대상의 불안한 모습을 보면서 금고를 열어줄 것이다. 이처럼 비트코인이 인간과 인간 사이 편리한 신뢰 검증 과정을 용이하게 하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대상이 물질주의에 최우선 목표를 두고 있는 한, 그의 부 축적은 쇠줄보다 못하게 된다. 따라서 이 시는 “짐 빠져나간 배낭 같”은 대상의 외양에서 현대인의 물질주의에 물든 불안한 정서를 엿볼 수 있다.

 

이 시편에서 시인은 가족공동체의 갈등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오는 부정성을 원체험과 추체험, 실존적 체험 그리고 상상력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미지 창조를 통해 자신도 알 수 없는 무의식의 변형 세계로 확대해 간다. 다시 말해 이 세계에서 시인은 현대인의 일렁이는 충동과 불안 등을 보여주는 총체적 심리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만지면 없는 당신을 가졌어요』는 시인의 첫 작품이고, 현대인의 정신 경험을 다루었다는 의미에서 이 시집의 가치는 크고도 충분하다.

 

※(이 시평은 강빛나 시집 해설 일부분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강빛나 시인의 시집.                                © 포스트24

 

 

〚강빛나 시인 약력〛

□통영 사량도 출생

□단국대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박사 통합 수료

□2017년 계간 『미네르바』로 등단

□제2회 예천내성천문예공모 대상 수상

□(현) 계간 『미네르바』편집장

□성남민예총 문학위원회 위원장

□시동인시집 『미루』

 

 

 

 ▲권영옥 시인, 문학평론가     © 포스트24



〚권영옥 시인, 문학평론가 약력〛

□아주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2003『시경』작품활동 시작, 2018『문학과사람』평론 연재

□비평집『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평론집『비시간성에 의한 그림자 시학』

□시집『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모르는 영역』

□전)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문예비평지『창』편집장,《포스트24》시평 연재 중

□<두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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