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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7)

장미 이미지⓶, 한상훈 평론가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08/02 [15:06]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7)

장미 이미지⓶, 한상훈 평론가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8/02 [15:06]

                          

  © 포스트24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7)
                                                              -장미⓶


                                                                                                   한 상 훈(문학평론가)


프랑스의 비평가이며 소설가인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 Exupery)의 『어린왕자』(번역 김남주)의 ‘장미’는 주제를 파악하는데 핵심 키워드 역할을 하는 소재다. 어린왕자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꽃인 ‘장미’는 다소 오만하고 허영이 많은 편이다. ‘아름답다’는 그의 말에 “해가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태어났으니” 그렇겠지 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어린왕자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아, 아침 식사를 갖다 달라, 바람막이를 해달라는 등 거만스럽기 짝이 없다. 어린왕자는 ‘장미’와 같이 살고 있던 작은 별을 떠나 다른 별들을 순례하다가, 지구의 정원에 피어있는 오천 송이의 장미를 보고 깜짝 놀란다. “너희들은 아직 내게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도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 역시 그 누구도 길들이지 않았지” 아무도 너희를 위해 목숨을 던질 사람이 없기에 ‘공허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구에서 만난 친구 ‘여우’에게 깨달음을 얻는다. “네 장미꽃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어린왕자는 ‘내 장미꽃’에게 무한한 고마움과 사랑을 느낀다. “투덜거림과 잘난 척, 때로는 침묵까지 들어준 꽃도 그녀였어.” “내 꽃은 내 별을 향기롭게 해주었는데, 난 그것을 누릴 줄 몰랐어”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이 소설은, 작가 생텍쥐페리가 ‘장미’를 복합적인 이미지로 그려내지만, ‘장미’를 바라보는 기본적 관점은 ‘사랑’이다. 왜 사랑하면 ‘장미’일까? 이 꽃이 사랑을 고백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형태적 아름다움과 향기, ‘사랑’이라는 꽃말일 것이다. 그 아름다움의 상징인 장미꽃에 ‘가시’가 무수히 돋아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래서 그럴까. 장미 이미지 1편에서 언급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읽다가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페르미나 다사를 찾아갈 때 장미의 ‘가시’에 그녀가 혹시 엉뚱한 해석을 할지 모른다며 ‘가시’를 다 잘라버리고 찾아가기도 한다. 장미꽃과 가시의 이율배반적 현상에 대해 김승희(1952~) 시인은 다음과 같이 인생을 노래하고 있다.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통 속의 상처, ‘가시’같은 세상길을 헤쳐 나가면 꿈에 그리던 ‘장미’의 삶이 보여야 할 텐데,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처럼 시인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결국 화자는 삶의 고단함 속에서 과연 ‘장미’라는 아름다움의 실체가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지 고민한다. 그렇기에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다분히 언어유희적 수사학으로 절박하게 묻고 있다.


‘장미’ 이미지에서 도출해내는 작가들의 문학적 상상력은 다양하고 다층적이기에 난해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작품의 밑바탕에 인간 내면의 고독이나 욕망이 관류하고 있다. 김춘수를 비롯하여 우리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묘비명에 새겨져 있는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라는 시행은 이런 ‘장미’의 속성을 압축해 놓은 것이다.

 

이번엔 21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이시다 이라의 『1파운드의 슬픔』에 실려 있는 단편 「11월의 꽃망울」로 들어가 보자. 
30대 중반의 하나에는 꽃집 체인점의 정사원인 20대의 미사토와 함께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다. 상가 건물 1층에 위치해 있는 꽃집이다. 이 꽃 가게에, ‘토요일’만 되면 20대 후반의 세리자와라는 젊은 남자가 와서 주기적으로 꽃다발을 사간다. 그는 생명보험회사에 다니는 샐러리맨으로, 하나에처럼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다. 그는 하나에보다 7살 어린 나이로, 동갑내기 여자친구가 있고, 꽃집에 나타날 때면 “언제나 고급스런 캐주얼 옷차림”으로 나타난다. 하나에는 그가 데이트 때마다 잊지 않고 꽃을 사가는 것이 “사탕발림에 능한 이탈리아 남자들” 같기도 하지만, 차분한 인상에 대학원생 같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웹디자이너로 일에만 매달려 있는 남편과 비교도 해본다. 하나에는 초등학교 2학년 된 아들과 갓 태어난 딸이 있다. 


부부생활에 권태를 느끼는 하나에는 ‘토요일’만 되면 잊지 않고 꽃집에 와서 꽃다발을 부탁하는 세리자와에게 오랜만에 ‘남자’를 대하는 설레임을 느낀다. 더구나 꽃집에 같이 있는 젊은 미사토가 사귀어보라고 충동질까지 한다. 미사토의 말에 의하면 한번은 “하나에 씨가 없으니까 서점에 가서 시간 때우다가 다시 왔었다”는 것이다. 즉, 꽃다발을 꼭 하나에에게만 부탁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에는 그(세리자와)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이 걸린다. 그가 꽃을 사러오면 하나에는 주로 ‘장미’로 꽃다발을 만들고, 그는 그것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 하나에는 꽃다발을 만들면서 언제나 세리자와와 서로 안부를 묻는 등 정겹게 대화한다. 하나에의 남편은 여전히 일에만 몰두해 있고, 일곱 번째 결혼 기념일에도 축하의 메시지조차 없다. 남편의 무관심으로 인해, 부부 생활에 지친 그녀. 다행히 세리자와의 모습을 떠올리면, 권태로운 일상에 작은 행복감이 몰려온다.


이 소설은 ‘장미’를 매체로 하여 꽃가게의 알바 주부와 고객인 청년 사이에 산뜻한 서사 전개로써 빠르게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젊은 여자의 외도나 일상적 삶에 대한 일탈이 쉽게 떠오르지만, 그렇게 독자의 예상대로 서사가 진행되지 않는 데에, 이 소설의 묘미가 있다. 하나에의 내면에 잠깐이나마 일탈의 욕망이 스치지만, 별로 불온한 구석이 없이, 이야기는 점차 후반으로 진입한다. 결혼 기념일이었던 금요일이 지나고 토요일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 세리자와가 전과 다름없이 소년 같은 옷차림으로 등장한다. “저기 저 동백꽃 닮은 꽃은 뭐죠?” “이것도 장미의 일종이예요. 꽃잎이 한 겹으로 돼 있어서 화려하기보다 하늘하늘하고 가련한 느낌을 주죠. 요즘 제법 인기가 있어요.” 세리자와는 하나에에게 그 장미를 부탁한다. 하나에는 “엷은 핑크빛의 홀겹 장미” 몇 송이를 골라 꽃다발을 만드는데, 미사토는 배달 나간 상태라 꽃집에 둘 밖에 없다. 하나에는 꽃다발을 만들면서 세리자와의 시선이 느껴져 ‘꽃 색깔처럼’ 얼굴이 물든다. 하나에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대화 하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었더니 그는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 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이었다.”


갑자기 세리자와가 돌출 발언을 해서 하나에는 깜짝 놀란다. 오늘 만드신 ‘장미 꽃다발’은 가져 갈 것이 아니라, 하나에에게 ‘선물’하겠다는 것이다. ‘토요일’이면 세리자와는 여자 친구에게 선물할 꽃다발을 부탁해서 가져갔기에, 하나에는 여자 친구에게 드릴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더니, 그는 피식 웃는다. “아니요. 사실은 이 가게에 처음 왔을 때 산 꽃다발이 여자 친구한테 준 마지막 꽃다발이었어요. 그날의 데이트는 헤어지잔 말을 하기 위한 데이트였거든요.” 


하나에는 그의 고백에, 그때 만든 ‘스물일곱 송이의 장미’는 여친과 작별을 위한 꽃이었음을 알게 된다. 아니, 그렇다면 그 후에 사간 꽃들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에, 세리자와는 놀라운 대답을 내놓는다. “그 후로 산 꽃다발은 전부 저희 집에 장식했어요. 그것 말고는 하나에 씨하고 이야길 나눌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집안을 매주 다른 꽃으로 장식하는 건 생각보다 아주 괜찮았어요. 지난 일곱 달 동안은 정말 즐거웠어요.” 하나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호흡이라도 하지 않으면 쓰러져 버릴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말하자면 세리자와는 꽃집의 알바 주부인 ‘하나에’ 씨의 얼굴도 보고 대화도 나누기 위해 ‘토요일’ 마다 여기 와서 꽃다발을 사고, 그 꽃은 집에다 갖다 놓은 것이다. 이 장면은 하나에보다도 세리자와가 얼마나 상대방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경이적 모멘트’를 독자들에게 주는 순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작가 이시다 이라는 2003년도에 장편 『4teen』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로, 그의 다른 소설처럼 이 글도 젊은이의 감수성과 감각이 돋보인다. 꽃집에서 일하는 30대 중반의 하나에와 7살 아래의 연하남 세리자와의 애정의 심리묘사가 읽을수록 엉뚱하고 은근하기도 하여 미소를 머금게 한다. 


독자들은 처음에 진부한 사랑 이야기의 패턴 정도로 예상했다가 점차 세리자와의 순수한 사랑에 감동하게 된다. 그가 한눈에 반해버린 여성에 대한 애정 표현을,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기의 여자 친구에게 장미꽃 다발을 선물하는 척하는 능청스러운 방법으로, 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세리자와의 마음을 모르고, 오랜만에 ‘남자’로 느끼며 그가 올 때마다 마음 졸이며 설렜던 그녀. 세리자와에게 사랑의 고백을 듣는 순간, 자기 역시 그를 사랑해 왔지만, 그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순정만화를 보는 듯하다. 세리자와는 하나에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난 후, 그녀가 만들어준 장미 꽃다발을 선물하면서, 카드에 몇 자 메모를 하고 난 후, 집에서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 내용은, 다름 아니라, 그녀와 만난 지 반년 만에 처음 이루어지는 데이트 신청이다. 그 장면은 속도의 시대에 느림의 연애학을 오랜만에 보는 듯하여 상큼하기 짝이 없다.


이 글에서 ‘장미’는 연상의 하나에에 대한 세리자와의 애틋한 감정의 표현이면서 두 사람의 대화 시간을 만들기 위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세리자와는 사랑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하나에가 만들어준 장미를 집에 가지고 가서 그녀를 상상하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는 그 장미의 꽃다발을 하나에에게 주면서 “아주 좋네요. 그 장미는 하나에 씨랑 닮은 데가 있어요.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어딘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요.”라고 말해, 하나에를 감격시킨다.


그녀는 데이트 장소인 이노카시라 공원의 산책로에서 그를 만나면서, 오늘이 가게 밖에서 당신을 만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이 마지막 장면은, 연상의 유부녀와 연하 청년의 순애보를 가장한 불륜으로 끝나지 않을까하는 독자의 기대를 여지없이 배반한다. 하나에 못지않게 세리자와 역시 그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장미 꽃다발 속의 카드에, 데이트 신청을 하게 된 것은, 그가 회사에서 전근 발령이 나서, 멀리 이사를 가기에, 더 이상 전처럼 하나에 씨를 만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드라마나 소설에서 흔하게 보는 불륜의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고, 통속적 서사의 이야기를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마무리한 것이 이 소설의 멋진 반전이다. 서정적 분위기 속에 작가 특유의 감각이 시종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글은 특히 여성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며, ‘장미’를 매개로 남녀의 잔잔한 그리움을 섬세하게 그려나간 수작이다.

 

 

   

    ▲한상훈 평론가

 

  [약력]
 □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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